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2탄

-카투사를 아십니까?(5)-

<미군과의 에피소드 2> 좋은 미군 나쁜 미군②

Yamamoto같이 마음이 비단결같이 고운 미군들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미군들도 있다. 사회나 단체,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자신과 찰떡궁합처럼 마음이 잘맞는 친구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한국군인이 미군과 사이가 좋지 않으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Supply(공급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전수행 준비. 중대가 작전을 나가면 한 번에 약 1주일을 Field(야외, 야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식수와 MRE(meal, ready to eat:미군들의 도시락)을 필수적으로 챙긴다. 식수대에서 미리 준비한 20여개의 물통에 물을 받는다. 물을 가득 채운 통을 작전에 나갈 차량에 모두 실어야 비로소 식수준비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힘든 업무는 우리 공급계의 막내가 알아서 하는 일이지만 다행히도 마음이 천사같은 Yamamoto라는 좋은 군인 덕분에 모든 공급계가 다함께 하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좋은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성격 이상한 미군이 오면서부터 우리 Supply Room은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X(밝히면 개인적인 음해가 될 것 같군요). 그는 우리 중대에 오자마자 말썽을 일으키곤 했다. 이를테면 트러블 메이커였던 셈이다. 미군들은 보통 한국이나 독일 일본 등에서 1년 동안의 군생활을 필수적으로 해야하는데, 그의 첫 한국생활은 그야말로 역겨울 정도로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는 한국군들을 깔보았으며, 미군 상사에게도 매일같이 앵앵거리거나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자주 근무에서 빠지곤 했다. (미군들은 몸이 아프다면 무조건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고, 병원 또한 군인이라는 이유로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우리 카투사들은 미군들보다 더 잘 참고 몸도 훨씬 더 건강하며, 정신력도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을 금기시 하곤 했다. 하여튼 그 X는 미군들에게서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고, 항상 왕따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X가 우리 공급계로 발령이 난 것이다. 그 당시 그의 계급은 Specialist. 우리가 아는 영어로는 멋진 것 같지만, 이 계급은 이병과 일병 위에는 있지만, 상병(Corporal)보다는 낮은 계급이다. Corporal은 남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이 Specialist는 남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때때로 카투사들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카투사들은 한국군과 지휘체계가 같아서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계급을 달게 되지만, 미군들은 여러 테스트와 군생활을 얼마나 잘하는 지 등도 적용해 오랜 시간이 흘러도 Corporal을 달지 못하는 미군도 많다. 그런 미군들에게 자신보다 군생활을 적게 한 카투사들이 명령을 하면 그들이 신경질을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일병 말호봉까진 우리 공급계 모두가 식수를 타러 갔지만, 내가 상병(미군의 Corporal에 해당)을 달았을 때에는 막내인 그 미군 X가 식수당번이 되는 것이 당연하 것. 하지만 애석하게도 Yamamoto와 우리 왕눈이 고참, 그리고 나와 Miller가 모두 식수 타는 것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다. 우리 카투사들은 그가 카투사를 우습게 본다는 것이 이유였고, Yamamoto와 Miller는 그의 평소 생활이 미군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일이 화근이었다. 그 미군 X는 날 붙잡고 같이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고, 난 나대로 계급을 내세워 못 가겠다고 우긴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도와줬어야 했지만, 그의 평소 행실은 그 누구에게도 동정도 사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Hey! Kim! U'd go!”
(어이 김씨 넌 가야 돼)

“WHAT! Hey? U think I'm your fellow? LOOK! I'm corporal, Watch U're Mouth!”
(뭐라구? 어이? 내가 너 친구냐? 난 상병이야, 앞으로 말 조심해!)

물론 나도 좀 흥분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전에 우리 카투사들에게 정말 심하게 못된 짓을 많이 했었다. 이제서야 작은 복수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의 얼굴은 거의 울그락 푸르락. 거의 울 지경이다.

갑자기 그 X가 내 가슴을 퍽하고 쳤다. 하지만 평소 고참들의 push-up으로 단련(?)된 나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딴딴해져 있었고 난 속으로도 이렇게 건강해진 내 자신에 놀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이 그의 목으로 날아들었다.

“쩍!!!”

정확히 나의 손아귀는 X의 목에 꽂혔다. 이것으로 나의 KO승! 일단 기세는 잡았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X는 혼자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울부짖더니 밖으로 뛰어 나갔다.

한참 후......

우리 미군 중대장을 그가 데리고 온 것이다. 자신의 시뻘겋게 부어오른 목(그는 피부가 아주 연약한 백인이었다)을 내보이며 울면서 자초지정을 설명했지만, 모든 공급계가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그들의 부연설명으로 난 그와 악수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가 먼저 나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날 저녁 그는 혼자서 20개의 식수통을 나르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 우리 중대의 영웅이 되었다. 미군들은 극도로 폭력을 금기시한다. 군생활에서의 폭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불이익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동안 밉상이던 그 X를 혼내준 나에게는 미군들의 찬사와 선물이 쏟아졌고, 우리 카투사들은 나쁜 미군을 혼내주고 한국군의 기개와 위상(?)을 한껏 고양시킨 쫄따구에게 작전 후 4일 휴가라는 격려선물을 주었다. 물론 우리 중대장도 흔쾌히 사인해 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 예고> 죽음의 PT Test
 
김상기
  
2000/04/14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