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깨는 사람들] (39) 김구(1876~ 1949)… 항일 독립, 통일운동에 헌신한 민족지도자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10/20 [21:03]

[기록깨는 사람들] (39) 김구(1876~ 1949)항일 독립, 통일운동에 헌신한 민족지도자

 

여야 정치인, 국민들을 총망라하여 대한민국 역대 가장 존경받는 민족 지도자, 가장 닮고 싶은 정치인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인물.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의 중심에 수많은 독립운동거사를 주도한 백범(白帆) 김구가 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면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다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김구 선생이 남긴 이 어록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지 않고 회자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백범이 남긴 업적은 차고 넘쳐서 말과 글로 일일이 설명할 길이 없다. 백범에겐 부모처자식보다 나라가 먼저였다.

백범일지는 임시정부의 산증인 백범이 남긴 유서이자 독립운동사다. 일지에 담긴 구절구절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집은 좁아도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산다. 나는 의심하는 사람이거든 쓰지를 말고, 쓰는 사람이거든 의심을 말라는 것을 신조로 살아왔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내 나라가 식민 지배당한 아픔을 알기에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길 원치 않는다.

일제치하 시절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의 등불같은 스승 김구 선생의 빛나는 어록들이다.

백범은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조약 반대운동을 펼쳤다. 1908년 비밀 신민회에 가입하여 구국 운동을 전개해오던 백범은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동지들을 지키기 위해 끝내 입을 열지 않고 17년 형을 선고받는다.

김구는 옥중에서 천한 백()성부터 평범()한 일반인까지도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백범(白凡)이라는 자신의 호를 지었다.

백범은 수감 5년째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19193.1 운동 후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계속되자 백범은 조국에서 더 이상 독립운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중국 상해로 갔다.

김구가 상해에 가면서 일본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독립 운동가들과 힘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백범은 경무국장을 역임하며 임시정부 수호자 역할을 했다.

일제의 감시와 사상대립으로 조직이 분열되고 임시정부가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백범은 혼자 임시정부를 지키며 해외에 있는 동포들에게 편지로 지원을 요청했다.

떠났던 동료들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백범은 다시 힘을 얻어 한인 애국단을 조직했다. 이봉창, 윤봉길의 거사로 한반도 문제가 국제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독립운동은 다시 불타올랐고, 세계는 한국의 독립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2000km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2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백범은 1945년 해방을 맞아 꿈에 그리던 고국땅을 밟았다. 백범은 독립 후 귀국해서도 하나로 통일된 정부를 주장하던 민족지도자였다.

백범은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쳤지만 조국은 그를 배신했다.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그토록 사랑하던 한국에서 한국인 안두희에게 피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백범이 흉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변했을까? 정치인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백범을 꼽으면서 정작 현실의 정치인들은 왜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걸까?

김구 같은 민족 지도자를 다시 만난다면 여한이 없겠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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