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5탄

-카투사를 아십니까?(8)-

<너! 저 사람과 1m이상 떨어지면 죽는다! - KATUSA WEEK>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외형상으로는 한국땅에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형태라는 것을 부인할수가 없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미군의 한국주둔에 있어 한국이 미국의 편의를 봐준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래도 미군들에게는 낯설고 물설은 한국생활에서 한국군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에 애로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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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미군들과 한국군의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그런 점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행사 중 가장 성대하게 열리는 것이 ‘KATUSA WEEK’이다. 카투사 뿐만 아니라 미군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 행사는 매년 봄에 약 1주일에 걸쳐 다채롭게 열린다. 대체로 대대급에서 행사를 주관한다. 이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우리는 의정부에서 용산으로 축제를 위한 파견(?)을 나가게 된다. 우리 대대는 용산에 본부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군필자들도 경험이 있겠지만, 한국군 최고의 인기종목은 축구. KATUSA WEEK 때마다 많은 종류의 경기가 펼쳐지지만, 우리가 반드시 목숨을 걸고라도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축구였다.

미군들도 KATUSA WEEK라면 꼭 참석하고 싶어한다. 그네들 관습이 원래 축제를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한국군인들과 친해지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경기 참석인원을 정할 때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곤 하는데......

중대마다 카투사의 최고참은 Senior KATUSA라는 직책에 오르게 된다. 그 때부터는 자신이 그동안 미군부대에서 수행했던 job(업무)을 그만두고, 카투사들의 미군생활을 도와주고, 한국군 장교와의 연락을 맡는 업무만을 하게되는 것이다. 중요 업무가 미군부대 안에서의 카투사 권익보호나 책임의 문제 등에 관한 것이어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일을 처리해야 하는 자리였다.

이 Senior KATUSA가 KATUSA WEEK에 참석할 미군을 정하게 되는데, 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미군들의 사전 물밑작업이 약 1주일 전부터 시작되곤 했다. 대략 그 유형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선물공세형. 이런 형은 주머니가 얇은 카투사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카투사들은 농구경기를 끝내고 나면 시원한 ‘--- DEW’ 같은 음료수를 마시고 싶지만, 그 당시 한 캔에 500원하는 것이 우리 군인의 얇은 주머니로는 선뜻 사기가 쉽진 않았다. 이런 우리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미군들이 있었으니(미군들에겐 면세품이라서 엄청 싸게 판다), 그들은 결국 본색을 드러내곤 한다.

“Hey, U guys so cool......”

(야∼ 니네들은 정말 멋있단말야...)

이렇게 시작된 칭찬은 오래도록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음료수를 대접받은 죄로 열심히 그의 칭찬을 경청해야만 한다.

두 번째, 너스레형. 우리 카투사들의 빠지지 않는 일일행사는 라면 끓여 먹기. 이 행사는 우리 카투사들의 오랜 전통으로 카투사가 아니면 끼기 힘든 자리지만 워낙에 호기심 많은 미군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막사 안에 끝내주는(?) 라면의 냄새가 퍼질 때쯤에 항상 그릇을 들고 우리의 방을 노크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런 미군은 대개 문전박대. 우리의 영역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세 번째. 권력위압형. 하사관 이상의 미군들은 워낙 나이도 많고 연륜도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 카투사를 다루는 방법이 훨씬 세련돼 진다. 은근슬쩍 Senior KATUSA에 접근해, 요즘 카투사의 애로점은 무엇인지, 개선하고 싶은 것은 없는지를 조목조목 물어보고, 언제든지 말만 하면 카투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고 꼬드긴다. 물론 평소에도 카투사들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그런 말 한마디가 정말 효과가 있다. 권력의 힘이라고나 할까? 이들 고위 권력자(?)들은 우리들의 영역인 라면파티에도 가끔씩 참석하고자 한다. 그 때에도 그들의 말은 걸작이다.

“I wanna make a good friendship with KATUSAs”

(내가 거기 가고 싶은 건 카투사들과 더 나은 관계 만들고 싶어서야)

우리도 하사관이나 중대장이 오면 싫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일반 미군은 참석할 수 없고, 고위 권력자들이 참석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카투사들의 위상을 한 층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경기 참가자들이 정해지고, 드디어 시합 날.

왕신병이었던 나는 신병이라는 이유만으로 축구경기에 출전하게 됐다. 일단 실력을 떠나 ‘신병=왕군기’로 통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역할은 최종 스위퍼. 말이 최종 스위퍼지 진짜 나의 역할은 상대편 골게터 전담 수비수였다. 군인들은 어딜가나 다 똑같다. 시합은 실전이고, 실전에서 지면 목숨을 잃는 것. 곧 지면 죽는다.

우리 첫 상대는 본부 중대. 본부 중대와 A중대는 용산에, 그리고 우리 B중대만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동기들만 알아 볼 뿐 아무도 모른 채 경기를 해야 했다. 시합에 들어가기 전. 우리 왕눈이 고참의 명령이 떨어졌다. 짧은 한 마디.

“너! 저기 저 사람과 1m 이상 떨어지면 죽는다”

내가 맡은 사람은 어찌나 발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은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공이 오면 따라붙었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의 발이 너무 빨라 공은 한 번도 보지 않은 채 그 사람만 따라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본부중대 선임병장. 중학교 때까지 학교대표 축구선수였다니, 얼마나 그가 축구를 잘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우리 중대가 그 사람 덕에 몇 번 쓰디쓴 패배의 경험이 있었다고 하니 이번엔 찰거머리 왕신병을 붙여 원천봉쇄한다는 복안이었던 것이다.

경기 내내 나는 그를 밀고, 꼬집고, 당기고, 소리치고, 발로 차고...... 목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데 온갖 치사한 파울을 자행(?)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력은 떨어지고, 1m 이상 떨어지면 난 죽은 목숨이고,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자주 안 마주치는 다른 중대 사람들에게 먹자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경기가 끝날 무렵. 처음의 자신만만해 하던 그가 아주 아주 짜증나는 얼굴과 목소리로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신병이죠?”

내가 바짝 얼어서 옆에서 경기 내내 따라다니니까 한편으로는 동정심도 들고, 한 편으론 짜증도 많이 났을 것이다. 경기의 결과는 당연한 우리의 승리. 내가 맡았던 본부 중대의 고참은 나중에 우리 중대 동기에게 전활 걸어왔다고 한다.

“야! 니네 신병 너무 심하게 굴리는 거 아니냐?”

KUTUSA WEEK가 끝나고 그날 밤은 온 몸이 쑤셔왔지만, 축구에서 이기고 날 대견하게 쳐다봐주는(?) 우리 왕눈이 고참의 눈길에 고마움을 느끼며, 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군대는 사람을 약간은 단순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 예고>“고참님! 머리통이 깨집니다” - Field Operation(야전작전)

김상기
 
2000/01/25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