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34) 이야기 둘 (6)

피플코리아 | 입력 : 2003/02/09 [23:28]

◇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6

 

벌써 십육 년째나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 식당의 삼겹살 구이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써서 새콤달콤하게 맛을 낸 간장소스가 손님을 끄는 비결이다. 소스의 새콤한 맛에 취해서 먹다보면 느끼한 줄도 모르고 자꾸 먹게 되니 말이다. 우리도 어느새 사인 분이나 먹고 말았다. 그녀도 대단히 만족한 표정이다.

"괜찮았어?"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이제 그만 집으로 가요."

"왜, 서울 구경 더하고싶지 않아?"

"돌아다니면 자꾸 돈만 쓰잖아요."

아무래도 내가 돈을 쓰는 게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녀가 사양할수록 나는 자꾸만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에 왠지 미안한 표정이 어리는 것 같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그렇게 큰돈을 받는 것도 미안한데..."

오늘이 한 달째 되는 날이어서 통장에 급료를 넣어 줬더니 그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다. 나 참...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다인이 해준 일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어. 그래서 보너스로 뭔가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은데..."

"그러실 필요 없어요. 진석씨 덕분에 저도 편하게 지내고 있는 걸요."

"그러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봐."

"정말 괜찮아요. 자꾸 이러면 오히려 제가 부담 되요."

"사양도 여러 번 하면 실례라는 거 몰라?"

"그러면..."

"얘기 해봐."

"예쁜 머리띠나 하나 사 주세요."

"겨우 그거야?"

"대신 진석씨가 골라주셔야 해요."

"알았으니까 일단 나가지."

식당을 나온 우리는 옷에 밴 고기 냄새를 바람에 훌훌 날려보내며 한동안 거리를 거닐었다. 가을로 접어드는 시월 초순이어서 인지 선선함을 만끽하러 쏟아져 나온 젊은 연인들로 거리가 만원이다. 저들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처럼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더라도 저들 또한 계약이라는 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학벌, 미모, 경제력, 집안의 배경... 등등. 저들은 저들만의 조건으로 묵시적인 계약이 이루어졌을 테니까. 한참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인이 팔을 잡아 흔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응? ...... 아, 지금? 거리에 연인들도 참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우리처럼요?"

"으, 응...... 응?"

"왜 놀라세요? 지금은 우리도 연인 아닌가요? 집에 들어가면 파출부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내 반응에 실망한 듯 파출부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잦아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신경을 거슬리는 것은 '파출부'가 아니라 '지금은'이라는 단어다. 지금은 우리도 연인이라... 지금은...

 

백산

 

수정일 2003년 02월09일
<저작권자 ⓒ 인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플코리아의 다른기사보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