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깨는 사람들] (42) 유일한(1895~ 1971)… 정직한 모범기업인, 사회사업가, 독립운동가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10/22 [20:10]

 

[기록깨는 사람들] (42) 유일한(1895~ 1971)정직한 모범기업인, 사회사업가, 독립운동가

 

 

평생 모은 개인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난 기업인. 자신이 설립해서 키운 회사까지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몽땅 넘겨줬다. 이윤추구에만 매달리는 기업인들의 눈에는 바보같이 보일수도 있는 그 어려운 일을 유일한 유한양행 설립자가 스스로 실천했다.

 

 

유일한 박사는 의약회사 유한양행을 설립하여 의료약품 공급에 공헌하였으며, 독립운동을 통하여 수차례 건국훈장을 수여받았다.

유일한 박사는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재산을 사회와 교육에 환원했다. 대한민국 기업가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투명하고 정직한 기업 경영의 표상으로 존경받고 있다.

유일한은 9살 때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부모 품을 벗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인종차별로 서러움을 겪기도 했지만 강한 성격으로 극복했다.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를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면서 다녔다.

대학에 다닐 때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독립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19193.1운동 직후 서재필이 소집한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연합회의에 이어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세계에 선언하고자 416일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였다. 대학 졸업후 대학원을 거쳐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공부한 법학박사다.

유일한은 1926년 귀국하여 종로에서 유한양행을 세웠다. 유한양행이 팔던 약은 수입 결핵약, 최초로 개발해 판매한 진통소염제 안티프라민, 혈청 등이었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유일한 박사의 기업경영 철학이다. 기업 세습을 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CEO제도를 도입했다. 기업을 가문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뒤 은퇴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납세도 철저히 했다. 연세대병원에도 의학과 연구 교육 활동을 위한 회사 주식을 기부했다.

1939년 유한양행은 사원에게 주식을 나눠줬다. 대한민국 최초의 사원지주제로 사원들의 애사심은 높아졌고 회사는 더욱 성장했다.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압력에도 유한양행은 굴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는 각 기업들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했고 유일한은 이를 거절했다. 괘씸죄에 걸린 유한양행은 세무조사를 피할 길이 없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있었다. 바로 유한양행이다. 세무조사원이 아무리 탈탈 털어도 유한양행은 꼬투리 잡힐 꺼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지 않아도 되는 세금까지 자진해서 냈을 정도로 유한양행 유일한 대표는 투명경영을 펼쳐왔다. 유한양행의 세무조사 결과는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을 괘씸죄에서 훈장으로 돌려놓았다. 유한양행은 1968년 정부로부터 모범납세 법인으로 선정되어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유일한 박사는 생전에 이미 유한양행 주식의 40%를 공익재단에 기증했다. 이어서 자신이 소유한 주식을 100% 기증했다.

유일한 박사가 타계하고 얼마 후 유언장이 공개됐다. 장남에게는 자립해서 살라는 유언을 남겼고, 손녀에게는 등록금을 물려주었다. 한사코 사양하던 손녀에게 물려준 등록금 외에는 모두 사회에 기부했다.

자신의 무덤 주변은 유한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가족에게는 기업도 재산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유언장. 유일한 박사가 남긴 가장 빛나는 유산이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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