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28) 이름이 운명을 바꾼 구필림

［클릭이사람］(28) 이름이 운명을 바꾼 구필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이름이 있다. 서울 상계동 사진관 '봄칼라 스튜디오' 구필림사장(43). 이름 때문에 겪은 수난과 에피소드를 다 털어놓으려면 며칠밤낮을 계속해도 모자란다. 이름이 운명을 바꾼 남자다. 튀는 이름 덕분에 사진이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택했다. 콤플렉스를 느끼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이름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초등학생시절부터 이름값을 톡톡히 치뤄야 했다. 전교생이 2천명이나 되는 제법 큰 학교였지만 필림이라는 이름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구씨라는 성도 학교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성도 놀림감이오 이름도 놀림감이었다. 철모르던 어린시절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는 생각보다 컸다.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은 것은 사진관을 하면서 부터였다. 그의 사진인생은 1986년부터 시작된다. 처남이 차린 25분칼라를 관리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그때는 자신의 이름이 운명을 바꾸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이름이 사진이라는 직업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은 약국에 수표를 바꾸러 갔다. 수표 뒷면에 이름을 이서하였다. 구필림이라고… 이서한 이름을 보더니 약국주인이 수표를 도로 던져준다. 진짜 이름을 쓰라고 한다. 필림은 순간 주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 이름을 썼는데 무슨 딴소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수표를 받았다가 또 건네주었다.

약국주인 역시 다시 던져준다. 얼굴엔 기분나쁜 표정이 역력하였다. 아니 어쩌란 말이야. 필림은 속으로 화가 났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다시 수표를 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약국주인이 화를 버럭 낸다. 진짜 이름을 적으라고 몇번이나 했는데 계속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필림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이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약국주인에게 보여주었다.

약국주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주민등록에 적힌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배꼽을 잡고 큰소리로 웃는다. 그러더니 "당신은 사진이 천직"이라며 그길로 계속 나가라고 권한다. 이런일도 있다. 사진관 사업자등록증이 나왔다고 연락이 와서 찾으러 갔다. 세무서에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큰소리로 구필림씨 왔다면서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구필림씨 아직 안왔냐고 몇번이나 큰소리로 호명하던 세무서 직원의 소리를 듣고서 그가 도착하자 얼굴을 알아본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얼떨결에 당했지만 그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필림은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사진에 남은 인생을 걸기로 했다. 사진이야말로 그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바꾸니 일하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좋을수가 없다. 개성있는 이름이 오히려 고맙다. 얼굴을 안보고도 알아주는 이름. 언제 누가 들어도 단번에 기억할수 있는 이름은 이세상에 구필림밖에 없다고 자부한다.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돈을 부지런히 모아서 팔도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모두 잘살도록 도와주고 싶다. 형제들끼리 웃음꽃을 피우며 모여 살고 싶다.

그는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보성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8살때 사촌형을 따라서 서울에 올라왔다. 어린 마음에 빚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시골에서는 서울에 올라가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큰출세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공장에 다녔다. 쇠단추를 만드는 대한금속이었다. 월급은 8천5백원. 당시에는 큰돈이었다. 무일푼으로 상경하여 5년만에 시골빚을 모두 갚았다. 그때 객지생활에 힘들어하던 그를 부모처럼 챙겨준 공장장님과는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었다. 군대에 가서 꼭 면허증을 따겠다고 마음먹었다. 군대에 가면 출세하는 것으로 알았다. 기합을 잘 받기 위해 부지런히 팔굽혀펴기 연습을 하였다. 군에 입대하여 수송부로 빠졌다.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군대면허증을 땄다.

그는 스스로를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별로 베풀어주지 못하는데도 받는 것이 과분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인정이 많은 때문이리라.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항상 웃는 그의 얼굴에서 푸근함이 느껴진다.

사진 덕분에 행사장에서까지 특권아닌 그만의 특권을 누린다. 관내에서 크고 작은 공식 행사가 있는 날이면 더욱 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남들은 모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는 아니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마음대로 휘젓고 돌아다닐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바로 사진인생 구필림이니까.

그는 사진기술을 사실은 어깨 너머로 배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식으로 코스를 밟고 싶어서 성균관대 사회교육원 사진전문직강의를 듣고 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론공부를 계속할 작정이다.

아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 바로 사진. 그러다 보니 소문난 마당발이 되었다. 경찰서에 가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가끔씩 신필림 왔냐고 농담을 걸어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악의없는 친근감의 표시라는 것을 잘알기 때문이다.

개그맨 버금갈 정도로 남을 웃기기 좋아하고 낙천적인 성격. 타고난 사진인생이다. 사진관 렌즈앞에 앉아있는 어린아이의 얼어붙은 표정도 그의 몇마디 농담이면 햇살처럼 환하게 펴진다.

IMF때도 그는 크게 불황을 타지 않았다. 평소에 친분을 다져놓은 손님들이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쩌다 고향에 내려가면 사람들이 그를 보고 출세했다고 한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에 비하면 그럴수도 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다. 세상을 헛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고향을 지키며 때묻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볼때마다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사회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빚이 몇억이라도 끄떡없이 잘살아가는 정치인들을 보면 무슨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 신기하고 이상하다. 우리같은 소시민은 몇백만원만 빚을 지어도 견뎌내기가 어려운데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사회인지 감을 잡을수가 없다며 혀를 찬다.

특히 돈없고 힘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한다. 법에 호소해도 안되니 대통령앞으로 편지라도 보내어 힘없는 사람이 당하는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을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표현한다. 남기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에 담아 영원한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예술가라며 활짝 웃는다. 지역선도위원으로 나름대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사진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그는 부친이 지어주신 이름도 역시 만족한다며 넉넉한 웃음을 웃어보인다. 이름 때문에 운명이 바뀐 구필림. 이름한번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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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people365@korea.com>

2000/05/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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