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83) 일본에 우뚝선 한국인 여의사 김정아 (3)

[클릭이사람] (83) 일본에 우뚝선 한국인 여의사 김정아 (3)
 
이런 병원 보셨나요. 촌구석의 작은 2층병원에 환자를 위해 이렇게 넓다란 공간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경우는 아마 어디서도 찾아 보기 힘들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진료는 물론이고 환자의 다정다감한 말상대가 되어주는 우리 원장님 넘버원 입니다. 게다가 미모까지 뛰어난 미인원장님이거든요"

후몽인 진료소에서 만난 환자의 보호자가 늘어놓는 병원자랑이다. 김원장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훌륭한 치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가 하는 어떤 말이라도 귀담아 듣는다. 진료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일이십분은 기본이고 어떤때는 한시간이 후쩍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역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충분한 진료를 받을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간세이보에 입원한 노인은 모두 60명. 병상이 60개 밖에 없기 때문에 더이상 받고 싶어도 받을수가 없다. 시설은 물론 서비스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입원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많이 밀려있는 상태. 멀리 동경에서 온 환자들이 절반을 넘는다. 평균 연령은 80대로 치매환자들이 특히 많다. 한국인 환자로는 할머니가 딱 한분 있다.

턱없는 시설.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그런 건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턱이 없다. 모든 출입구에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문턱이 당연히 있다는 고정관념이 무참하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턱을 찾기 위한 턱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설마 수백평도 넘는 이 넓은 실내에 턱하나 없을까 싶어 여기 저기 둘러보았지만 어디를 가도 턱은 없었다. 결국 이 건물이야 말로 철저한 준비끝에 만든 보건시설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휠체어 타고 실내 어디든지 갈수 있어서 좋아요. 출입문 밖에서 손하나 까딱 안하고 실내로 들어올수도 물론 있지요. 이곳에서 몇달째 있지만 불편한줄 몰라요. 실내에서 병실은 물론 어디라도 휠체어를 탄채로 갈수 있으니까요"

환자의 양해를 얻어 병실에 들어가 보았다. 노인은 휠체어를 탄채 곧장 식당에서 복도를 지나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안에 있는 화장실도 물론 턱이 없다. 턱없는 평면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도록 설계한 김원장의 지혜가 돋보인다.

"노인복지가 세계최고인 스웨덴에 3개월간 머물면서 많은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노인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고 싶었어요.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도 실내 어디든지 갈수 있도록 1층의 모든 시설을 턱없는 평면으로 꾸몄습니다"

김원장이 운영하는 간세이보는 스웨덴의 노인복지 단체와 정기교류를 맺어오고 있다. 간호사와 직원들이 매년 상호 방문을 하면서 선진기술을 익힌다.

김원장이 지금까지 걸어온길은 미완의 길. 그렇기에 헤처나가기가 남들보다 몇배나 더 힘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 언제나 그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여자였다. 동경에서 의대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일본 교육계가 떠들썩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한국인의 의대 입학여부를 놓고 학교 당국에서 뜨거운 찬반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국인 신분으로 당당한 의대생이 되었다. 선배의 유혹.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난다. 일본인으로 같은 의대 2년 선배. 그렇게 만나 결혼을 하고 부부의사가 되어 동경 암센터에서 함께 근무를 하였다.

남편은 현재 의사이면서 스님. 일본에서도 그 유명한 순례사찰 西明寺의 주지로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두가지 직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의대를 졸업하고 다시 불교대학을 나온 남편이 동경암센터를 때려치운것도 스님이 되기 위해서였다. 주지로 계시던 부친께서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西明寺로 내려와 세습주지가 되었다.

간세이보와 후몽인 진료소의 운영은 전적으로 김원장이 맡고 있다. 뭐든지 한번 일을 벌이면 완벽하게 해내고 마는 김원장의 성격을 남편은 잘 알고 있기에…

직원들도 김원장을 닮아서일까? 노인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한없이 공손하고 예의 바르다. 노인 환자가 코를 흘리면 간호사가 다가가서 수건으로 닦아준다.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넘어지면 간호사가 재빨리 다가가서 얼굴하나 찡그리지 않고 부축해 준다.

아침 식사시간. 간호사와 직원들이 환자와 함께 식사를 한다. 직원용 식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직원들이 사이 사이 앉아서 오손도손 식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환자가 밥풀을 흘리면 옆에 있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환자가 손을 잘 움직이지 못하면 옆에 있는 직원이 밥에 반찬을 얹어서 입에 넣어준다. 어린아이 다루듯 환자에게 밥을 먹여준다. 간호사가 자기입에 밥 한숟갈 집어넣고 옆에 있는 노인에게 한숟가락 떠먹여 준다. 노인 한분이 우유를 마시다가 그만 식탁에 흘리고 말았다. 옆에 있는 간호사가 얼른 수건을 꺼내 닦아준다.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빈숟가락 잡을 힘도 없어 보이는 할머니. 옆에 있는 간호사가 반찬과 밥을 섞어 정성껏 비비더니 역시 할머니의 입에 밥을 먹여 준다. 간호사가 밥숟가락을 턱밑에 대주면서 "아"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리는 시늉을 하면 할머니가 "아"하고 입을 딱 벌려 받아 먹는다. 어린아이처럼 받아 먹는 할머니의 얼굴에 간간히 흐뭇한 표정의 미소가 흐른다.

혼자 걷는 연습을 하다가 넘어지는 할머니. 남자 직원이 놀라서 달려가 일으켜 세우더니 번쩍 안고 병실로 들어가 침대에 눕힌다.

목욕시간. 직원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탄채로 할머니가 목욕탕에 들어간다. 직원들이 어린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 옷을 벗겨주고 목욕을 시켜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성껏 닦아준다. 새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할머니가 목욕을 마치고 두팔 벌려 직원품에 안긴다. 몸에서 몸으로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느낌이다.

목욕할때와 식사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노인들. 그렇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8순 할머니의 얼굴에 햇살처럼 환한 미소가 번진다.

요실금 할머니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은 기본. 흡수력이 강하고 속이 두툼한 기저귀팬티를 입혀주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3명의 직원들이 할아버지 한분에게 매달려 있다. 면도를 해주고 있다. 면도를 안하겠다고 머리를 흔들어대면서 소리 소리 지르는 할아버지. 두명은 양쪽에 바짝 붙어서서 할아버지를 달래고 있고 한명은 다칠세라 조심조심 면도를 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난다.

김원장은 이들에게 의사이면서 말동무가 되어준다. 때로는 상담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호스피스가 되어주기도 한다. 노인환자들에게 김원장은 뭐든지 다 해줄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김원장의 그림자만 보아도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드는 노인환자들.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김원장은 간세이보가 일본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시설이라고 자부한다. 건물 실내는 모두 나무를 재료로 하였다. 자연과 살아 숨쉬는 기분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연과 상생하는 자연친화형 건물. 오폐수 자체정화시설까지 갖추어 놓았다. 휠체어의 종류도 환자에 따라 다양하다. 엄지손가락 하나만 움직일수 있는 환자에게는 휠체어를 작동할수 있는 모든 센서를 엄지손가락 근처에 설치해 놓았다. 손가락 하나만으로 휠체어를 몰고 실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닐수 있다.

허리가 약한 노인은 두툼하고 푹신푹신한 에어쿠션 등받이를 댄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고개를 잘 가누지 못하는 환자는 역시 머리위까지 올라오는 에어쿠션을 댄 휠체어를 탄다. 휠체어도 옷도 식사도 모두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르다. 마치 유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개성따라 취향 따라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 맞춤옷을 입듯이…

휠체어를 탄채로 환자를 목욕시킬수 있는 시설도 있다. 숟가락도 환자의 손을 움직일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다양하다.

김원장 부부와 여동생등 3명의 가족의사가 똘똘뭉쳐 운영하는 후몽인진료소. 어떤 환자가 오더라도 서로 협진할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집안친척의 의사가 한자리에 모이면 종합병원을 차리고도 남을 정도라고 어머니가 귀띰한다.

기회가 되면 조국의 노인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김원장. 2박3일의 취재를 마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면서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은 환자들이 간식을 들면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에어쿠션 등받이를 댄 휠체어 등 환자마다 사용하는 휠체어가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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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0/10/12 10: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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