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3탄

-카투사를 아십니까?(6)-

<죽음의 PT Test>

한국군에게 유격이 있다면 카투사에게는 PT Test가 있다. PT Test는 Physical Training Test의 준말로 Push-up과 Sit-up 그리고 2-mile Run 등 3종류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점수는 나이에 따라서 달라진다. Push-up은 3분만에 약 70∼80개 정도, Sit-up은 약 80∼90개 정도를 해야 만점을 받는다. 그리고 2-mile Run(약 3.2km 달리기)은 12분 30초 안에 테이프를 끊어야 만점을 받았다.
 
PT Test는 고참들이 신병을 괴롭히는 무기로도 곧잘 이용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Push-up이다. 고참들이 Push-up이라는 명분으로 졸병을 괴롭히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다. 카투사는 미군들과 함께 편안한(?) 생활을 하지만, 정신력만큼은 미군들보다 강인하다는 자긍심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미군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내심 그런 것들을 부러워하는 미군들도 많았었다.

카투사는 모든 면에서 미군들에게 지면 안된다. 그 단적인 예가 고참을 대하는 방법과 잘 짜여진 조직생활, 그리고 PT Test였던 것이다.

우선 미군들의 기를 죽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신병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군들의 경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들의 목소리가 깜짝 놀랠 정도로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인사는 우리가 외치는 '단결'이나 '충성' 등의 구호가 아니라 'Good Morning'이나 'How are you doing' 등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 카투사는 한국인이라는 자존심을 그대로 갖고 있어, 저∼ 멀리서 고참이 걸어보면 온 캠프가 떠나가라 우렁찬 목소리로 경례를 붙이곤 했다.

“딴~~!! 껼!!!”

반경 약 20m 내에 있는 미군들이 흠칫 놀라 모두 쳐다보면서 한 마디씩 불평을 해야 마음이 흐뭇해진다. 일단 경례는 그 정도면 무사 통과. 실외에서는 온 캠프가 떠나가라 경례를 붙이지만, 실내에서는 고참을 만났을 때는 ‘안녕하십니까’, 헤어질 때는 ‘수고하십시오’ 혹은 ‘안녕히 주무십시오’ 등이 있다. 이도 마찬가지다. 실내라고 조용히 얘기하는 건 야심한 시간일 때만 그렇고, 낮 동안에는 온 막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야 했다.

이런 카투사들의 오기는 미군들의 반감을 사기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지 못한 어떤 사나이들만의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았다. 앞서서 얘기했지만, 이런 우리들의 군인정신은 자주 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신병은 체력 면에서도 다른 미군들에게 뒤지면 안된다. 그 신병은 이미 개인이 아니다. 신병은 모든 카투사를 대표한다. 따라서 고참들의 각별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온 카투사, 아니 온 한국군의 명예가 그 신병의 어깨에 걸린 것이다.

신병은 미군부대에 도착하자마자 약 1달 정도 있다가 정식으로 PT Test를 봐야한다. 미군들이 인정하는 합격점은 아주 쉬운 것이지만, 우리 자랑스런 카투사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점수를 요구한다. 최소 280점 이상!

말이 280점이지, Push-up과 Sit-up은 왠만큼 된다고 해도 2-mile Run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12분 30초! 아무리 연습을 해도 내 몸 안의 폐의 한계는 따로 있는 것이니, Push-up과 Sit-up을 만점을 맞고, 2-mile Run은 한 13분 30초만 뛰면 되겠지 했다.

이 죽음의 PT Test에서 우리 카투사들의 자존심 마지 노선인 280점 이상을 받아야 첫 휴가를 다녀올 수 있는 것이다. 난 휴가를 꼭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미군들에게 지면 안된다는 한국인의 기상으로, 정말 피나는 연습을 했다.

본격 연습 돌입 벌써 29일째, 내일 아침이면 모든 나의 그 동안의 노력이 판가름 난다. 마지막 연습. 아직 Sit-up은 만점이 무난하지만 Push-up은 아직 10개 정도가 모자란다. 난 기어이 휴가를 가야한다는 일념에 (실은 고참들의 시퍼런 서슬이 무섭기도 했다) 아주 열심히 연습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가져왔으니......

드디어 PT Test 보는 날.

다소 조마조마 했지만 나의 몸이 이렇게 까지 망가져 있으리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드디어 Push-up하는 시간.

‘아뿔사 이게 뭐야?’

평소 아무리 못해도 70개는 했는데, 그날 따라 팔이 펴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겨우 60개를 넘기고는 쭉 뻗어 버린 것이다. Sit-up도 마찬가지. 평소보다 5개 정도를 못하고 말았다. 종합 점수는 181점. 아∼ 나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인가? 어제 과한 연습의 참담한 결과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2-mile Run에서 만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모르겠다. 그냥 뛰자!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첫 휴가를 가느냐 마느냐, 군생활이 망가지느냐 피느냐, 미군들에 한국군의 기개를 고양하느냐 망신시키느냐. 이 모든 것이 나의 두 어깨에 달려 있었지만 그 동안 나의 실력을 봐서는 어림도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고참들이 아무리 윽박질러도 결코 13분 30초를 단축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위급한 상황은 기적을 낳기 마련. 정신없이 달리고 내 시계를 봤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정확한 러닝타임은 12분 29초. 2-mile Run에서의 만점으로 총점 281점.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내 몸은 아스팔트 위에 뉘여져 있었지만 마음은 벌써 고향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붕붕 날아가고 있었다.

<다음 예고> 바닥까지 핥아라! - Barracks Inspection(막사 점검)
 
김상기
 
2000/01/24 1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