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598) 60넘어 배운 컴퓨터 자판 두드려 아들과 함께 책낸 80세 어머니 여숙아

[클릭이사람] (598) 60넘어 배운 컴퓨터 자판 두드려 아들과 함께 책낸 80세 어머니 여숙아

토요일 꼭두새벽부터 서둘러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나이 60이 넘어 배운 컴퓨터와 타자실력으로 검사장 출신 아들과 함께 책을 펴낸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부산 동래구에 사는 80세 여숙아 할머니는 아들이 4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 엄마의 지극 정성을 먹고 자란 그 아들은 반듯하게 장성해서 성공가도를 달려왔고 지금은 50대 후반이 되었다.

할머니는 최근  책을 펴냈다. 엄마의 자랑이자 큰 기쁨인 아들과 함께 쓴 책이다. 어머니는  앞부분을 집필했고 아들은 뒷부분을 썼다. 

어머니는 60대 초반에 컴퓨터를 배우고 자판을 익혔다. 노인대학에서 배운 컴퓨터 실력으로 틈틈이 직접 워드를 쳐서 책 2권을 만들었다. 그동안 써온 일기를 정리한 책이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창시절부터 자녀의 성장과정을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을 담았다.

어린시절부터 간직해온 문학소녀의 기질로 80년을 살아오면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마치 실타래를 풀어 옷을 짜듯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나갔다. 

어머니의 일기에는 아들이 4살부터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어머니의 일기에는 자랑스럽고 대견한 딸도 등장한다. 딸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

어머니의 최종학력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전신) 졸업이다. 하지만 간판이 다가 아니다. 일기를 쓰면서 다져진 문장력은 이미 책을 펴낼 정도로 실력을 검증 받았고 서예와 한자까지 두루 두루 배움의 폭을 넓혀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 동네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한글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니 어려서부터 총기(聰氣)도 좋았나 보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남편은 물엿공장을 했다. 하늘 같이 믿고 의지하던 남편은 투병 생활 끝에 1999년 하늘나라로 갔다.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당신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낼는지요. 잊으려 하면서도 자꾸만 생각나서 눈물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는 앞서간 그이에게 잘 정리하고 왔노라고 얘기 할 수 있어야겠지…'

사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일기 내용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절절하고 애틋하다. 아들이 장성하여 잘나가는 법조인이 되었어도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일기는 계속 이어진다. 

아들이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부터는 아들과 손편지를 수시로 주고받았다.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버리지 않고 모두 보관하고 있다면서 아들자랑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들의 효심이 묻어나는 한 대목을 옮겨본다.

하루는 아들이 풋고추를 택배로 보내왔다.  당시 법무부에 근무하던 아들이 공터에 심어서 첫 수확한 농작물이었다. 아들이 직접 재배한 고추맛이 어떤지 묻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이야기의 반전은 그 다음에 있다. 아들이 키운 고추가격 보다 택배비가 훨씬더 많이 들었다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 또한 대단하다.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안다더니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어머니가  아들과 공저로 책을 펴내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런 점에서 여숙아 할머니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아주 평범한 할머니일뿐이라며 자신을 낮춘다.

현모양처형으로 평범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쓴 일기가 정식 출판사를 통해  어엿한 한권의 저서로 세상에 나온 셈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번 책을펴내기에 앞서 할머니는 이미 두권의 책을 비매품으로 펴낸 경험이 있다. 한권은 엄마가 즐겨보는 즐거운 옛추억. 또한권은  황혼의 길목에서. 

아들이 4살때부터  법조인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써온 일기를 책으로 엮었고 두번째 저서는 하늘로  떠나보낸 남편을 그리워하는 사부곡이다.

이번에 아들과 공저로 엮은 책은 어머니가 두 권을 습작으로 펴낸 내공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는 메일도하고 인터넷도 한다. 아들과 메일로 소통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며느리와 아들딸의 동정도 살핀다.

어머니가 본 아들은 4살때부터 천재였다. 자식을 바라보는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를 아들은 존경한다.  

비록 서툴지만 어머니의 글은 제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글입니다. 지금도 자식들과 가정, 이웃, 친지, 나라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아름다운 이름 여숙아 나의 어머니. 당신의 올곧은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하루하루 집불 모양 내 몸이 늙어지는 거야 도리가 없지 않는가.  이 정도라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더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고 싶다. 늙은 것이 특권도 아니고 잔소리로 개입도 하지 말자.

어디서나 따돌림 당하지 말고 스스로 외로움을 달래며 취미생활하면서 즐거운 일이 어디 있을까 찾아보자. 고집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고 양보하고 웃으며 곱게 살다 가자는 여숙아 할머니의 다짐에서 그가 살아갈 여생의 삶이 어떨지 그림이 그려진다. 

여숙아 할머니는 6.25전쟁 그리고 60, 70년대 산업화시대를 거쳐 격변의 80년대와 경제적 안정을 찾은 2000년대까지 인생의 힘든 여정에서 쓰러지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대한민국 부모님 세대의 전형적인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가 책을 펴냈다. 여숙아 할머니는 평범한 사람도 일기만 꾸준히 쓰면 충분히 한권의 책으로 펴낼 수 있다는 희망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전국민 1인1책쓰기운동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굳이 책이름과 아들의 실명을 밝히지 않은 이유가 있다. 60 넘어 배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잘난 아들과 함께 책을 펴낸 80세 여숙아 할머니의 도전정신이 그보다 더 의미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 기분 좋은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유턴하여 서울역에 도착하니 오후 4시40분이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어섰다는 말이 실감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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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6년 02월 03일 11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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