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청와대 가족 구두 만든 수제화 명장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06/01 [22:53]

[인물탐험] 청와대 가족 구두 만든 수제화 명장 전태수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

 

서울 성수동 수제화의 거리에 가면 50년 내공으로 명품 구두를 만드는 구두 명장을 만날 수 있다. 수제화 전문업체 JS슈즈디자인연구소 전태수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성수동 수제화의 산증인으로 52년 경력 중 41년을 성수동에서 작업해 왔다.

 

 

2017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TV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던 버선코 꽃신을 기억한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신었던 버선코 구두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신었던 빨간 꽃신이 바로 전태수 장인의 작품이다.

전태수 명장의 구두를 안 신어본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신어본 사람은 없다. 전태수 명장의 명품 구두를 신어본 사람이라면 1년이고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다시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고객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덕분에 굳이 광고를 안 해도 전태수 명장이 성수동을 떠나지 않고 수제화의 거리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평생 구두를 만들며 살아온 수제화의 고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방문 이유와 목적도 다양하다.

정치인, 재계 인사, 연예인, 가수, 대학총장들이 전태수 명장에게 구두 제작을 의뢰하고 구두 디자이너들이 찾아와 노하우를 배워갔다.

전태수 명장의 손에서 탄생한 구두는 디자인이 세련되고 착용감이 좋아 직장인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전태수 장인에게 수제화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한 사람만을 위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구두를 만든다.

길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다자인을 연구하는 등 피나는 노력과 집념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전태수 명장은 강원도 홍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구두 기술을 배우기 위해 1969년 서울로 올라왔다. 14살 때 영등포 구두공장에서 허드렛일로 구두 인생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52년째 구두제작 한길을 걷고 있다.

영등포의 지하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곁눈질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서울역 염천교 구두 골목을 거쳐 명동의 고급 제화기업에 입사해서 패션과 디자인을 익혔다.

회사에 11년간 근무하면서 유럽, 홍콩, 일본 등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다. 덕분에 선진국 유명 브랜드 슈즈 공부를 많이 했다.

1980년 회사에서 나와 성수동에 직접 수제화 공장을 차렸다. 14살에 구두공장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여 얻어맞아가면서 기술을 배워 20대에 어엿한 사장이 되었다. IMF 전까지는 잘 굴러갔다. 직원도 충원하고 회사 규모도 커졌다.

탁월한 손재주는 타고 났다. 그가 어렸을 때 부친은 시골 대장간에서 낫, , 호미, 괭이 등 무슨 연장이든지 척척 만들어내는 장인이었다.

부친으로부터 장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손기술로 구두 만드는 일에 평생 뼈를 묻고 살아온 전태수 명장을 당해낼 자가 누가 있으랴!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출발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고급 수제화싸롱화로 명성을 날리던 맞춤구두 매장과 공장들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성수동으로 옮겨오면서 역사가 시작되어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수제화 거리가 형성됐다.

1997년 말에 터진 IMF 외환위기 여파로 싸롱화붐이 꺼지면서 구두 공장들이 대거 성수동으로 이전했다.

한 때 성수동 구두 거리는 1천여 곳에 달하는 수제화 생산업체와 중간가공, 원부자재, 판매 사업장이 성업을 이루기도 했으나 현재 500여 곳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산 저가공세에 밀려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지금도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대한민국 수제화 1번지로 국내 수제화 제조업체의 70%가 밀집해 있다.

전태수 명장도 IMF 파고를 피해가지 못했다. 1997년 말 한반도를 강타한 IMF로 그동안 일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최악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기술을 밑천삼아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버틴 끝에 다시 일어섰다.

격렬한 춤을 추는 가수, 안무가 등이 전태수 명장이 만든 슈즈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좋은 신발은 좋은 브랜드가 아니다. 발이 편하고 착용감이 좋은 신발이 좋은 신발이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발에 피로가 쌓인다. 편한 신발을 신으면 몸의 균형도 잡아주고 발의 피로감도 사라진다.

전태수 명장이 운영하는 JS슈즈디자인연구소는 성수역 3번 출구에서 281M 거리에 있다. 연구소에 들어서자 1층 매장을 가득 메운 명품 구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품의 색상도, 종류도, 디자인도 다양해서 깜짝 놀랐다. 빨려 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색상에서부터 황금빛, 꽃무늬 등 마치 국제 전시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 특히 부츠, 뾰죽구두, 굽없는 신발 등 여성용 수제화에 눈길이 쏠렸다.

이 멋진 수제화들은 언제 어떤 주인을 만날까? 수제화들이 저마다의 화려함을 과시하며 진열대에서 자신들의 짝이 되어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명품 구두에는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다. 전태수 명장은 ‘JS슈즈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남다르다. 장인의 혼을 담는다는 철학으로 한 땀 한 땀 손으로 꿰매 감촉이 부드럽고 편안한 명품 수제구두를 제작한다.

발의 형태와 개성에 따라 굽높이, 키높이, 발볼 넓이 및 가죽 재질, 색상 선택 등을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제작가능하다. 왼발과 오른발의 미묘한 차이까지도 반영한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성화와 달리 명장의 손으로 빚어내는 수제화는 한 켤레가 완성되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작 공정이 번거롭고 복잡하다. 발 모양과 사이즈를 측정하고, 수제화의 기본 발 틀, 목형을 만들고, 사용 용도와 디자인을 결정하고, 가죽을 재단, 가봉한다. 구두의 형태를 잡아주기 위해서 가죽을 잡아당겨 고정하고 열을 가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연구소 2층은 사무실과 작업실이다. 전태수 명장은 구두 제작 뿐 아니라 각종 디자인 연구와 소재개발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국내 구두제작기술은 세계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수제화 관련 인프라를 잘 갖추고 구두 장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한다면 수제화의 한류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수제구두가 세계적 브랜드로 명성을 얻기까지는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다.

전태수 대표가 구두박물관 건립과 수제화와 관련한 인프라 구축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갖는 이유다. JS슈즈는 전태수 명장의 자존심이고 자부심이다.

구두박물관이 있으면 장인의 혼이 담긴 전태수표 명품 구두 ‘JS슈즈를 전시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수제화의 한류바람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전태수 대표는 2016년 대한민국 여성구두 명장 1호로 선정되었으며 20212월 수제화 명인으로 인증 받았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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