[클릭이사람] (94)‘누가 이 여성을 억울하게 했는가' 남귀옥 (1)

[클릭이사람] (94) '누가 이 여성을 억울하게 했는가' 남귀옥 (1)
 
이땅에서 가장 힘센 청와대 앞에서 가장 힘없는 한 주부가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는 그 순간에도 억울해서 그는 울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부산에 남겨놓고 혼자몸으로 서울에 올라와 벌써 50일이 넘도록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하철 경복궁역 6번 출구 지하도에 가면 땅을 치며 억울함에 분노하는 그녀가 있다. 남귀옥씨(53)가 바로 계란으로 바위를 깨고 있는 그 주인공이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누가 그녀에게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내리는 독기를 품게 했는가?

▲     © 피플코리아

법을 존중한다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날수가 있는 겁니까? 세상은 참으로 믿을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호소를 해도 힘있는 사람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 원통하고 분해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벌써 50일이 넘도록 목이 터져라 외치고 호소를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기가 막힙니다.

걸어가도 청와대까지는 5분. 엎어지면 코닿을 지척에 있는 청와대가 힘없는 서민에게는 북한땅보다도 더 멀게만 느껴집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경찰은 또 24시간 감시를 하는 겁니까?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타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인류평화를 위해 노력한 댓가라며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고 환한 미소를 짓는 그 순간에도 국민의 한사람인 우리는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받고 있는데… 50일이 넘도록 이렇게 청와대 코앞에서 비리판검사와 변호사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을 하고 있지만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대통령은 이소리가 들리는 지요? 인권상까지 탄 대통령이 머무는 청와대 앞에서 인권을 유린 당해 통곡하고 절규하는 소리가 말입니다. 국민의 재산과 신변을 지켜줘야 할 법조인들이 힘없는 서민을 짓밟고 유린해도 아무런 대응을 할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울고 소리쳐도 이제는 눈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흘릴 눈물마져 말라버렸으니까요.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목이 잠겨 버렸으니까요.

가족들은 모두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부산진구 초읍동 587-56에 위치한 미니2층. 온가족이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1982년에 장만한 우리집 입니다.

남편(윤여영·56)은 직업군인 출신. 중매로 만나 70년 말 내나이 23살때 결혼을 했지요. 신혼때는 남편을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는 남편과 떨어져 장사를 했습니다. 허리가 휘도록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집칸이라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제대후 한전에 다니다가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실패를 했지요.

그때부터 내가 돈벌이로 나섰습니다. 살던 집을 용도변경하여 1층에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2층에는 우리 다섯식구가 살았지요. 15평정도의 작은 '초우식당'을 하면서 우리 가족은 한때나마 행복했습니다. 삼계탕과 아구찜 그리고 복국이 주메뉴. 남편도 식당일을 많이 도와 주었지요.

91년초까지 1년동안 식당은 장사가 잘 됐습니다. 집안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공터로 남아 있던 집앞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한신주택이 350세대 아파트를 지으면서 법률상 5M 간격을 두도록 한 어린이 놀이터를 우리집과 1.5M 떨어진 곳에 설치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건축법상 이격거리 문제로 사법권과 힘겨운 싸움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것은 둘째 치고라도 돌멩이와 공이 식당안으로 날아들고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거의 장사를 할수 없었지요.

당시 이문제는 부산일보(92년 11월19일 월요일자 20면)에 "아파트 신축 놀이터 주택인근 설치 반발"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될 정도로 파문이 컸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가 생기면서 우리집 옆에 있던 폭 4M짜리 도로도 막혀 버렸습니다. 100년이나 사용돼온 도로가 막히면서 내가 운영하던 식당은 갑자기 막다른 골목 끝집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항의를 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 바람에 운영하던 식당은 파리를 날리게 되었답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사법권과 장기투쟁을 벌이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해야할 법이 국민의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기가 막힐 뿐입니다. 91년 9월에 놀이터를 만든다는 정보를 듣고 구청에 달려가서 진정을 한끝에 처음에는 구청으로부터 놀이터를 옮겨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리는 듯 했지요.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입니까? 10월 중순에 땅을 파는 것이었어요. 설계변경이 안된다면서 구청측은 당초 했던 약속을 어기고 그자리에 놀이터를 짓고 말았습니다. 구청이 개인과 했던 약속은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어겨도 되는 겁니까? 그때부터 우리집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91년 10월 말에 소송을 내면서 길고도 지루한 법정싸움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승소하면 식당을 계속하려고 버텼지만 결국은 아까운 시간만 끌었지요. 식당이 너무 안되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폐업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족의 생업터전이던 식당문을 닫던 96년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장사가 잘돼 식당 2층에서 식구들이 살았는데…. 결국 소송으로 돈을 까먹어 2층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고 식당에서 먹고 잤습니다. 그런데 2층에 사는 사람이 나가겠다고 하더군요.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살겠다는 겁니다. 할말이 없더군요. 우리가 2층에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식당도 문을 닫고 말았으니 살길도 막막해 졌지요. 있는 돈 다 날리고 빚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억울함을 풀어보려 소송을 했지만 계속 지기만 했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남에게 손벌리지 않고 살정도로 단란했던 우리 집안은 결국 파산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가해자는 저쪽인데 도대체 왜 피해자인 내가 소송에서 져야 한단 말입니까? 건축법을 위반한 건 내가 아니고 그쪽인데 말입니다. 이문제는 주택건설 촉진법에도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업자를 상대로 93년에 고소를 했습니다. 검사가 1.5M 떨어진 것을 인정만 하고는 가해자를 무혐의 처리 하더군요. 참으로 믿을수 없는 것이 법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KBS 신문고에 나와서 억울함을 호소했지요. 그때 민홍석 변호사님이 무료 변론을 하면서 건축업자측이 명백한 위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안됐습니다. 소송을 계속 해왔지만 역시 안되더군요. 내가 내돈 주고 산 변호사까지도 가해자 편이 되더군요.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98년부터는 집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서울을 내집 드나들듯 올라 다녔습니다. 국민대통령 김대중정권이 들어서면 해결이 잘될거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도 물거품으로 끝나더군요.

1998년 2월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하던 그날도 만사 제쳐놓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길을 달려왔습니다. 우리손으로 뽑은 국민대통령이라 억울함을 호소하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러나 혹시나 했던 기대는 빗나가고 역시 아니었습니다.

검찰과 판사와 변호사가 모두 한통속이 되어서 믿을수가 없다는 생각에 김대통령에게 직접하소연 하려고 청와대를 향했지만 그것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을 부산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면서 가족들한테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억울함을 풀기 전에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요. 아무리 천지사방 백방으로 호소해도 안되더군요.

MBC PD수첩, KBS 신문고, 부산방송 PSB에도 나의 억울한 사연이 나왔습니다. 서울법대가 사법비리피해사례집을 내주기도 했지요. 동아대 법대가 '법관의 법왜곡으로 인해 고통받는 시민의 사법구제를 촉구' 하며 1천명 서명운동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는 8개월을 질질 끌더니 지난 6월에 기각하더군요. 더이상 호소할데가 없습니다. 지금은 법을 믿지 않지만 항고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검찰과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법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차가운 지하철 입구에서 50일째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심판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여론재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소한 판검사 변호사 공무원등을 모함이라고 본다면 나를 교수형에 처해 주십시오. 만약 내가 그들을 모함했다면 말입니다.

경찰 닭장차에 몇번씩이나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강제로 실려가 버려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경찰이 24시간 내옆에서 나를 지키고 있습니다. 밤낮으로 24시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사람이 아닌 두명의 경찰이 말입니다.

웃음이 나오는 군요. 우리의 신변을 지키는 건지 우리가 청와대를 못들어가게 지키는 건지 알수가 없군요. 지나가는 시민들이 그러더군요. 판검사가 그런줄 이제 알았느냐구요. 어떤 시민은 이런말까지 하더군요. 대한민국 얼굴인 여기서 50일이 넘도록 밤낮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바로 코앞의 청와대서 그냥 두고 본다는 것이 너무 웃긴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청와대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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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0/11/07 10: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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