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84) 공간연출가 김근한

[클릭이사람] (84) 공간연출가 김근한
 
동경에서 자동차로 한시간쯤 걸리는 쯔쿠바에서 그를 만났다. 초면이지만 숨김없이 다 털어놓고 보여줄것 다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목욕탕에 들어가 인터뷰를 했다. 목욕탕 인터뷰. 욕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가식을 벗어버린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 했지만 몇마디 얘기를 나누다보니 금새 마음이 통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공간연출가 김근한(34). 예술이 좋아 일본 이바라키현 쯔쿠바까지 건너와서 5년째 창작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처음에는 크고 동글동글한 외모때문에 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별종이다. 술 좋아하고 호탕한 기질. 초면이건 구면이건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 나누기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까지의 전환기를 맞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고백과 용서를 테마로 작품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고백과 용서'. 그일환으로 4번째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자.

20세기의 니이체, 쇼펜하워 같은 자들은 과연 어떤 위인인가? 그는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쟁광, 이기주의, 언어의 기만과 인간 영혼의 모독을 잉태시킨 바보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세기는 눈부신 과학의 진보, 산업의 발전등 신세기의 도전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인간의 영혼은 어둡고 피폐하기만 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신을 죽이고 신의 위치에 인간을 올려 놓았지만 결국 새로운 신들이 남겨 놓은 것은 아침의 스모그같이 암울한 세상일 뿐이다.

지금도 지구의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지 모르는 미사일과 불과 5분뒤의 죽음도 예측할수 없는 혼돈속에서 작가로서 가장 노래하고 싶은 흥얼거림은 고백 그리고 용서일 뿐이다.

제일 관심있는 지금의 테마도 역시 부조리적 낱말이 되어버린 고백과 용서. 먼저 누군가의 혼란된 인물을 상상해 낸다. 그리고 그 인물의 방을 상상해 본다. 그 인물이 되어 일기를 써내려 간다. 다시 그는 자신으로 돌아와 행위, 오브제, 기록 영상들을 이용해 그 인물의 일상을 담아 내곤 한다.

누군가의 방을 만들어 가는 작업은 무척 미스테릭한 흥미를 느끼게 한다. 때로는 연극 무대처럼, 때로는 영화세트처럼, 또는 진짜 누군가의 방을 그대로 엿볼수 있는 전시장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홍익대 미대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예술가를 꿈꾸게 되었다. 그림을 좋아하다 자연스럽게 미대를 지망한다. 중앙대 조소과. 조각이 좋아서 들어갔는데 엉뚱하게 연극에 푹 빠졌다. 가난한 대학생이다 보니 무대장치를 해야 할때도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돈이 없으니까 필요한 소품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줏으러 다니기 일쑤였다. 주인 몰래 슬쩍 슬쩍 가져오는 등 솔직히 말해 훔쳐오기까지 했다.

한번은 조그만 바퀴가 필요한 연극이 있었다. 밤에 학교 칠판에 걸린 바퀴라는 바퀴는 모두 빼다가 무대장치를 하고선 일주일후 다시 제자리에 갔다 놓기도 했다.

그는 몰래 가져온다는 행위야말로 자신이 보기에도 민망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훔친것이 아니고 예술을 위한 아트처리라고 스스로를 위안삼았다. 그래서 지금도 모교의 연극부에서는 그때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었을까? 지금도 오래된 물건이나 영적인 끌림을 느끼는 물건이 눈에 띄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서 작품으로 뒤바꿔 놓고 만다.

연극에 빠졌던 그가 2학년 말부터는 영화에 미친다. 잘아는 선배가 오래된 8mm 무비 카메라를 그에게 선물로 준것이 계기가 되어서 영화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는 필림을 사다가 재미삼아 8mm 영화를 만든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다. 연극영화과 친구들과 함께 88년 겨울에 만든 '허구한 날' 이라는 16mm 작품으로 영화진흥공사 작은영화제에서 입선을 한다. 그뒤로 계속 비디오 카메라로 자기작품에 들어가는 영상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그는 역시 순수미술을 하는 사람이라 경험해 봤던 모든 예술이라는 형태를 전부 종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일본에 오게 되었다. 우연히도 하려고 하는 작업이 현대미술이었다.

이론 부분이 약했기 때문에 관련분야 서적 수백귄을 구해 쌓아놓고 보면서 실력을 익혀 나갔다. 지금도 가뜩이나 작은 그의 방에는 책·스케치북·작품이 산처럼 쌓여있어 몸하나 눕힐 공간마져 모자랄 지경이다.

일본에 와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언어장벽·정서차이에 나이까지 먹어버려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다. 그가 다녔던 쯔쿠바대학은 옛 동경교육대학으로 입학시험 및 학점관리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맨처음 입학시험에 붙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 또다른 고민은 경제문제. 장학금으로 간신히 학교는 다닐수 있었지만 작품을 하거나 보고 싶은 책을 살 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고생고생 하면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주택이나 건물에 외벽을 디자인하는 사무실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남는 시간은 범죄통역을 한다. 한국사람이 일본에 와서 말못할 사정으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 국제법상 통역이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그 통역을 그가 맡고 있다.

범죄통역을 하면서 그의 작품생활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고백이나 용서를 주제로 하는 영감을 거기서 얻었다.

알고보면 그 자신도 죄많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같은 나라 사람이 죄를 뒤집어쓰고 취조실에서 죄인과 통역관으로 마주 앉아 있을때 말못할 정도로 착잡한 심정이 든다.

때로는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하면서 똑같은 심정을 느끼곤 한다. 취조실에서는 통역관이었는데 고백성사를 하면서는 그가 바로 죄를 고백하는 죄인의 입장으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범죄통역을 하면서 만난 김이라는 사람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죄인으로 몰린 김이 간수몰래 두루마리 휴지에다 편지를 써서 그에게 전해주었다. 차안에서 그 휴지편지를 보고 한시간을 운적이 있다.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한없이 착하고 영리한 사람인데 죄아닌 죄인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진짜 죄인들은 벤츠타고 아직도 버젓이 세상을 휘졌고 있는데… 단지 김이라는 친구는 한국에 IMF가 터졌을때 생존을 위해 일본에 넘어온 피해자일 뿐인데 그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죄가 있다면 한국에 IMF를 몰고온 검은 그림자들인데… 그들은 벤츠를 타고 있고 IMF피해자가 되어 생존을 위해 일본에 온 김은 유치장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다행이 김은 한국에 돌아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후 두사람은 의형제로 지내고 있다.

20세기는 어둡기만 하고 공해등으로 찌들어 지구가 파멸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것들이 그의 작품세계에 주제로 들어가 있다. 일본에서 만난 스승. 이름은 가와구치. 일본에서 손꼽히는 유명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작업복을 입고 솔직 담백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지금도 가장 가까운 술친구이자 가족이자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계속 지내고 있다.

어떤 특정한 공간에 설치예술을 하는 사람이 공간예술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이 좋은 편이다. 그를 가르친 교수님도 그를 가장 아낄 정도로…

그는 현재 마음에 맞는 일본의 젊은 작가들을 구성해서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당분간 일본에서 예정되어 있는 작품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언젠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는 판단이 들면 미련없이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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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0/10/13 1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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