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8탄

-카투사를 아십니까?(10)-

<아름다운 혹은 비뚤어진 사랑- 미군 부대 앞의 여인들> ① 아름다운 사랑편

우리의 머리 속에는 일종의 편견이 도사리고 있다. 미군부대 앞에는 추레한 술집과 싸구려 향수의 여인들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여자들도 진짜 있다. 미군들에 술과 웃음을 팔면서 사는 여인들도 있지만, 정말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부대엔 마음씨 고운 Corporal(우리 계급으론 상병에 해당) Castillio가 있었다. 외모로 보면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마른 짐 캐리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그렇게 좋은 인상은 아니지만, 우리 카투사들은 그를 매우 좋아했다. 그의 순수한 마음에 모든 카투사가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카투사들이 그를 마음에 들어한 이유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많이 배우고자 하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 같다. Castillio는 한국사람들의 관습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한국여자의 습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여자들이 좋아하는 선물은 무엇인지, 한국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성상은 어떤 것인지 등에 많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물론 우리도 공짜(?)로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들 모두는 그가 부대 앞 술집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Castillio가 우리의 고유 영역인 라면타임에 불쑥 찾아와서는 심각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My KATUSA fellows! I'm gonna die......”
(카투사 친구들아! 나 죽도록 슬프다)

“Castillio! What's up, man?”
(왜그래 카스틸리오? 무슨 일 있어?)

“I wanna learn your language. U guys help me?”
(나 한국말 배우고 싶어. 니들 나 도와 줄꺼지?)

“Why?”
(왜그래?)

“I'm falling in love with korean girl. I think she love me, too. but her father don't like GI. I have to be Korean.”
(나 한국여자와 사랑에 빠졌어. 그녀도 날 사랑하지만, 그녀의 아버님이 미군은 싫대. 난 한국사람이 돼야 돼)

-여기서 잠깐! 미국인들의 실용적인 언어습관-

미국인들은 문법에 정확하게 맞는 문장을 구사한다기보다는 보다 쉽고 보다 더 빠르게 전달하는 문장을 구사한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우리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문장들도 미국인들은 자연스레 구사하곤 한다.

*예1) I don't have nothing.

(원래 맞는 문장은 I have nothing.이나 I don't have anything.이지만 난 미국인들이 그런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예2) He don't love me.

(맞는 문장은 don't 대신에 doesn't 가 돼야 하지만 이도 미국인들은 잘 지키지 않는다. 이미 대화하는 상대에 의미만 통하면 된다는 미국인들의 실용주의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활습관 때문에, 도리어 우리 카투사들이 미군들에 영어를 가르쳐야(?)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곤 한다.

알고 보니 Castillio의 여자친구는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주는 대학의 학생이었다. 우린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Castillio의 사연은 대략 이랬다. 약 3년 전부터 펜팔로 알게 된 한국의 여학생을 사모한 나머지 군에 지원하게 됐고, 미군들이 분단 상황 때문에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꺼려하는 한국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한국의 여대생도 그의 그런 노력에 감복했지만, 그의 다른 피부색과 다른 민족 때문에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여대생의 아버님께서 미국인은 싫다고 선언까지 했으니, Castillio의 위기감은 극에 다다른 것이다.

어쨌든 Castillio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매일매일 그녀에게 한국어로 쓰는 사랑일기를 편지로 보냈던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내 군생활 중 가장 멋있는 장면을 꼽으라면 난 주저없이 Castillio와 그 여대생의 포옹장면을 꼽을 것이다. 그의 눈물나는 구애작전인 한국어편지 전략은 그녀의 아버님까지 동요하게 만들었고, 드디어 Castillio의 존재를 인정하신 것이다.

Castillio에 행복은 불현듯 찾아왔다. 우리 카투사들의 검열아래 열심히 편지를 쓰고 있던 그에게 그녀가 찾아온 것이었다.

“Castillio. He accepts U!”
(우리 아버지가 허락하셨어)

Castillio의 눈엔 눈물이 글썽글썽. 사람이 너무 좋으면 아무 말도 못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게 멍하니 서있는 그에게 그녀가 다가서 살며시 안았다. 그렇게 그들은 오래도록 껴안고 울었고 아직도 그 장면은 명화처럼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다음 예고> 아름다운 혹은 비뚤어진 사랑- 미군 부대 앞의 여인들 ②비뚤어진 사랑편
 
김상기
 
2000/02/01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