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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54) 어버이날과 노인의날 만든 1등공신 청파 이돈희 선생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4/05/19 [14:31]
[클릭이사람] (554) 어버이날과 노인의날 만든 1등공신 청파 이돈희 선생    

아버지날과 노인의날을 만든 이돈희(67) 선생을 보면 특별한 계시와 사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 같다.

갈수록 가정해체가 늘어나고 지구 밖으로 탈출하려는 효친(아버지날)․경로(노인의날)사상의 부활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화두로 삼고 50년 넘게 이를 실천해오고 있다.

우리가 태어나 살면서 피해가기 힘든 세대 사이클을 크게 나누면 어린이․ 어버이(어머니아버지)․노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어린이 사랑에 일생을 바친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과 효친경로사상 부활에 인생을 건 청파(靑波) 이돈희 선생은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선후배로 50년 터울이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1922년)을 만들었고 이돈희 선생은 아버지날과 노인의날을 만들었으니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이돈희 선생은 무녀 독남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치밀하게 작성한 평생 계획표를 필생의 운명으로 계시 받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실천해나가는 사람 같다.

아버지와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우리나라가 바로 설수 있다는 생각으로 청소년시절부터 솔선수범에 나섰다.

아버지세대도 노인세대도 아닌 고2 16세 때 아버지날을 만들고 대학 4학년 21세 때 노인의 날을 만든 그가 이제는 60대 후반으로 지하철 무임승차와 효친경로 대접을 받아야 할 노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가 하는 일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무슨 일을 하다가 잘 안 풀리거나 막힐 때마다 간절하게 기도하며 기도 중에 계시처럼 받는 응답으로 길을 찾는다.

어렸을 적 외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 어머니날이 돌아올 때마다 가정의 중심에 선 아버지도 당당하게 카네이션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가 나섰다.


선린상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3년 아버지날을 만들고 이를 알리기 위해 각 언론사를 찾아다녔다.

어머니날이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날을 만들어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고 각계각층에 편지를 쓰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일간지에 광고도 내면서 몇 년을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제가 외아들이라 외롭게 컸어요. 어머니는 건강 문제로 시골 외가에 가시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부산에 계시다 보니 저 혼자 서울에서 자취를 했어요” 

아버지가 서울로 출장 오는 날이면 아들을 찾아와 함께 지내곤 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제가 차려드린 식사를 하던 중에 ‘딱’하고 돌 씹는 소리가 나더니 어린 제가 미안해 할까봐 그냥 삼키시더라고요”

그렇게 두 부자가 함께 보낸 시간들은 외롭게 자란 무녀독남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해줬고 아버지날을 만들어 그런 아버지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었다.

아들보다는 딸이 아버지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화여대 신문 이대학보에 1968년 5월 20일 ‘아버지날을 제정하자’는 광고를 하였다. 그것이 먹혀들었다.

이대학보에 광고가 나가고 3년이 지난 1971년 6월 12일 처음으로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이화의 아버지날’ 행사를 했다.

이대학보에 실린 아버지날 광고를 본 1학년 학생들이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기억을 되살려 '이화의 아버지날'을 만들고 다시 2년이 지난 1973년에 국가에서 어버이날을 제정하였다.

1956년부터 해마다 5월8일을 국가에서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1972년 17회까지 기념행사를 해오다가 1973년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합쳐진 어버이날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아버지날을 만들어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고 주장한지 꼭 10년 만에 맺은 결실이었다.

그뿐 아니다. 노인문제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1968년 대학 4학년 때 노인의 날을 그가 혼자 만들었다.

유엔에서 세계 노인의 날을 1991년에 만들었으니 이보다도 23년이 앞섰다.

1968년 그가 노인의 날을 만들어 여론 조성에 앞장서온 노력에 힘입어 29년만인 지난 1997년 정부에서 노인의 날(10월2일)을 법정 기념일로 공식제정하기에 이르렀다.

피끓는 청년시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1972년 한국노인문제연구소와 1976년 한국노인학회도 설립했다.

대학 4학년 때 노인의 날을 만들고 3년간 준비하여 또 한 번 큰일을 치렀다. 1971년 4월8일 그가 직접 서울 마포의 한 예식장을 빌려 ‘노인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450명의 어르신을 초대하여 식사대접․ 기념품 선물에 국악인의 공연까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행사비용도 직접 마련하였다.

젊은 청년이 주관한 행사에 초등학교장, 구청장, 경찰서장, 대한노인회장, 前서울시장 등 지역기관장이 총동원한 자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노인의날 제정 취지문’을 발표하였다.

당시 사단법인 대한노인회(회장 김공평)에서 성대한 노인행사를 치른 24세 이돈희의 공로를 인정하고 치하하는 표창장을 수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노인 문제 이외에도 그가 하는 일이 많다. 감정평가사, 대한노인신문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정지도자와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해야 마땅하거늘 거꾸로 국민이 지도자와 정치인을 걱정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1년 故 이태석 신부의 수단 봉사활동을 담은 다큐 ‘울지마 톤즈 DVD’ 극장판 300개를 18대 국회의원 전원에게 기증한 이유도 바로 의정활동을 잘해달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모교 후배 사랑도 지극하다. 2003년 발간한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위하여’ 후편으로 외롭고 힘들었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이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라는 책을 펴내 통 큰 기부를 했다.

2013년 10월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전교생에게 1500권을 기증했고 올해 4월25일 선린중학교 3학년 후배 전원에게 전해질수 있도록 300권을 기증 선물했다.

“후배들이 제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인 효친경로사상을 알고 부모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며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교훈을 느꼈으면 합니다”

그의 저서 기부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될 모양이다. 전국의 1만6000여개 도서관 중에 1354개를 엄선하여 ‘이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를 연내 기증할 계획이다.

이 세상에 노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나 자라면서 질병이나 각종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지 않는 한 누구나 노인이 된다. 며느리가 30~40년 후엔 시어머니나 장모가 되고 40~50년 후면 노인이 된다.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다 보니 효친과 경로는 바로 자기의 문제요 모두의 문제다.

이돈희 선생이 지구 밖으로 탈출하려는 효친경로 사상의 부활에 평생을 올인해온 이유다.

“앞으로 몇백년 세월이 흘러도 가족간 화목과 사회 질서를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효도를 해야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저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선을 꼭 이루고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젊은 사람이 아버지날․노인의 날을 만들고 효친경로 부활에 매달리다보니 괜한 일을 한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정계진출 디딤돌로 삼기 위한 꼼수는 아닌지 심지어 노인들을 핑계로 사회에 손을 벌리려는 속셈 아니냐며 그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토지공사에서 충실한 직장인으로 21년을 근무했고 노인 문제와 무관한 베테랑 감정평가사로 어느 누구 못지않은 전문 직업인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평생 갈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의 믿음이다.

“어렸을 적 교리를 가르쳐 주신 수녀님께서 예수님처럼 성가정을 이루라고 아버지는 요셉, 어머니는 마리아, 저는 임마누엘이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셨어요”

1973년 결혼하여 지금까지 평생 힘을 실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 기회에 꼭 전하고 싶다는 그는 어려워 좌절할 때마다 아내가 용기를 줬다고 고백한다.

가정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염원하는 그의 마지막 기도는 한결같다.

“하느님! 이 지구상의 모든 부부와 저의 부부에게 항상 서로 사랑하는 마음 갖게 하소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는 앞으로도 지구밖으로 탈출하려는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위해 올인할 생각이다.

지구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효친 경로사상을 이해하고 효문화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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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4년 05월 19일 14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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