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협회의 오만한 궤변

촉망받던 젊은 여성작가의 비참한 죽음이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고 시나리오 작가들의 현주소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수많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제작사와 연기자들이 누리는 부(富)에 비추어 작가들과 스탭들의 형편없는 처우가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작가들의 현주소에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각종 매스컴을 쏟아져나오는 시나리오 작가들의 현실 폭로와 대중들의 괌신에 대해 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모 유력일간지의 기고문을 통해 '지나친 연민과 동정'이라고 했다. 연민과 동정이 젊은 작가들을 좌절케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 스스로가 열악한 환경을 인정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연민과 동정을 거부한다면서 정부를 향해서는 가난한 영화인들을 위해 안전망을 마련해달라고 한다. 어처구니 없는 이율배반이다.
 
30년 작가의 길을 걸었다는 원로작가라는 사람이 문제해결에 앞장설 생각은 하지 않고 개선책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관심에 대해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사실 시나리오작가협회라는 것이 원로라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동아리 수준에 불과하니 무슨 힘이 있을까만은 이러한 사고방식이 오늘날 작가들을 피폐로 몰고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시나리오뿐만이 아니라 문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들은 등단과 비등단으로 나뉘어 등단을 해야만 작가로 인정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이라는 지상학씨가 말하는 '프로'라는 의미가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등단을 했거나 유명세를 타야만 '프로'로서의 작가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과연 작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문학과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 만으로 이미 작가이다. 강습소를 만들고 교육시설을 만들어 유료교육을 시키고 시험을 치르듯이 응모전에 당선되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협회니 단체니 하는 것들을 보면 패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몇십명 모아놓고 마치 전체를 대표하는양 목에 힘을 주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상학씨는 故 최고은양이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지망생이거나 연출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최양은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그리고 2006년 자신이 쓴 시나리오인 '격정소나타'를 연출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은 촉망받던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학씨는 작가가 아니라며 폄하를 서슴치 않았다. 지씨야말로 프로가 아니다. 그가 프로였다면 작가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시나리오작가의 길을 걷는 사람만도 4-5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무척 협소할 뿐만아니라 처우도 형편없다. 연간 드라마 제작편수가 50여편, 영화 제작편수가 80편내외로 알려져 있다. 지씨는 프로작가중에 드라마를 겸하며 고수익을 올리는 작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숫자를 놓고 일반적인양 호도하는 것이다. 소위 잘나가는 몇몇이 우리나라 전체 시나리오 시장의 대표인냥 떠들고 있는 것이다.
 
지씨는 최양의 죽음을 사회현상중에 하나쯤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빛과 그림자를 들먹였다. 지씨는 빛일 지 모르지만 수만명의 작가들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지씨는 과연 빛으로 추앙받고 부를 누리면서 그림자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나. 어찌 감히 원로를 자임하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것은 연민과 동정의 눈길이 아니라 어줍잖은 프로를 지양하는 동아리 수준의 협회와 그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이다.
 
지씨는 고인을 욕되게 하고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현실을 호도하는 작태를 크게 반성하고 올바른 문화인의 자세를 갖출 것을 권고한다.
 
 
 
<이영민/피플코리아 논설위원 yominlee@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