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6탄

-카투사를 아십니까?(9)-

<“고참님! 머리통이 깨집니다” - Field Operation(야전작전)>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단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꼬집는 말이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하는 일은 힘들고 남이 하는 일은 더 편해 보이는 것이다. 내가 배고플땐 똑같은 밥을 먹더라도 옆전우의 밥그릇이 더 커보이는 것이 어쩔수 없는 인간의 본능적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어딜 가도 불만이 있고 힘들기 마련이다.
 
우리 카투사들은 절대적으로는 일반 한국군보다는 편한 환경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렇게 쉬운 생활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몇 달은 영어 소통에 의한 스트레스가 크고, 이후에는 한국군과 미군과의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경쟁심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미군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군은 아프면 바로 병원(sick call)으로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아파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했다. 고참들이 웬만한 것이 아니면 보내주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카투사들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Field Operation(야전작전). 야전에 나가서 실전에 대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미군들은 장비를 쉽게 쓰고 쉽게 버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네들의 장비에 대한 애착(?)은 한국군이 혀를 내두를 만큼 엄청나다. 작전에 나가기 약 1주일 전부터 그네들의 유난스런 장비 사랑이 시작되는데, 우리 카투사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많아진다.

우선 차량점검. 지금도 차량 점검의 순서를 다 외울 정도니 얼마나 꼼꼼하게 했는지 말도 못한다. 심지어는 차바퀴까지 비누로 싹싹 닦아야 직성이 풀리는 미군들이 많아 우리 카투사들은 작전 1주전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디 그뿐인가? 작전에서 사용할 텐트와 각종 장비는 모두 완벽하게 준비를 마쳐야 한다. 지난 번에 사용했던 장비에 묻었던 오물을 다시 한번 닦고, 꿰매고, 조이고, 말리고...... 한 겨울의 장비 점검은 모든 카투사들의 가슴까지 차갑게 만들곤 했다.

어쨌든 지긋지긋한 작전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작전에 나가는 날. 이 날은 새벽부터 부산을 떨어야 한다. 작전을 실제 상황과 비슷하게 하기 위해 새벽에 비상을 거는 것이다. 새벽 3∼4시에 비상을 걸면 중무장을 하고 사인을 한 뒤에 총을 찾는다.

드디어 야전에 도착. 작전의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가장 힘들다는 겨울 작전. 텐트가 엄청 무겁고, 세우는 것도 복잡해 여간한 텐트 하나 세우는데 한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또 여군들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곧잘 쉬고만 있어 텐트 세우는 데는 카투사들이 앞장을 서야 했다.

고참들은 빨리 못한다고 고함을 쳐대고, 여군들은 앉아만 있고 양놈들은 하나둘씩 쉬운 일만 골라서 하려하고, 은근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참다 못한 내가 바위에 앉아 요염한 자세로 앉아있는 여군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What are U waiting for? A house?” (뭘 기다리는 거지? 집?)

“????” (황당한 여군)

“Get your big ass(-미군들은 친구를 애칭으로 ass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here! and give your dirty hand!” (빨리 와서 좀 돕지 그래?)

그 일로 미군들에는 재수 없는 한국군으로, 그리고 우리 고참들에게는 한국군의 기상을 살린 신병으로 다시 태어나긴 했다.

작전 수행내용을 다 밝힌 순 없지만, 약 1주일간을 야전에서 지내며 가장 괴로운 건 씻지 못하는 것. 아무리 추워도 나와 민일병이 머리를 감기로 의기투합했다.

먼저 민일병 순서.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데, 민일병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평소에 잘 참기로 유명한 민일병은 아무 소리 없다. 이제 내 차례. 처음엔 몰랐는데, 머리에 비누칠을 하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차가운 물 탓이었다.

“고참님! 머리통이 깨집니다!”

하지만 그 힘든 작전에서도 하나의 큰 수확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몰론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야전에서 먹는 MRE(Meal, Ready to Eat 일종의 도시락)가 바로 돈이 되는 것이다. 우리 카투사가 좋아하는 메뉴는 거의 없기 때문에 특정 메뉴(MRE 7번인가 8번인가?)만 깨작거릴 뿐 나머지는 손도 대지 않는다. 식사는 대부분 라면으로 때우고 만다.

작전에서는 한 사람에게 하루 3개의 MRE가 나오는데, 이걸 반쯤은 먹지 않고 남겨 부대 복귀 후 부대 앞 식당 아주머니들에 파는 것이다. 작전이 5일만 돼도 총 11명의 카투사가 먹지 않고 모을 수 있는 MRE는 약 60∼70여개 남짓. MRE 하나에 약 1300원 정도 했으니, 모든 카투사가 그 동안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을 배터지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예고> 아름다운 혹은 비뚤어진 사랑 - 미군 부대 앞의 여인들
 
김상기
 
2000/01/27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