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나도 할말있다 제24탄

-카투사를 아십니까?(12)-

<죽었다 깨나도 이해 못할 미국> 싫어? 그럼 이혼해!

세상엔 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다. 그 많은 민족들의 생활방식은 하나 같이 다르겠지만, 그 이면의 삶을 살아가고 삶의 고민들을 풀어 가는 방식은 어쩌면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미군과의 생활 중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의 서로 다른 생활방식 탓으로 힘든 점이 많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미군들과의 2년이란 세월은 나의 염려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하지만......

미군들의 생활방식은 엄연히 우리네와는 다르다. 상세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에서는 그들의 생활은 일종의 토론의 연장선이다. 우리네 삶은 '말보단 행동이 우선'이라는 의식이 강한 데 반해, 미국인들은 행동을 하기 전에 반드시 말로 그 정당성을 동의 받고자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그네들은 회의와 파티와 토론이 아주 많이 연다. 자신의 행동 이전에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그렇게 구하는 것이다. 남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그네들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 때 만큼은 계급이나 성별을 떠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카투사들은 그런 토의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마냥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던 것 같다.

이 외에 미국사람과 한국사람으로서 서로 이질감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단 우리 카투사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이없는 웃음으로 '피식'하고 넘겼던 문제는 바로 남녀문제였다.

내 주위의 미군들은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이성과 결혼을 많이 했다. 대부분은 군생활중 만난 동료와 결혼을 하는데 남편은 한국에, 부인은 미국본토에서 군복무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웃긴 건 제대로 된 부부관계는 우리 supply room(공급계)의 Yamamoto정도? 나머지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속어로 표현한다면 '콩가루 집안(?)'이 많았었다.

난 일병 때까지 Myers라는 미군과 같이 방을 썼다. 그는 키가 무지 큰 백인으로 나와 나이는 같았고, (겉보기에는 약 30대 중반은 돼 보인다) 이미 본토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 부인과 사랑스런 딸이 있었다. 그는 밤마다 부인에게 장거리 전화하고, 편지 쓰고, 사랑스런 딸과 아내의 사진을 쳐다보며 나에게 자랑자랑 했다. 내심 고역스러웠지만 그의 행복한 모습을 외면할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부인과 전화하러 간다던 그가 시무룩해서 돌와왔다.

“Hey, Myers! What's up?”
(마이어스, 무슨 일 있어?)

“……”

“Why u're depressed?”
(왜 시무룩한 건데?)

“She got new boy-friend”
(아내가 새 남자친구를 사귄데)

“Really? How come?”
(뭐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그날 밤 우리의 전우 Myers는 큰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렇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다음 날 일어났다.

Myers의 행동은 평소와 전혀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더 활기 차 보이기까지 했다. 난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 물어봤다.

“Myers! U OK?”
(마이어스, 너 괜찮아?)

“Sure! I'm totally OK!”
(그럼! 난 지금 기분 좋아)

“U got big problem, aren't U?”
(어제 일은?)

“Well, I already forgot.”
(벌써 잊었어)

“Really?”
(진짜?)

“Yeah! Don't worry about me, Kim. Get divorced! That's it”
(그래, 걱정하지마. 이혼하면 그만이지 뭐.)

Myers는 몇 일 지나지 않아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고, 그로부터 또 몇 일 되지도 않아서 이혼 수속도 마쳤다.

난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부인과 딸을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지 아직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은 합리적이고 배울 점도 많다지만 그런 쉬운 감정의 발산(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은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도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그렇게 헤어지는 것에 익숙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고 걱정이 든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삶은 아무래도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순간의 감정보다는 끈끈한 정이 살아있는 인간관계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김상기
 
2000/02/11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