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4탄

-카투사를 아십니까?(7)-

<바닥까지 핥아라! - Barracks Inspection(막사 점검)>

미군과 한국군의 생활은 판이하게 다르다. 물론 나의 한국군 생활은 논산 훈련소에서의 4주밖에 안되지만,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볼 때 미군과의 생활이 육체적으로 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한가지 한국군만큼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Barracks Inspection(막사점검)이다.
 
Barracks Inspection(막사 점검)은 약 6개월마다 한 번씩 대대장급의 순시가 있는데, 이 준비를 위해 약 10일 전부터 모든 정상 생활을 접고 청소만 한다. 앞서서 밝힌 듯이 우리 카투사들의 군기는 ‘우리가 미군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생활에서 미군 중대장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는 다는 것은 우리 한국군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청소 정도야......’

하지만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청소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우리 카투사들은 미군들과 마찬가지로 일병까지는 방을 2명이 함께 사용한다. 원래 한 방에 침대 2개, 냉장고 1개, 욕실은 방 두개에 한 개, TV 한 대, 각종 가구 등이 있고 이것들 때문에 방이 꽉 차게 된다. 상병 이상(남을 지휘할 수 있는 계급 이상)이 되면 방을 혼자 쓰게 되지만, 그 전에는 무조건 방을 2명이 함께 사용해야 한다.

방도 카투사끼리만 사용하면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부대 신병은 무조건 미군들과 같이 방을 같이 사용해야만 했는데, 이것도 문제가 많았다. 신병은 한국군과 같이 고참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군과 같이 방을 쓰는 처지에 미군에게만 방 청소를 맡기고 고참을 도와주기에는 미군의 눈치가 여간 심한 게 아니다. 따라서 미군과의 상당한 진통(?)을 통한 협의를 거쳐, 시간을 잘 조정해야만 한다.

각자의 방 정리하기.

방 정리라는 것이 단순히 옷가지를 깨끗이 정리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카투사뿐만 아니라 모든 미군은 입대와 동시에 50가지의 중요 물품(TA-50)를 지급받는데, 이 물품들을 제대하기 전에 그대로 반납해야만 제대를 할 수 있다. 이 50가지의 물품은 점검 받는 날 침대 위에 정해진 순서대로 정리를 해 놓아야만 하는데, 어떤 물품이라도 끈 하나, 나사 하나만이라도 빠뜨리면 모든 중대가 다시 점검을 받아야 하니, 정말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신은 항상 날 시험에 들게 했다.

막사 점검 전날.

약 10일 동안 계속해서 닦고, 쓸고, 문지르고, 정리하고...... 이제 오늘과 내일만 잘 보내면 이 지긋지긋한 청소는 막을 내리게 된다. 온 부대원이 쓰는 공동 화장실과, 복도 청소까지 왁스칠 해가며, 완벽하게 준비를 다해놨고, 이제 각자의 개인 물품과 방, 그리고 TA-50만 잘 정리해 놓으면 된다.

각자의 방까지 잘 정리됐고, 화장실도 천장부터 벽, 그리고 등까지 먼지 한 톨도 없게 완벽하게 준비 끝. 이 모든 것의 준비가 다 끝나고,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TA-50 정리하기. 군복에서, 각각의 쓰임새가 다른 군화에서, 장갑, 끈 등 모든 준비가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온 몸의 숨이 턱 막혔다. 나의 Laundry bag(세탁물 담아 놓는 헝겊으로 된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단순한 헝겊 백이지만, 그것도 TA-50인만큼 없어지면 내 목숨도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적막감. 그리고 숨막힘.

순식간에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용의자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아까 세탁실에서 나와 마주치고는 평소와 달리 슬쩍 날 피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 일병 B(프라이버시 보호차원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일단 용의자를 지목했지만, 다짜고짜 그에게 가서 내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웠다.

고참들 몰래, 걱정하기를 10여분. 내 바로 위 천사같은 마음의 소유자인 민일병이 날 찾아왔다. 이 사실을 알고는 민일병은 씩 웃기만 했다.

“어떻게 하죠? 민일병님?”

“어쩌긴...... 너 때문에 우리 중대원 모두 다시 점검 받아야지 뭐....”

거의 울먹거리는 나에게 민일병이 한마디를 했다.

“걱정하지마라. 내 찾아오마”

약 5분 후. 그는 의기양양하게 내 백을 찾아왔다.

“아니 어떻게?”

알고 봤더니 신병의 모든 물품에 바로 위 고참이 아무도 모르게, 자신만이 아는 표시를 해주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흔치는 않지만, 간혹 도난 사고가 일어나 고육지책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데, 민일병은 내 모든 TA-50에 자신만이 알 수 있도록 검은 실로 조그만 동그라미로 표시를 해놓았던 것이다.

그 미군에게 가서도 조용히 Laundry bag을 들고는 그 표시를 보이며,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Hey B! What U think it is? U think it's yours?”
(이게 니 거라고 생각하냐?)

“What? that's mine!!”
(뭐라고? 그건 내거야!)

(조그만 실표시를 만져보이며)

“Look! it's time to talk to your supervisor”
(이것봐라. 너 고참이랑 얘기할까?)

“Hey Min. it's just kidding! man.”
(그냥 장난이었어)

사건은 그냥 백을 찾아오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그 미군은 다시는 카투사의 물품을 넘보지 않았다. 비록 우리 카투사들끼리 있으면 군기도 많이 잡고, 간혹 스트레스도 받지만, 미군들이 가지지 못한 자신의 쫄따구를 위하는 마음만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미군들은 알까? 자신의 쫄따구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영웅같은 진정한 고참의 마음을? 아마 그네들은 모를 것이다.

미군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한 카투사들의 마음은 누가 가르쳐줘서도 아니고,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억지로 이기려하기 보다는 실력으로, 부지런함으로, 귀감이 되는 행동으로 우리 카투사들은 미군들을 이기고 있었으며, 나도 그런 고참들의 마음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다.

<다음 예고> 너! 저 사람과 1m이상 떨어지면 죽는다! - KATUSA WEEK

김상기
 
2000/01/24 1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