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코리아] (18)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

[글로벌코리아] (18)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


교수인 친구와 간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현재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물었더니 여전히 상대 평가를 한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각 대학들에 전화를 해본다.(2008년 7월25일)

서울대는 전공은 절대 평가 교양은 상대 평가라고 하고

나머지 대학들은 거의 상대 평가를 주로 한다고 한다.


속칭 SKY 중의 한 대학에 “왜 상대 평가를 하나요?” 물으니

“절대 평가를 할 이유가 있나요?” 다소 공격적인 답변이 나온다.

학교가 설립된 이래 상대 평가를 해왔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해보니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되었는데 평가 시스템도 마찬가지.


왜 상대 평가를 하고 있을까?


상대 평가와 절대 평가의

장, 단점이 각각 있겠지만

절대 평가가 더 합리적이란 생각이 든다.


100점 기준의 시험에서 한 학생이 70점을 받았고

다른 학생들은 70점 이하를 받았다.

학업 성취도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1등을 차지하게 된다.


100점 기준의 시험에서 한 학생이 96점을 받아

학업 성취도가 높지만 96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많이 나오게 되면 순위에서 밀리게 되어 A 학점을 못 받을 수도 있다.


또 공부를 잘 한 학생들이 모인 반과 그렇게 못한 반에서의

순위의 적정성과 평가의 객관성이 부족하게 된다.


사실 일정한 기준을 통과한 학생이라면 학업 능력에서

별 차이를 두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학교나 대학원 입학 자격에서는

일정 기준을 통과한 학생이라면 같은 수준으로 인정한다.


그까짓 한두 개 문제 더 맞았다고

토플 600점과 605점을 전혀 다른 수준으로 평가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내신이나 수능에서

몇 문제 더 맞은 사람이 학업을 더 잘 해 나갈 수 있으며

사회를 잘 이끌어 가는 사람으로 더 적합한 지는 아리송한 얘기다.



이러한 상대 평가의 암울한 내면에는

대학들이 과연 어떤 사람을 입학시키는 가에 대한

기준과 18년 동안 이뤄진 군사 문화의 보이지 않는

검은 뿌리가 박혀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우수한 학생들의 기준이 무엇일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오로지 성적 지상주의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미래의 리더’를 양성하는데 중점을 둔다.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많이 갖고 있는 학생들의

유치에 열을 올린다.

그게 대학이란 학문 기관에 주어진 책임과 역할이 아닌가.


내신 성적이 좀 더 좋거나 수능 점수가 좀 더 뛰어나다고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더 많이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은 군사 문화의 영향.

군대란 엄격한 서열이 존재하는 곳이고

이 서열이 명령 체계를 만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전쟁에서 2등은 필요 없다.

오직 1등이 되어야 삶을 보전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나라 곳곳에 스며들어 왕성한

번식을 해오고 있지만 이제는 획일적인 것을 강요하는

문화를 과감히 잘라내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일단 어느 기준점을 통과한 학생들이라면

그 학생들을 동일한 출발선에 나두고 다른 면면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상대 평가 보다는 절대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교사나 교수들이 절대 평가를 하는 수준을 인심 좋게

낮게 책정하는 염려도 있다.


그건 학교의 몫이다.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있으면 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학교에서 내신 등급을 학생들에게 좋게 하기 위해서

시험을 쉽게 낸다. 또는 점수를 후하게 준다.


그렇게 해서 좋은 내신 등급을 받은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 학생의 내신 등급과 수능 시험 점수를 비교해보면

그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내신 등급은 높은데 수능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면접은 그러한 학생들을 걸러내라고 있는 것이다.

그까짓 종이를 통한 점수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면접을 해보면 해당 학생의 지식수준이나 판단력,

리더십, 성실성, 열정 등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면접관의 지식수준이

낮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학교의 역할은 학생들로 하여금 일정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게 만드는 곳이다.

그 습득된 지식을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하는 가는

학생들의 몫이다.


반드시 몇 등을 해야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세상의 지식을 쌓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어야 한다.


대학교에 물어보니 회사에서 상대 평가를 원해서 그렇게

한다는 대답이 들어온다.

회사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절대 평가를 하는 경우, 점수를 너무 후하게 줘서 누가 ‘더 똑똑한지’

가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사회의 경우, 어떻게 그렇게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을까?


학생들을 회사의 일꾼으로 채용하는 기업들도

학교를 믿고 다양한 방식으로 직원들을 뽑아야 한다.


외국 회사와 국내 회사의 직원 채용 방식에서도

그 차이점이 드러난다.


왜 히딩크 감독이 4강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엘리트의 특권들을 없애면서,

귀족이라는 특권층들이 신흥 상업 세력에 흡수되면서

근대화가 진행된 서구의 방식은 상대 평가에서 절대 평가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과거 60, 70년대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가 교육 시스템에도

꾸준하게 스며들게 된 게 아닐까?


사회는 계속 변해만 가는데

꼭 1등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는 아직도 음흉한 미소를

띠운 채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먹어 치우고 있다.


남보다 뭔가 돋보여야 하는, 남보다 반드시 앞서야 하는

서열 주의, 등수 우선주의는 명품을 몸에 걸쳐야 하고

고급 차를 몰아야 하는 가식의 경쟁을 낳고 있다.


지금은 언론과 사회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지만

이러한 1등 주의는 과거 올림픽에서 금메달 지상주의로

연결되어 은, 동메달을 딴 사람들은 얼굴을 쳐들 수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2등과 3등이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실력인가.

준결승에서 떨어져 메달 권에서 멀어진 4등이라고 해도

그 실력은 엄청난 것이다.


열심히 하고 왔으면 박수를 쳐주고 격려를 해줘야

하는데 “에이, 1등도 못했어, 뭐야 동메달?“


이러한 분위기는 상대 평가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고

꼭 1등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불필요한 경쟁의식과

어둠의 거래를 끈끈하게 유지하고 있다.


학업 성취도도 높고 상당한 수준의

능력이 입증되어도 1등이 아니면 또는

상위 등수에 들지 못해 공부를 못하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처럼 웃기는 일이 어디 있으랴. ㅋ ㅋ ㅋ


1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1등이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파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