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291) 청주 서운동천주교회 28년 붙박이 사무장 ‘1004 서원국’

[클릭이사람] (291) 청주 서운동천주교회 28년 붙박이 사무장 ‘1004 서원국’

그는 천사를 닮았나?. 아니면 천사를 닮고 싶은 간절한 희망을 안고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거칠고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충북 청주교구 서운동천주교회 서원국(48) 사무장은 유난히 천사(1004)라는 단어와 관련이 깊다.

서운동 성당에서만 28년째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특이한 이력과 함께 그는 청주교구 천주교 사무장 모임(천사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또한 1004라는 숫자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청주 부영임대 아파트 1004동 1004호에 살고 있다. 새 아파트에 처음 입주하면서 다른 입주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특별한 의도 없이 동호수 배정을 받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1004동 1004호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기가 막힌 우연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성당에서 보통 주임신부가 바뀌면 사무장도 따라서 바뀌는 것이 관례. 그런데 그동안 열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는 많은 주임신부를 모셔 왔으면서도 28년을 줄곧 한 곳에서만 붙박이 사무장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한 성당에서 근무한 사무장으로는 청주교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그의 세례명은 ‘다두(다대오)'. 예수의 12제자 중 한사람이었던 ‘다두’처럼 살고, 다두처럼 최후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12살 때부터 성당에 나가 믿음을 쌓고 그 믿음으로 성당을 관리하면서 청년기를 보낸 그가 지금까지 모신 신부는 보좌신부까지 합쳐 모두 25명. 이만하면 서운동 성당 역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는 사무장으로 근무하면서 선교활동도 열심히 하여 무려 600명을 영세 받도록 이끌었고  300명의 대부가 되어주었다.

성당을 일터로 삼아 평생을 하느님과 생활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을 가진 그에게도 두려움은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교회에서 일하면 원래 천당을 못 간다.”는 속설이 있다며 행복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청주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서운동성당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 현 청주교구청(북문로)자리에 설립됐다가 1960년 지금의 서운동(청주시 서운동 90-1) 자리로 이전, 성당과 사제관을 축성했다.

초대신부는 박일규 신부. 지학순 주교(전 원주교구장)가 53년 보좌신부로, 나길모 주교(인천교구장)가 57년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서씨가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고 이한구 신부를 비롯해 모두 17명의 주임신부가 이곳 서운동 성당을 거쳐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부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이한구 신부. 그가 성당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게 이끌어준 신부이기 때문이다. 

외가가 모두 천주교 신자였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아세례를 받고 아무런 의심 없이 신앙을 키워왔다. 7남매 중 장남으로 형제들 모두 영세를 받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

74세에 세상을 뜬 아버지. 집안에서는 유일하게 평생을 성당과 담을 쌓고 살았던 아버지도 끝내는 두 손을 들었다. 가족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시기 2년 전인 72세에 영세를 받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고교 때 지금은 사라진 충북도중고생연합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는 등 열심이었던 그는 이때 이한구 신부를 만났다.

이 신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못하고 있는 그를 불러 “여기 와서 일 좀 봐주며 공부를 계속하라”며 이끌어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76년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고 3일 만에 출근했다. 바로 그의 삶과 인생이 녹아있는 이곳 서운동 성당.

▲     © 피플코리아

성당 일을 봐 준지 얼마 안 돼 사무장이 세상을 뜨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그는 스무 살에 최연소 사무장이 됐다. 얼떨결에 맡게 된 사무장 일은 만만치 않았다. 각종 교구행사와 지역대회, 교적정리 업무부터 성당 청소까지 크고 잡다한 일이 넘쳐났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유달리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했던 그는 곧 능숙하게 일을 배워나갔다.

주임신부가 바뀔 때마다 겪는 마음고생도 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새로운 신부가 부임하기 전 미리 사표를 쓰고 대기하고 있어도 신부들은 그를 원했고 신자들도 그가 성당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 성당과 동고동락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도 성당의 한부분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시 가까이 매일같이 일해야 하는 고된 업무를 28년간 한눈팔지 않고 일해 왔다는 자체가 그의 남다른 성실성을 말해준다. 봉사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당 일을 하다가 때로는 지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필립보서 4장 13절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는 성서구절을 마음속으로 여러 차례 되뇌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서원국씨. 

믿음이 확실했던 신자들이 간혹 중간에 냉담자가 되는 것을 목격하는데 그럴 때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반면에 냉담자들이 다시 성당을 찾게 되는 것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일관된 신앙을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또 신앙심을 가꿔나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주변사람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 하나. 한번은 신부님 진도개가 없어져 본의 아니게 의심받은 적이 있다. 자전거 매는 끈을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수녀님이 목격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자전거 줄을 개 목줄로 잘못 보고 “한여름 복더위에 진도개를 그가 혹시 어떻게 한 것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오해가 빚은 해프닝이다. 

서운동 성당은 줄지어 서있는 술집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하필이면 왜 술집들 속에 자리할까. 서씨는 “깨끗이 정화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대답했다.

한 성당에서만 28년째 붙박이 사무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두 서원국.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험난하고 거친 세상에서 오직 믿음 하나로 성당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그의 얼굴에 흐르는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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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4년 02월15일 10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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