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33) 무학의 박사 우리들의 아버지

김명수기자 | 입력 : 2000/06/01 [19:12]

[클릭이사람] (33) 무학의 박사 우리들의 아버지

타고난 농사꾼 김창회 노인(75). 수십년 세월이 지났어도 초심을 잃지않고 살아간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이제 그만 힘든 일을 접어두고 편안하게 지낼 만도 할텐데… 오로지 일만 한다. 그의 하루는 남들보다 한나절이 더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꼭두새벽부터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낮이 긴 여름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한다. 밤이 긴 겨울에는 집에서 글을 쓴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무엇을 만든다.

그에게는 하루 24시간이 아니다. 28시간이다. 새벽닭이 울기전에 일어난다. 그가 일어나 새벽을 깨운다. 새벽닭을 깨운다. 그가 살아가는 방법은 오늘이나 한달전이나 똑같다. 아니 일년전이나 수십년 전이나 하루 한날 같다. 여름이 오나 겨울이 오나 한결같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충청도 칠갑산 자락의 오지마을에 파묻혀 평생을 땅만 파고 살아가고 있다. 하늘만 빼꼼히 뚫린 첩첩산중. 폐허처럼 텅빈 농촌을 신주단지처럼 지키며 70평생을 그렇게 살고 있다. 철저하게 자연에 순응하며 순리대로 살아간다.

 


완전무학. 그렇다. 김노인은 무학이다.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박사네 교수네 하는 사람들과 맞대면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막힘이 없다. 학벌좋은 그들이 오히려 김노인한테 한수 배웠노라고 고개숙이고 간다.

도대체 비결이 뭐길래? 이유는 하나. 한우물만 파왔기 때문이다. 농사박사. 한문박사. 논이라야 겨우 먹고 살기도 빠듯한 몇마지기. 하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삶의 터전이다. 작은 농토나마 하늘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거기에 평생을 매달려왔다. 땅에 쏟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직접 소를 몰고 들어가서 논을 갈고 물을 대고 모내기를 하고 풀을 뽑고 벼를 벤다. 기계가 아닌 몸으로 하는 자연친화적 농법이다. 타고난 농사꾼이다. 농사에 관해서라면 누가 감히 김노인을 능가한단 말인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과 상생하며 살아간다. 화장실도 수십년 아니 백년전 그대로 변함이 없다. 수세식 변기대신 큰독을 묻어놓은 재래식이다. 똥도 오줌도 모두 거름으로 쓴다. 화장지도 두루마리대신 신문이나 재활용종이를 잘게 잘라 사용한다. 어느것 하나 버릴것이 없다. 나무를 때어 소여물을 끓이고 식수도 지하수 샘물이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만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김노인은 한문을 많이 안다. 누가 가르쳐 준것도 아니고 혼자 스스로 틈나는 대로 쓰고 읽고 터득했다. 지금도 틈나는 대로 한문을 쓴다. 평생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자격증만 없을 뿐이지 실력으로 치면 박사이상이다. 학력은 무학이지만 실력은 박사.

김노인은 가축에게도 자식 돌보듯 정성을 쏟는다. 겨울이 되면 춥지 않도록 소등에 두툼한 멍석을 입혀준다. 생볏단을 먹이로 던져줘도 될법한데 꼭 여물을 펄펄 끓여서 따뜻한 밥을 먹이듯 챙겨준다.

평생을 원칙만 고수하며 고지식하게 살아왔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 술도 담배도 안하고 오직 일만 한다. 땅만 팠다. 일만 했다. 땅과 더불어 욕심없이 살고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며 씨뿌린만큼 거둔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믿고 살아간다.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며 열심히 노력하고 땀을 흘려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고향을 떠나서 객지에서 살아본적이 없다. 동네사람들이 하나 둘씩 객지로 빠져나가도 오직 고향을 지키며 한집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셔야 한다며 고향에 머물러 살아왔고 지금은 텅빈 내고향 내땅 내가 지켜야 한다며 눌러앉아 살고 있다. 남들이 다 떠난다고 나까지 떠날수는 없다며 소신대로 살아간다.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는 답답하고 고지식하다. 평생을 흥청거리고 노래부르며 놀아본적이 없다. 복권한장 사본적도 없다. 일확천금을 꿈꿔본적도 없다.

봄이면 씨뿌리고 가을이면 거둬들이는 농부로 욕심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자랑할것도 없지만 부끄울것도 더더욱 없다. 누가 농심은 천심이라 했던가. 아무리 혼탁한 세상이라 해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김노인. 천심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오로지 일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족보를 정리한다. 옛것 옛문화를 하늘처럼 소중하게 생각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 꽉막힌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남들의 눈치 안보고 소신대로 살아온 김노인은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다른사람이 출세하거나 성공했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농사를 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한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농사만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하루같이 살아온 그에게 다른 일은 아무리 화려하고 위대해 보일지라도 그것은 다른사람이 해야할 몫일뿐이다.

 
김노인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종말이 오는 순간까지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서 오늘하루에 평생 할 것 다하려고 있는 돈 없는돈 다 써가며 발버둥치는 것은 오늘을 분수넘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기 분수를 지키며 변함없이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사람사는 도리라고 생각한다.

70이 넘은 지금도 산에다 밤나무묘목을 심고 가꾼다.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마다 자식 돌보듯 정성을 다한다. 그러기를 십년이 넘었다. 그가 심어놓은 묘목이 자라고 숲을 이뤄 가을이 되면 밤이 주렁주렁 열리는 밤나무 단지로 변했다. 그는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밤나무를 심고 산을 가꾸고 살아갈 것이다.

조상을 하늘같이 여기고 할아버지 산소자리를 가꾸고 족보를 챙기고 가문의 종친회를 찾아다니고 뿌리를 소중히 여긴다. 김노인은 손재주가 좋다. 볏짚으로 가마니 짜고 멍석 삼태기 만들고 왕골로 돗자리 만들고 대마로 삼베 모시 짜고 못하는게 없었다.

며칠씩 산에서 밤낮을 보내며 참나무로 숯을 굽기도 했다. 싸리나무로 지게바작 광주리 소쿠리 용수등 그의 손만 닿으면 무엇이든 만들어져 나왔다. 동네 잔칫날이면 과일 다과상 차리고 괴는 것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널따란 잔칫상에 은행 밤 과일등을 그림같이 쌓아 올리는 그의 뛰어난 손재주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가 만약 정치인이 되었다면 로비도 안통하고 뇌물도 안통할 것이다. 오히려 도리에 어긋나는 무리한 부탁을 얻어내기 위해 뇌물을 준다면 그사람은 뇌물 때문에 더 그에게 올가미가 되어 매장당할 것이다.

김노인은 산골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지만 뉴스는 꼭 챙겨 듣는다. 만약 서울 사람이 김노인 앞에서 그를 얕잡아 보고 정치가 어쩌고 경제가 어쩌고 섣불리 아는체 했다간 오히려 당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매일 듣는 라디오 또는 TV뉴스를 통해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손바닥처럼 훤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땅파고 지게질하고 힘든 일만 해온 탓에 허리도 어깨도 많이 굽었다. 무거운 지게질을 하도 많이 해서 어깨가 짐에 눌려 키마저도 작아졌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큰아들이 같이 살자고 성화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한평생을 소박한 농부로 살아가는 김노인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옛고향을 다시 찾아온 것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바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40대가장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넉넉하고 푸근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조령모개같은 세상에 현혹되지 않고 조금은 우직하고 고지식하게 김노인처럼 그렇게 살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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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 인물인터뷰전문기자>

2000/05/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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