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리즈] 나도 할말있다 제10탄

-카투사를 아십니까?(3)-

<미군과의 에피소드 1> 엉? 그게 그 뜻이야?

미군들과 뒤섞여 함께 지낸 카투사 생활이 이주일째 접어들었다. 낯설기만 한 이방인들과의 생활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차츰차츰 적응해 가고 있었다. 아직 미군들과의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했지만, 그들의 얼굴과 손짓으로 많은 것들을 체득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풋내기 신병인 나는 밤마다 군복을 다리고 군화를 번쩍번쩍 빛나게 닦는 게 중요한 행사였다. 저녁5시쯤 하루일과가 끝나면 Gym(체육관)에서 농구를 하고 그날 양식을 먹느라 느끼해진 속을 라면으로 달래는 뒤풀이도 아주 중요한 일과였다.

라면을 끓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각 방마다 고참들을 찾아가 조심스레 라면을 먹을 건지를 물어봐야 한다. 라면을 불지 않고 맛있게 끓이는 것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면 10시가 가까워오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군복과 군화를 손봐야했다. 하지만 신병은 항상 일이 생기는 법. 신병을 가만히 놔두는 부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고참들이 불쑥 방으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해야 했다. 물론 하루 일과중 고참의 눈에 벗어나는 행동은 반드시 push-up으로 혼이 나야 했다.

고참들의 눈에 벗어나는 이유 중에는 미군들과 너무 많이 얘기한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많이 남겼다거나, 웃었다거나 등등이었다. 몇 번을 정신없이 구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온다. 하지만 아직 군복과 군화는 건드리지도 못한 상태. 다음날 아침 Formation(점호)때 미군에게 흠을 잡히면 그날은 죽는 날(?)이다. 하루종일 고참들에게 시달릴 각오를 해야한다.

아침 점호!

엊저녁 잠도 쪼개가며 밤늦도록 줄잡고 광낸 효과가 드디어 나타났다. 나의 복장이 가장 우수하다고 미군 소대장이 Half-Day off(오전만 쉬게 하는 것)를 나에게 준 것이다. 하지만 더 황당했던 건 이일로 GI-Party를 한다고 했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런 일로 파티까지? 그것도 아침부터?’

내가 그렇게 큰일을 했나? 무엇보다도 고참들에게 체면세울 일을 한것 같아 기분이 날아갈것 같이 좋았다. 고참한테 시달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고 두려워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은 두배로 컸다. 칭찬을 들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막사로 들어가는 데 고참 목청이 내 목덜미를 잡았다.

“어디가! 너 빨리 안 와?”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은 마! 청소해야지!”

“예?”

알고 봤더니 GI-Party라는 것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GI는 미군이라는 뜻이고, Party는 그 흔한 파티니까 <미군들과의 흥겨운 파티>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점호가 끝난 후 간단히 막사 주위의 쓰레기를 줍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던 것이다.

－또 한편의 야한 에피소드－

우리 중대는 3소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나는 본부 소대원으로 중대 Supply(공급계)의 역할을 맡았다. 1소대원들은 우리 본부 소대원들과는 달리 작전을 많이 수행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Field(야외)에 나가곤 했다. 그들이 돌아올 때마다 모든 중대원들이 짐을 같이 내려주는 것이 관례였다.

나도 신병이랍시고, 짐을 열심히 내려주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작전에 나갔다가 돌아온 우리 중대의 귀염둥이 여군인 Janson이 나에게 한마디 툭 던지는 것이었다.

“D'nt U Miss me?(나 안 보고 싶었어?)”

이것도 정말 빠르고 순식간에 예측하지 못했을 때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그네들의 발음상으론 <딩유밋미> 정도니 신병인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미군들과의 언어소통이 잘 안되면 고참들에게 또 혼쭐이 나야 하니, 내 신경은 극도로 약화될 수밖에......

“What did you say?(뭐라구요?-더듬거리며)”

약 5∼6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고참들의 눈치, 그리고 그렇게까지 물어봐 주는 Janson에게 실망을 줄 수가 없어서 ‘보고싶었지’라는 표현으로 이렇게 내뱉고 말았다.

“No!(아니 안보고 싶었어)”

그 순간은 너무 당황해서 몰랐지만 몇 분 후에야 내가 한 말이 내 마음과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지나갔는데......

미국의 실생활에서 쓰이는 표현법으로는 뭇여성이 뭇남성에게 그렇게 묻는 건 ‘우리 사귈래?’ 정도의 약간은 야한(?) 표현이라는 것은 그날 밤 미군이 알려줘서 알았다. 그리고 그 미군은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You're mistake!(그건 너의 실수였어)”

아니 그럼. Janson이 나에게?

하지만 아무리 내가 아쉬워해도 버스는 떠난 뒤였다. 그것도 아주 멀리......

<다음 예고>미군들과의 에피소드II (좋은 미군 나쁜 미군①)
 
김상기
 
2000/01/19 1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