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바람의 수필] (27) 술 때문에 생긴 해프닝

(116)[바람의 수필] (27) 술 때문에 생긴 해프닝


아무리 평소엔 샌님같이 얌전해도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술만 취했다 하면 도저히 믿기 어려울정도로 엉뚱한 행동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취중에 저지른 실수를 나중에 맨정신으로 돌아보면 부끄럽고 유치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주량이 기껏해야 소주 3잔이고 맥주로 치면 5백cc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빨리 취하는 단점이 있다.  물론 내가 술에 약하다는 내자신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미리 조심 또 조심을 하지만 먹다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술에 대한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지금도 머리 속에 생생한 에피소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친구와 막걸리를 먹고 기분이 좋아서 흥청거리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나 술을 이겨낼 장사가 없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술이 뭔지도 모르고 꿀꺽꿀꺽 마시다 보니 혀가 꼬부라질 정도로 취했다. 당시 나는 칠갑산 첩첩산골에서 공주라는 곳으로 고등학교유학을 와서 하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나이에 집을 떠나 객지에서 남의 밥을 먹으면서 지내자니 수시로 떠오르는 집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 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향수를 달래려고 막걸리를 퍼마셨는데 오히려 집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졌다. 친구와 둘이서 금강 둑방을 걸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고성방가 노래를 부르고 몸을 휘청거리며 쏘아 다녔다.

그리고는 저녁때가 되어서 친구네 집으로 들어갔다. 당시 그친구는 나와 절친한 단짝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객지에 나와서 하숙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친아들처럼 대하였다. 술이 취해서 속이 안 좋은 나를 보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다 주었다. 약을 먹고 그만 골아 떨어졌다.그러나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친구의 어머니가 새이부자리를 깔아주었는데 그만 그위에 먹은 술을 몽땅 토해낸 것이었다. 잠결에 토하고 깨고 나서도 토했다. 내옷과 이부자리가 마치 오물 전시회를 하는 꼴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도 화를 내거나 역정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의 옷으로 갈아입고 내옷은 그냥 벗어놓고 집을 빠져 나왔다.

나중에 깨고 나니 어찌나 미안하고 무안하던지 낯뜨거워서 며칠동안을 친구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술에 대한 에피소드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뒤로 연이어 터진 대박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에서 재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주말에 시골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공주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친구도 바로 고등학교때 그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반가움에 술을 퍼마셨다. 마시고 또마셔도 그동안의 밀린 회포를 푸는데는 끝이 없었다. 결국은 그날도 코가 비뚤어지게 마셨다. 결국은 술에 만취된 상태로 공주에서 대전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그러나 웬걸.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뱃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수박이며 참외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었는데 금강다리를 건너가기도 전에 토하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아예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달리는 버스에서 고개를 내밀고 정신없이 토했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이 억세게 부는 강바람에 날리면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얼마를 토했던지. 나중에는  뱃속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헉헉거릴 뿐. 숨도 쉬기 어려울정도로 기진맥진했다.

그렇게 대전까지 갔다. 대전에 도착해서 간신히 몸을 추스려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를 바라보니 가관이었다. 버스 한쪽 전체가 울긋불긋 총천연색으로 물들여졌다. 인간의 실수가 빚어낸 걸작품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나의 많은 실수담에서는 작은 이벤트에 불과하다. 군에가서 경천동지할 대박을 터트렸다.

천지분간 못할 가장 졸병 이등병 때였다. 그날은 마침 나의 생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또한 자대배치후 처음으로 야간근무 서는 날이었다. 고참들이 생일 축하한다면서 술을 따라 주었다. 닥치는 대로 먹었다. 반합뚜껑에 소주를 찰랑찰랑 따라주면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생각해 보시라 소주 석잔이면 적량인 내가 반합뚜껑으로 주는 대로 받아마셨으니 내꼴이 얼마나 망가졌을지는 상상만 해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같은 고참이 무서워 술취했다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고참은 술에 취한 나에게 첫근무인 만큼 야간근무 철저히  하라면서 몇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염려 붙들어매시라고 큰소리 뻥뻥치고 근무지로 나왔다. 그러나 이미 내몸은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패잔병 꼴이었다. 그러나 이걸 어째. 하필이면 부대 정문 근무였다. 초소에 들어가 우선 총과 철모를 벗어서 걸어놓았다. 술김에 세상무서운줄도 모르고 우쭐우쭐 해졌다.

깜빡 깜빡 잠이 왔다. 그만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하필 부대장이 예하부대 야간순찰을 돌 줄이야.  부대장은 정문에서 야간 근무 중에 무장해제하고 초소에서 잠들어있는 나를 보고 기겁을 했다. 아니 하늘보다도 더 높은 우리부대의 최상급부대장이 오면 전 부대가 비상이 걸리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가장 졸병이 엄청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부대장이 오히려 나를 깨웠다.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그냥 부대로 들어갔다.  고참병들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줄줄이 달려 나왔음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고 나는 곧바로 고참병들에 이끌려 내무반에 들어갔다. 오늘은 아무 생각말고 그져 죽은 듯이 잠이나 푹 자라면서 모포까지 깔아줬다. 그러나 그날 바로 내가 잠들어 있는 그동안 전 부대원이 완전군장에 비상걸린 것은 물론이었다.

술이 빚은 해프닝은 그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직장에 첫입사해서 였다. 고참들이 반갑다고 툭하면 술을 받아줬다. 첫직장은 대전이고 집은 청주였다. 술을 먹다보면 막차가 끊기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신혼생활을 즐기던 내가 외박을 할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은 나라시(합승)택시를 타는 것이었다. 그날도 고참들이 사준 술을 마시고 머리꼭대기 까지 취한상태에서 택시를 탔다.

술을 사준 고참이 친절하게도 직접 택시를 잡아주면서 택시기사에게 집에까지 잘좀 모셔다 주라고 부탁까지 했다. 나는 택시에 타고 가면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속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문을 열어달라고 하기도 전에  입에서 이미 시트로 총알같이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빠른지 소방차의 호스에서 화재현장에 뿜어대는 물줄기 같이 강렬했다. 택시기사가 안됐던지 약국앞에서 차를 세우고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는 약국에 가서 약까지 사와 건네 주었다. 고마운 택시기사. 그러나 청주까지 가면서 운전기사가 중간 중간에 내려 등을 두드려 주면서 가야 하는 고생을 했다. 집에 가니 주머니에 차비도 없었다. 낙담하는 운전기사의 일그러진 얼굴표정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결국 집에 들어가서 마누라가 택시비를 긴급 조달해줬다. 해프닝 시리즈는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직장생활에 6개월쯤 되었을때다. 고향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술을 진탕 마셨다. 얼마나 마셨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할정도다. 그런상태에서 탁자에 올라가서 친구와 씨름을 했다. 처음에는 팔씨름을 했는데 나중에 계속 장난기가 발동하여 테이블을 씨름판으로 알고 그위에 씨름을 한 것이다.

술집주인이 말렸지만 말린다고 알아들을 정도의  정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결국은 식당에서 나와 10차선이 넘는 대로를 무단 횡단하는 무모한 도전을 하고 말았다. 심야에  자동차들이 과속질주하는 죽음의 불구덩이로 뛰어들어가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도  친구들은 겁이 나서 발만 동동 굴러대야만 했다.

그러나 죽음의 사신은 나를 비켜갔다. 집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는데까지는 성공하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튿날 마누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친구가 나를 죽일 작정으로 술을 먹이지 않았으면 저렇게 까지 망가질수는 없다면서 애꿎은 친구들만 마누라한테 오해를 샀다.

해프닝이 어찌 이것뿐이랴. 드디어 서울 입성에서 벌어진다. 선배와의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회사 동기와  나는 선배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만 논쟁에서 선배가 얼토당토 않는 얘기로 감정에 불을 질러버렸다. 속이 상해서 술을 퍼마셨다. 꼭지가 돌았다. 그런데 사고는 이튿날 일어났다.

출근을 하려고 집에서 나왔다. 전철을 탔다. 정거장마다 멈추는 전철이 그렇게 무섭고 겁이 난적은 없었다. 전철이 멈출때마다 입에서 왈칵 왈칵 쏟아져 나왔다. 무려 쌍문역에서 동대문운동장까지를 그렇게 시달리면서 갔다. 문이 열리면 나가서 몸을 추스리고 또 타고     그러기를 반복했다. 결국은 쓰러졌다.

이튿날 선배가 들려주는 말이 걸작이다.  죽을려고 작정하고 퍼마시는 것 같아서 겁이 나서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연이어 터지는 실수가 나를 괴롭힌다. 술을 먹고 선배와 같이 전철을 탔다. 속이 안좋아서 중간에 내렸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다시 나와서 전철을 탔다.

선배와 둘이는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나 선배가 나를 바라보는 얼굴 표정이 이상했다. 전철이 멈추고 문이 열릴때 선배는 나의 손목을 끌고 출입문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좀 보고 오라고 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는 순간 먹은 술이 확깨는 동시에 얼굴에서 불이 났다.

수건이 없어서 손에 들고 있던 신문으로 얼굴을 씻었던 것이 잘못된 것이다. 신문의 잉크가 얼굴에 그냥 여기저기 칠해져서 시커먼 신문잉크가 얼굴에 골고루 묻은 것이다. 아무리 비누로 문질르고 닦아도 얼굴에 묻은 기름잉크는 닦이지를 않았다. 결국은 화장실에서 한시간이 넘게 씨름을 했다.

불과 한달도 안돼서 실수는 계속된다. 회사 동기와 술을 먹고 전철을 탔다. 밤이 깊어 전철은 거의 막차가 끊어질 시각이었다. 전철역 구내에 들어섰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둘이는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둘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바지춤을 붙잡고 얼굴이 불거지도록 아래에 힘을 주어 참았다. 속으로 똥줄타는 심정을 말로 표현못하고 서로 마주보는 눈길에 난감해 하는 얼굴표정이 코미디언 같아 보였다. 그러나 참는데는 한계가 있는법. 거의 동시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다음엔 ?

몇 년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둘이  술자리에서 만나면 그때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곤 한다.  술이야기는 끝이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술 때문에 생긴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군에서 휴가나왔다.  차에서 내려서 집에와서 마시려고 막소주를 대도한병짜리 샀다. 안주는 새우깡이었다.

거의 술에 중독된 이선배는 집에 오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병째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먼길을 오면서 마신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취한 김에 아주 취해보자고 작심하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셨다.  이른바 병채로 마신 병나발이었다. 소주가 대도 한병이면 이홉짜리 4병이 넘는 양이었다.  결국은 길거리에서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직장 선배 한분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하루 한날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신 대기록을 세워 후배들로부터 영원한 광화문의 전설로 남아있다.  육순을 눈앞에 둔 선배는 퇴직을 하신 지금도 그시절 그추억을 못잊어 먼길을 마다않고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회사근처 술집을 돌면서 후배들과 만나 인정이 철철 넘치는 술잔을 나눈다.

또 모선배 한분. 술을 좋하하는 이분은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이 있었다. 나중에 정년퇴직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2홉짜리 소주 한병과 담배 한갑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퇴직을 하신 뒤 정말로 그렇게  살고 계신지 궁금하다. 어디 술로 인해 빚어진 해프닝이 이것뿐이랴.

옛말도 잊지 않은가.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고. 가슴 아려오는 슬픈 이야기. 군대갔다 3학년에 복학해서 만난 친구와 반갑다고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며칠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겨울에 술을 마시고 취해서 저수지 둑방을 걷다가 그만 넘어져서 얼어죽었다는 것이다. 저수지 가장자리의 수심이 발목도 안되는 곳에서 앞으로 넘어져 얼굴이 물속으로 쳐박힌채 죽은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겨올이 오면 머리속에서 되살아난다.   

나와 같이 술을 마신 후배가 술집에서 나와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다가 택시에 치여 그 자리에서 즉사한  뼈아픈 기억을 어찌 잊을수가 있을까. 

목숨이 끊어진 후배의 유혈이 낭자한 몸을 부둥켜 안고  행여 살릴수가 있을까 싶어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을 향해가던 그 절박한 심정을 어찌 잊을수가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흘러도 머리속에 각인되어 나를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을 아직도 꿈속에서 느낀다. 


<인물뉴스닷컴/ 김명수 people365@korea.com>

수정일 2004년 01월27일 
 

인물뉴스닷컴 홈으로 바로가기    ☞ 클릭이사람 명단 1~345번 ☜ 

 

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인물뉴스닷컴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0-4707-4827 이메일 people365@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