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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49) 한국의 에디슨 한국발명학회 신석균 회장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4/03/05 [06:14]
[클릭이사람] (549) 한국의 에디슨 한국발명학회 신석균 회장

“밥은 굶을 수 있어도 발명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신석균(85) 한국발명학회 회장은 한국의 에디슨으로 불린다. 

5살 때부터 발명의 세계에 빠져들어 평생 외길을 걸어 온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발명의 아이디어이자 호기심 천국이다.

평생을 발명가로 살아 온 탓일까.

잠을 잘 때 발명아이디어 꿈을 꾸고 깼다가 다시 꿈을 꿔도 연속으로 발명 꿈의 스토리가 이어진다니 얼마나 미치면 이럴 수 있나 싶어 할 말을 잃었다.

“발명가는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세상에 없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에게 발명은 생활 그 자체다. 끝없이 발동하는 호기심으로 눈에 보이는 하나하나가 모두 발명의 아이디어를 주고 그 아이디어를 반드시 발명으로 연결시킨다.

국제대회 수상(메달)만 200개가 넘는 세계최다 국제 발명상 수상 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 발명의 날을 부활하고 특허국을 특허청으로 격상시키는 데에도 일조했다.

안데르센, 세종대왕, 월트디즈니, 정주영, 조앤롤링, 라이트형제,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이순신, 빌게이츠, 에디슨, 아인슈타인, 장영실, 노벨, 을지문덕, 레오나르드다빈치, 스필버그, 찰리채플린, 백남준.

포스코 교육재단에서 지원하는 ‘초등학교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서’에 실린 18명의 인물(학년당 3명씩)이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18인의 인물 중에 한국이 낳은 그가 있다.

초등학교 국정교과서(5학년 사회과 탐구)에도 한국의 에디슨 세계최다발명가 신석균이라는 이름이 올라있다.

신 회장은 평생 1만여 건이 넘는 발명 창작으로 국내외에 출원한 특허가 4000건이 넘고 특허와 실용신안·의장 등록이 1700건에 달한다.

과학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장영실과학문화상 발명문화대상(2000년)을 탔고 장영실 과학문화상 심사위원만 13년을 했다.

발명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다. 해외 시장에 가장 빨리 진출할 수 있는 건 발명으로 얻어지는 재산권, 특허권이다. 발명은 영원히 남는다.

인류의 역사는 발명의 역사다. 60만년전 구석기시대부터 발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발명가 신 회장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이유다.  


신 회장은 해외 발명전시회 출품과 국제 트렌드 파악을 위해 그동안 30개국 이상을 돌아봤다. 국제발명전시회 현장에서 발명의 세계트렌드를 읽고 100년 앞을 내다본다. 국제발명전을 개최하는 나라 10여 개국 모두 가봤다. 에디슨 기념관도 물론 다녀왔다.

에디슨기념관은 1929년에 건립되었다. 공교롭게도 신석균 회장은 1929년생이다. 시대를 초월한 두 발명 거장 에디슨과 에디슨재단상을 수상한 신석균 회장 사이에 맺어진 인연이 아무래도 전생에서부터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발명가도 분야가 있어요. 에디슨은 한우물만 팠지만 나는 여러 방향으로 발명을 합니다”

신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자동차왕 포드가 에디슨을 지원한 인연으로 에디슨 기념관도 디트로이트 포드기념관 안에 세우게 됐다.

“초등학교 3개월이 최종학력인 에디슨은 주는 상도 안 받고 명예박사도 모두 거절했어요. 천재라는 말도 부정했어요. ‘나는 발명가일 뿐이다. 천재가 아니라서 천재가 뭔지 모르겠다. 발명의 99%는 땀과 노력으로 그리고 1%는 영감을 얻어서 한다’고 말했어요”

에디슨이 한 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천재는 99%의 노력과 1%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와전됐다’고 신석균 회장은 말한다.

“에디슨은 빚더미 속에서 살다 죽었지만 에디슨이 죽은 뒤 특허권을 가지고 재단이 만들어졌어요. 그 재단이 에디슨재단입니다”

신 회장은 하루 1개씩 발명한다는 신조로 발명수첩을 30년째 매일 쓰고 있다. 1983년부터 매일 써왔으니 그동안 써온 발명수첩이 30권에 이르고 발명 건수가 1만 건이 넘는다.

신 회장이 내민 올해의 발명수첩을 들여다보니 기자가 인터뷰를 하던 2월25일에도 발명일기를 썼다. 적힌 내용이 난수표 같아서 알 수가 없다. 유출을 막기 위해서 글씨는 러시아어로 쓰고 이상한 도형과 더불어 설명은 6개 국어로 한다니 도저히 파악이 안 된다. 6개 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를 못한다.


발명에 미친 사람. 해마다 열리는 日 세계천재회의에 꼬박 꼬박 참여했다. 지난 2013년 11월 열린 제27회 일본세계천재회의에도 출품하여 최고발명대천재상을 수상했다. 최고천재상으로도 표현이 모자라 대(大)자를 더 붙인 상이다.

“진짜 발명은 효시가 되는 발명을 해야 해요. 예를 들면 비행기 종류만 해도 200개가 넘어요. 하지만 효시는 라이트형제가 만든 비행기입니다. 비행기 발명가 하면 지금도 라이트 형제를 꼽으니까요. 이걸 계속 이노베이션해서 오늘에 이른 거죠. 발명은 이노베이션입니다”

신석균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효시가 되는 발명을 많이 한다. 170개국이 쓰는 우유팩, 초미니 위조지폐감식기, 라디오 모자 등등. 바이오리듬 세계 권위자로 바이오리듬 프로그램도 그가 발명했다.

전화가 연결된 원격진단 녹음 청진기 발명도 획기적이다. 아무리 멀리 의사와 떨어져 있어도 환자가 녹음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전화를 걸면 의사는 심장박동소리를 통해 전달받아 진단과 처방을 내려 줄 수 있다.

전화기 자동응답장치에 사용되는 무한반복 재생 테이프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잠자면서 공부하는 수면학습기를 국내 최초로 발명해서 삼성에 특허권 양도했다. 개인이 재벌기업에 특허권을 양도한 사례는 그가 처음이다.

신회장은 인류가 앞으로 100년 이상 쓸 수 있는 발명을 10개 이상 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이미 위에 열거한 발명품 등 5개 이상 했다. 발명과 동시에 저작권도 확보했다.

“스마트폰도 처음에는 삐삐에서 출발했어요. 삐삐→핸드폰→스마트 폰으로 개량·진화를 거듭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어요. 앞으로도 하루가 다르게 개량해야 살아남을 수가 있어요”

신 회장은 욕심 때문에 망한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 지금까지 발명가로 살아오면서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2번 있었으나 욕심을 버렸다고 털어놓았다. 청와대에 4번이나 초청받았고 도움제의까지 받았으나 이 또한 거절했다.

“사람이 추구하는 부류를 보면 대부분 권력, 돈, 명예로 나뉩니다. 그 중에 하나만 짚고 나가야 해요. 저는 명예입니다. 콕 찍어 말하면 발명”


뼛속까지 발명가. 그 시대의 인간들이 그 시대의 문화를 창조해 나간다는 신념으로 발명에 자신의 인생을 올인해온 그는 1986년 제네바 국제발명품 전시회에서 6개 발명품을 출품하여 7개의 상을 수상하는 진기록도 남겼다.

특히 그 중에 하나는 한중수교가 맺어지기 이전에 중국 과기처장관이 직접 준 상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황해도 평산 출생으로 5살 때 ‘창달린 우산’ 제작을 시작으로 발명의 세계에 들어선 신석균 한국발명학회 회장. 그는 딱 한마디로 자신을 소개한다. “난 발명가야”

그 많은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신석균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허권중에서 꼭 성공할 수 있는 기업가가 나오면 양도할 생각도 갖고 있다.

돈도 제법 벌었으나 발명으로 번 돈은 다음 발명에 드는 비용으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세계 발명대회에 부스 하나 확보하고 출품하기 위해서는 몇 백만원이 들어간다. 그동안 번 돈이 그렇게 쓰여졌다.

발명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 하지만 인류역사에 공헌할 수 있는 특허권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재물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보다 더 큰 부자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발명으로 돈 벌려면 기업을 해야 하는데 내 체질과는 안 맞아요. 기업하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연구시간을 갖기 어렵거든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돈을 못 번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발명에만 전념하는 발명가 신석균으로 남기 위해서 돈을 안 벌었죠”

신 회장은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들을 위한 조언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어려서 창의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8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왕성한 발명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신석균 회장과의 인터뷰는 저녁 6시30분부터 시작하여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무슨 일을 하던지 첫손님과 마지막 손님을 가장 신경 써야 한다면서 그는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를 지하철 입구까지 배웅했다.

늘 처음처럼. 그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액자가 집에 오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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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4년 03월 05일 06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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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3/05 [06:14]  최종편집: ⓒ 인물뉴스
 
안성일 14/07/15 [13:18] 수정 삭제  
  신석균 선배님을 이렇게 뵈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건강하셔서 좋을 활동 지속해 나가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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