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나도 할말있다 제26탄

-카투사를 아십니까?(13)-

<짓궂은 말장난> - “엉덩이 나근나근 좋습니다?”

카투사들과 미군들은 서로를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워낙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지내온 터라 노력하지 않으면 삐그덕거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친해지다 보면 곧잘 웃지 못할 일들이 생기곤 하는데......

미군들이 한국인들에 가장 신기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언어.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고 있는 ‘영어의 제2국어 운동’은 나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물론 한 때의 바람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영어 따라하기’가 필요악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을 십분 받아들인다고 해도 기분은 영 개운치 않다.

내 고참 카투사들의 생각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그럴수록 고참들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곤 했다. 그래서 미군들 앞에서는 좋은 말만 사용해야 하고, 행여나 우리말로 상소리를 하면 그날은 정말 무시무시한 엄벌이 내려지곤 했다. 우리 것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문화에 속해 있을 때 더욱 더 절실해 진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미군들 또한 우리말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궁금해하는 말은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단결(경례 구호)”정도. 하지만 호기심 많은 미군들은 이것저것 캐묻고는 자랑자랑 하곤 한다.

이 정도의 한국어 구사는 미군 누구나 할 수 있는 초보적인 수준. 약간 더 호기심이 많거나 똘똘한 미군들은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 달라고 떼쓰기도 한다. 장난기 많은 고참들은 미군들에게 우는 표정을 지으며 ‘전 지금 기뻐요’라는 말을 알려 준다든지, 반대로 기쁜 표정으로 ‘짜증난다’라는 말을 알려주는 식의 실없는 장난을 치곤 했었다.

그런 장난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얼굴 표정 숨기기. 피식 웃기라도 하면 대충 얼굴을 보고 알아차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장난이 정말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으니......

미군부대에는 ‘김치 GI’라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사람이지만 미군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김치 GI들은 대부분 한국말도 잘해서 카투사들의 얘기들을 미군에게 전하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 카투사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나의 장난까지는 이해해 주진 못했다.

내가 일병 때였다. 그날 따라 우리 부대 여군이 나에게 자꾸 한국말을 알려 달라고 졸라댔다. 짜증나기도 하고, ‘남들도 다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은근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All Right. What kinds of words U wanna know?”
(좋아. 뭘 알고 싶은데?)

“How can I say I'm pretty, in korean?”
(한국말로 난 예쁘다를 어떻게 말해?)

“Well, U may express 엉덩이 나근나근 좋습니다” - 매우 근엄한 얼굴로-
(엉덩이 나근나근 좋습니다라고 얘기하면 돼)

이렇게 몇 번이고 연습을 시킨 후에 아무런 걱정 없이 그녀를 보냈것만......

다음날 아침 formation(점호) 시간. 모든 중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의 일을 브리핑하는 하루 일과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지만 주책 같은 그 여군은 자신이 어제 배운 한국어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나 보다.

인솔자의 해산구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내던진 한마디.

“Hey! Fellows. I learned some korean languages from PFC Kim.”
(나 어제 김일병에게서 한국말 배웠다)

“엉덩이 나근나근 좋습니다. It says I'm pretty.”
(엉덩이 나근나근 좋습니다야. 나 예쁘다는 소리지)

순간 우리 고참들과 김치 GI의 얼굴이 갑자기 울그락 푸르락 변하면서 눈에서 불꽃이 확하고 타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온 몸은 갑자기 경직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미군들은 너도나도 배우려고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거기에 중대장도 끼어 있었으니......

김치 GI는 결국 모든 것을 밝히고야 말았고, 중대장도 미군들도 모두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지만, 그날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될 정도로 얼차레를 받고야 말았다.

“씨~~이 나만 하나?”

속으로 그렇게 되뇌였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말을 그렇게 욕보였다(?)는 죄목으로 난 오랜 기간 동안 카투사들과 미군들의 경계의 대상이 되고야 말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김상기
 
2000/02/15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