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32) 영자의 전성시대 속편만든 심재석감독

[클릭이사람] (32) 영자의 전성시대 속편만든 심재석감독

영화감독 심재석(52). 80년대 초반 영자의 전성시대 속편으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그가 처음으로 감독한 이영화는 12만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12만은 지금의 60만명에 맞먹는 흥행성공이다.

▲ 영화 '너에게로 또다시' 촬영현장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최수종에게 연기지시를 하고 있는 심재석감독.     ©

그는 70년대 초반에 영화의 길로 뛰어들었다. 임권택 감독 아래 들어가 7∼8년동안 조감독 생활을 한다. 그후 2∼3년 더 실력을 쌓은 뒤 감독으로 데뷔를 했다. 첫작품이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 속편. 전편에 주연을 맡았던 송재호씨의 아들인 영춘군이 주인공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그후 '비련' '바람 바람 바람' '여신의 늪' '차라리 불덩이가 되리' '사랑의 찬가'등 많은 영화를 제작해 나간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정윤희와 이영하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사랑의 찬가'. 촬영이 끝나고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여주인공 정윤희가 간통사건으로 고발되어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윤희는 결국 '사랑의 찬가' 출연을 마지막으로 화려했던 배우인생을 접어야 했다. 기대를 걸었던 '사랑의 찬가'도 정윤희의 스캔들과 함께 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바람 바람 바람'은 스포츠신문 인기 연재물을 영상으로 다뤘으나 검열이라는 덫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영화.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마음에 상처만 안겨준 작품이다. 검열이 삼엄하던 시대로 이 영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려 1년에 걸쳐 10차례 이상이나 수정검열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완성되었을때는 원작 타이틀만 남고 처음에 의도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다.

'사랑의 찬가' 이후에는 MBC 프리랜서 PD로 베스트셀러 극장을 집중적으로 맡았다. 아름다운 섬을 배경으로 원시적 자연의 낭만과 문명세계사이의 갈등을 심미적 영상으로 담아낸 '흐르는 섬'. 기존의 틀을 깨고 여주인공의 돌출행동이 부각되는 멜로드라마 '모눈 종이위의 생'. 과거와 현실 사이에서 두 형제가 벌이는 갈등과 고뇌를 통해 한국전쟁의 비극을 조명한 '망각속을 흐르는 강'. 한여자를 사랑하는 한남자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멜로드라마 '달빛아래 어릿광대'.

80년대 중반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던 심감독의 작품들이다. 그의 연출세계는 한없이 맑고 깨끗하다. 가을 하늘처럼 티없고 맑은 심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1985년에 방영된 '흐르는 섬'을 시작으로 꾸준히 베스트셀러극장 연출을 하면서 탄탄한 실력을 쌓아나갔다. 그의 TV작품 연출작업은 계속 이어진다.

청소년들의 아픔과 성숙을 아름답게 표현한 '아프리카여 안녕'. 한가족이라는 일체감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과 종업원 사이의 훈훈한 인정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보여준 'C반점 이야기'. 은장도로 상징되는 지조있는 삶과 트럼펫으로 상징되는 뿌리없는 삶을 대비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은장도와 트럼펫'. 물질 만능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랑의 모럴을 제시하는 하이코미디물 '월세신부'.

한결같이 잔잔하면서도 서정미 넘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의 일관된 세계가 어쩌면 편협성으로 연결되는 듯 하지만 너무 여려보이는 작품의 심성이 오히려 그의 강점임을 깨달을수 있다.

MBC 작품연출활동을 그만두고 다시 영화에 뛰어들어 사기꾼위에 사기꾼이 있다는 내용을 소재로 다룬 '도둑놈과 도둑님'을 만들었다. 그후 만든 영화가 '사랑의 낙서'. 크게 히트했던 성인만화를 영화화 했다. 이덕화 전세영 김청 김무생등 당시 인기드라마 '사랑과 욕망'에 출연하던 최고의 인기스타들이 대거 이영화에 출연했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각지방에 있는 흥행사에 미리 돈을 받고 영화를 팔던 시기였다. 그런데 욕심을 부렸다. 다른 작품보다 3배이상을 요구했다. 턱없이 비싼 요구에 흥행사에서 엄두를 못냈다. 결국은 스폰서를 잡지 못하고 겨우 겨우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까 홍보를 전혀 못했다. 흥행에 실패했다.

그후 프리랜서 PD로 2년정도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다시 영화쪽으로 돌아와 전유성을 감독으로 데뷔시킨다. 전유성의 아이디어를 살려주고 싶어서 '칙칙이의 내일은 챔피언'이라는 어린이 영화를 만들었다.

91년에 만든 영화는 '너에게로 또다시'. 변진섭의 히트곡 제목을 딴 영화로 청소년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었다. 최수종과 하희라가 이영화에 함께 출연하면서 두사람 사이가 가까워져 결혼까지 하게된 것으로 알고 있다.

93년에 독립프로덕션 '영상박스'를 설립했다. 교통관광TV(현 리빙TV) 개국기념 물길따라 뱃길따라라는 섬여행정보프로그램을 맡았다. 심감독이 운영하는 영상박스는 섬여행 정보뿐만 아니라 홍보영화와 CF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는 지금 영상박스 대표로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 영화계의 중진. 80년대 잘나가는 영화감독중의 하나로 많은 신인들을 작품에 출연시켰다. 당시에는 국내에 영화사가 20개 정도밖에 없었다. 영화사 사장들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들이 감독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또한 심한 검열과 암울했던 시대상황이 맞물려 작품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검열에 따른 소재 제한 때문에 작품을 마음먹은대로 만들 수 없었다.

심감독은 자신을 영화감독으로 이끌어준 임권택감독님을 잊지 못한다. 영화와 다큐를 만들고 영상박스를 운영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공허한 상태였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영화감독이었기 때문에 정신적 방황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때 스승인 임권택감독님을 만나서 점심을 함께 했다.

식사를 하면서 임감독님이 이런 말을 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의 끈만 놓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는 꼭 영화를 하게 된다면서 자신도 40이 넘어서야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느냐고…

그말을 듣고 나서 자신이 끈을 놓고 있는지 아닌지 고민을 했다. 며칠동안 곰곰히 생각해 본후 아직까지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80년대에 하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못했던 한을 지금부터라도 풀고 싶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커가는 자식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흥행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놓고 쳐다보는 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작품으로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물론 관객들에게도 영원히 좋은 작품으로 기억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심감독은 얼마전부터 시한부소년시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불치병과 싸우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한 삶을 살아가는 소년의 안타까운 사연을 매스컴을 통해 알게된 1998년 9월부터 작품구상을 했다. 기사를 보는 순간 다큐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어떤식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가 숙제였다. 그문제를 풀려고 매달리다 보니 1년이상이 걸렸다.

최근에야 해법이 나왔다. 그래서 소년을 찾아갔다. 소년은 처음에 무슨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스스로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난데없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라고 했으니 말이다.

심감독은 다큐영화를 만들 결심을 하게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소년은 그제서야 장난이 아니고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다리 멀쩡하고 똑똑하고 건강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영화출연을 한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요즘 영화배우가 되어보겠다고 연기학원에 다니는 꿈나무들도 많은 세상인데…

심감독이 시한부소년에 대한 영화를 구상한 계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준비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자칫 건강한 육신으로 태어나고도 비행에 빠지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혹의 덫에 걸려 탈선에 빠지거나 부모의 과잉보호속에 나약해지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처음에 주위사람들이 심감독을 말렸다. 흥행물로도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전혀 투자가치를 회수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무명을 주인공으로 다큐영화를 만드는 것은 너무 큰 모험이라며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나 심감독의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검토하고 분석해본 끝에 출혈을 감수하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 그는 제작비를 지원해줄 스폰서를 찾고 있다. 무명을 주인공으로 다큐영상을 만들겠다는 심감독의 뜻을 이해해주고 제작비를 대줄 스폰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나리오작업은 이미 끝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심감독에게 스폰서만 나오면 시한부소년은 세상사람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스크린 스타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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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2000/05/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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