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9탄

-카투사를 아십니까?(11)-

<아름다운 혹은 비뚤어진 사랑- 미군 부대 앞의 여인들> ② 비뚤어진 사랑편

내 군생활 중 한국인으로서 가장 모멸감을 느꼈을 때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미국인들에게 일그러져 보일 때였던 것 같다. 내가 목격한 가장 추악한 한국여인은 미군과의 한 때의 불장난으로 자신의 존재까지 미국인으로 착각하는, 흔히 말하는 부대 앞 여자였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미국인들도 좋은 사람들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좋은 미군이든 아니든 거의 다 문제가 있기 마련. 향수병과 이국에서의 생활은 미군들에게 외로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그들은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난다.

여느 미군부대나 마찬가지로 우리 부대 앞에도 많은 미군 술집들이 있었는데, 이런 술집에는 아예 카투사들은 출입하기도 힘들다. 한국인들에게는 술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보다 한국인들에게 보여지는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상병이었을 때 나는 고위급 미군장교 A(프라이버시의 보호를 위해 가명을 쓰겠습니다)와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는 미국의 ROTC출신으로 명성 있는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A의 영어구사는 일반 미군사병들이 사용하는 slang(비속어)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발음 또한 거의 예술이었다.

장교로서 그는 어디 한 곳도 빠짐이 없었다. 항상 예의바르고, 절도 있고, 여유 있으며, 자기 절제가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와 여행도 같이 간 적이 있다. 그는 나의 얘기를 항상 듣는 입장이었고, 우리 카투사들의 힘든 점을 같이 고민해주고, 같이 해결해주려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멋진 A가 한국여자와의 한 때의 사랑의 밀회로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만약 우리가 그 사고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더라면, 영원히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A의 품성을 믿었던 것이다. 물론 젊은 혈기에 한 때 여자와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 한국여인은 정말 한국사람으로서 모멸감을 느끼도록 만들곤 했다.

A와 같이 간 미군 술집에서 난 그녀를 처음 봤다. 첫 만남.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는 40은 돼 보이고, 뽀글뽀글 파머에, 진한 향수냄새...... 등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는 그 장교를 따라 갔다가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내가 아는 A의 스타일과 너무나 동떨어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A에게 물어봤다.

“U think she's OK?”
(그 여자가 괜찮아?)

“Sure! I never met that kind of people like her.”
(그럼! 그렇게 좋은 사람은 처음이야.)

우리 카투사들의 의견도 반반이었다. 그렇게 괜찮은 A에게 그런 여자가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망신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부류가 있었고, 그의 사생활까지 침해하진 말자는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한국사람들을 깔보는 행동에 대해선 모두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이 터진 당일.

우리들은 모처럼의 회식을 위해 부대 밖으로 나가고 있는 참이었다. 정문에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는 것이 꼭 싸움이 난 것 같은 모양새. 세상에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고 우리들도 우루루 몰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싸움의 주인공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의 멋쟁이 장교 A가 아니던가?

그 여인은 반라의 몸으로 미군들의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여전사가 되어서 A의 멱살을 쥐고는 마구 패고 있었다.

“What did you say? can't merry?”
(뭐라고? 결혼할 수 없다고?)

그녀의 고함 속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한 때의 치기로 그녀와 만난 A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게 질려했고, 헤어지자고 얘기했을 땐 이미 그녀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군 부대 앞의 여인들의 꿈은 무엇일까?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서 잘 사는 것? 하지만 한 때의 그런 감정은 곧 정리되기 마련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녀의 비뚤어진 사랑은 우리 카투사들과 한국인들의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하는 점이 있었고, 그 사건은 미국 헌병에까지 올라가 우리의 멋쟁이 장교 A는 피해보상과 강등의 조치까지 당해야 했다.

지금도 미군부대 앞에선 많은 여인들이 술과 웃음을 팔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우리나라가 부끄럽다.

<다음 예고>죽었다 깨나도 이해 못할 미국 - 싫어? 그럼 이혼해!
 
김상기
 
2000/02/02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