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7탄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1-

군대는 줄을 잘서야 한다. 줄만 잘서면 아무리 빽이 없어도 좋은 보직 받아서 3년간 빵빵하고 편안하게 군생활을 할수가 있다. 그러나 그놈의 줄을 잘선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그런 의미에서 군대복은 지지리도 없었다. 돈줄없고 빽줄 없는 나는 아무런 기약도 없이 논산훈련소로 끌려갔다. 1978년 4월24일. 훈련병 김명수. 4주간 훈련. 처음줄은 잘섰다. 그러나 마지막에 일이 잘 안풀렸다.
군대에서 바랄것은 오직 좋은 보직을 받는 것. 나와 같이 입소한 수용연대 훈련병들은 거의 다 무더기로 미군부대로 팔려나갔다. 나만 쑥 빠졌다. 참 더럽게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동료훈병들이 너무 안됐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내가슴을 더욱 서글프게 만들었다.

결국은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원망하고 말았다. 들리는 말로는 우리수용연대에 들어온 훈병중에 빽줄 튼튼한 고위인사 자제가 있다고 한다. 튼튼한 동앗줄같이 빽있는 한사람만 훈병중에 있다면 그동기들은 무더기로 좋은 보직을 받는다고 알고 있다. 한사람만 차출해갈수 없기 때문에 묻어서 함께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수 없었지만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하여튼 억세게 재수없다고 생각한 나는 기분나쁘고 분한 마음에 그 이후로 목구멍에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배출대로 넘어갔다. 떠나는 사람들 모두 떠나고 가장 나중에 내가 호명되었다. 동기라고는 고작 서너명. 우리는 야간 열차를 탔다. 떠나는 우리를 위해 군악대의 빵빠레가 울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철없는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떠나는 우리손에 쥐고 있는 건빵봉지를 보고 "아저씨 건빵주세요" 아우성을 치고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건빵을 아이들에게 던져주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던져주는 건빵을 잡으려고 난리다. 두툼한 장막이 쳐진 열차. 밤새 달려와 서울에 도착. 다시 출발.
 
나는 지금 전방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열차가 서울역을 출발할때 창문밖에는 어떻게 우리가 서울역에 도착한 것을 알았는지 가족들이 벌떼같이 몰려와 아수라장이었다.

시골 깡촌내기인 나는 부모님이 안오실것을 미리 알았기에 아예 단념하고 있었지만 동료들은 고개를 쭉 내밀고 자기가족이 있나 없나 찾는 눈치였다. 영자야 숙자야 애인을 부르는 소리. 영식아 봉식아 자식을 부르는 소리. 애인과 부모와 가족과 끌려가는 군인들을 알아보는 눈길이 서로 마주칠때마다 울부짖음과 고함소리가 뒤섞여 귀가 멍멍하였다.

그런 소리를 뒤로하며 열차는 무정하게도 전방으로 달렸다. 호송병들이 우리에게 식사에 맞춰서 일회용 도시락과 건빵을 건네주었다. 빡빡한 건빵을 먹으면서 무엇이 그리 서글펐는지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훈련소에서 끌려가는 최전방 보충대. 안개가 가장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춘천이었다.

세상은 온통 안개로 뒤덮여 운치가 넘치는 도시 춘천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는 도살장에 끌려온 소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의 속뒤집어지는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교도관들은 뺑뺑이를 돌리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데로 하게 하는데로 놔두었다. 나중에야 왜 그랬는지 알았다.

며칠있으면 최전방으로 끌려갈 녀석들이 불쌍하고 측은해 보여서 그랬던 것이다. 다시 전방으로 끌려가는 차에 탔다. 소양강.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소양강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호송병들은 역시 연락선에 우리를 태우고는 두툼한 장막으로 밖을 못보게 가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물살에 우리가 탄 연락선도 출렁 출렁 거렸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다시 내렸다. 양구. 탱크가 여기저기 눈에 띄고 머리와 군복에 나뭇가지와 풀로 위장한 무장군인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바로 여기가 전방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소름이 끼칠정도로 무섭고 군기가 바짝 들었다. 자대에 배치. 도착하자 마자 자신이 들고온 다블백을 입에 물고 연병장을 돌았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내가 제대하기 전에는 빠져나갈수가 없는 나의 자대였다. 포병. 모두가 고참이었다. 나는 고참들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바짝 얼어버렸다. 무엇이 그리 무섭냐고? 고참들은 때리고 졸병들은 맞는 것이 일이었다.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너 학교 어디나왔냐고 물어본다. 대학나왔다고 대답하면 대학나왔으면 다냐고 때린다. 중학교 나왔다면 병신같이 학교도 못다녔다고 때린다. 키가 크면 크다고 때리고 작으면 작다고 때린다. 그냥 때리기 위해서 이유를 만들고 이유를 만들어서 때린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고참들이 그렇게 때리고 졸병들이 그렇게 맞는 것이 이미 체질화 된 것처럼 별 반응이 없었다.

맞을때 되면 맞고 기합받아야 하루 일과가 끝난다고 생각했다. 가장 괴로운것은 취침시간에 불러내는 일. 언제나 잠이 부족한 졸병들이 피곤하고 긴장된 탓에 언제든지 등만 바닥에 대면 곧바로 코를 골았다.

그러나 짖궂은 고참들이 그냥 놔둘리가 없다. 잠자는 졸병을 깨운다. 자신이 맞을 몽둥이 들고 집합하라고 한다. 으례히 당해왔던 것처럼 졸병들 각자 알아서 자신이 맞을 몽둥이를 준비해 가지고 목표지점에 도착해서 호랑이보다 더무서운 고참이 오기를 기다린다. 한참 시간이 지난뒤에 고참이 굼벵이처럼 어슬렁거리고 나타난다.

달밤에 체조라도 하는 것처럼 졸병들을 무지막지하게 구타한다. 특이한것은 자신이 맞는 회수를 한대 두대 큰소리로 헤아리는 것이다. 포병은 쇠파이프가 있다. 속이 빈 쇠파이프. 지하방카에서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쇠파이프로 수십대씩 얻어맞는 졸병들의 심정을 누가 알리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아보는 자식의 심정을 부모가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나 현실은 사방이 막힌 지하 방카.

억울하면 탈영하라고 약을 올리고 빈정거리면서 때리고 또때린다. 결국은 기절을 한다.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치고 고함을 질러대도 밖에서는 개미소리 하나 안들린다. 완벽하게 방음장치가 된 지하방카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잠자다 불려나와 개패듯 얻어맞고는 다시 내무반에 들어와 취침을 한다. 그러나 밤새 맞은 엉덩이가 아파서 잠결에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기상나팔이 불면 다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어제일은 서로 말을 안한다.

때린 고참도 맞은 졸병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을 다문다. 고참의 눈을 피해서 졸병들이 서로 위로를 한다. 거꾸로 매달려서 얼굴에 고추가루를 퍼부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서로 이를 악물고 고참이 될때까지 참자고 동병상련의 악수를 한다.

다음에 이야기 계속됩니다.

김명수
 
2000/01/31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