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119) 마사회장 윤영호

[클릭이사람] (119) 마사회장 윤영호

이세상에서 가장 말이 많은 동네 경마공원. 그곳에 가면 언제나 말이 많다. 뛰는 말도 많지만 입으로 떠들어 대는 말도 많다. 그러다 보니 유언비어도 많고 탈도 많다. 말많은 동네를 관장하는 마사회는 그래서 늘 여론으로부터 주목의 대상이 된다. 감사원 지적이라도 나오면 '돈놓고 돈먹는 그동네, 방만한 경영을 하는 대표적 공기업, 원래 그런곳 아니야" 라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마사회는 정말 그런 곳일까? 신임 마사회장을 만나보았다. 윤영호(61).

너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다며 내년초로 인터뷰를 미루면 좋겠다는 비서실의 연락을 받고 기자 역시 그럴수는 없다며 몇차례 줄다리기 끝에 어렵게 윤회장과 마주 앉았다. 첫인상이 무뚝뚝하고 강렬해 보인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마사회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해왔지만 회장님은 문턱이 너무 높아서 접근하기가 힘들어요"

윤회장도 웃으면서 말을 받는다. "바뻐서 그렇지 문턱이 높아서 그런건 절대로 아니니까 오해는 말아 주십시오" 말속에 사투리가 뚝뚝 묻어난다.

"나라가 온통 개혁을 하고 있는데 마사회도 예외가 될수 없지요. 하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반대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개혁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자율적인 개혁을 해야지요"

회장이라고 목에 힘주고 지시만 하는 그런 개혁은 하지 않겠다며 말을 계속한다. "실무사원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기탄없이 요구 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요구가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들면 회장의 입장과 다른 점이 있다 하더라도 흔쾌히 인정해 주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무뚝뚝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말문이 열리자 속내까지 드러내 보일정도로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계속 이어진다.

"저는 임직원들에게 무조건 개혁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마사회의 주인인 사원 여러분들이 직접 개혁의 틀을 만들고 마사회에 맞는 옷을 입혀야 합니다"

속된 말로 물좋은 자리라는 마사회장. 그래서 정권이 바뀔때마다 그자리 주인공도 달라진다. 소위 낙하산인사. 윤회장도 예외는 아니다. 전임회장이 임기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자리이기에 신임회장으로서 부담이 크지 않겠나 싶어 조심스럽게 운을 떼어 보았다.

"임기안에 개혁을 완수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사원들과 합의를 도출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습니다"

현재 문화관광부 관할인 마사회가 농림부로 다시 환원되는 문제에 대해서 마사회장의 입장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마사회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사회의 주된 업무는 경마가 아닙니까?" 궁극적으로 경마산업이 발전되도록 가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경마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마를 고급레저스포츠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문광부 소속으로 가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에서 하는 말입니다. 앞으로 관광자원 레저 스포츠로 발전되려면 문광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사회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단지 사견일 뿐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외국에서는 자국의 실정에 따라 관할부처가 달라집니다"

윤회장의 인생드라마는 어떨까? 대가족이었던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7남매중 셋째. 위로도 아래로도 눌려서 샌드위치처럼 살았다. 자신이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런 혜택도 받을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자립정신이 그때부터 길러진다.

대학은 서울로 유학을 왔다. 연세대 법대 졸업후 ROTC 1기로 임관하여 월남에 갔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잊을수 없는 시절이 바로 이때였다고 털어놓는다.

"베트콩들이 우리 진지 깊숙히 들어왔고 사령부에 포탄이 떨어져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그때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급한 상황이 벌어지니까 하수구까지 번개같이 들어가 숨어버리더군요. 너무 좁아서 평소에는 도저히 들어갈수 없는 작디 작은 시궁창구멍에 말입니다"

몸뚱아리 전체는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데도 하수구에 머리만 처박고 있는 사람을 보고 죽을지도 모르는 돌발상황에서 인간의 지능지수가 뚝 떨어진다는 것도 함께 알았다.

"평소의 생각 같으면 반대로 몸뚱아리를 하수구 안으로 숨기고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눈만 밖으로 내다볼수 있도록 할텐데 말입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마당에서도 살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고개만 처박고 엉덩이는 밖으로 튀어나온 그런 모습들을 보니 한편으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구요"

월남파병때만 해도 온국민이 보릿고개를 겪던 궁핍한 시절이었다. 사투리가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그때 그시절 인생스토리를 털어놓는다.

"월남에 들어갈때 타고간 배는 6만톤짜리였어요. 미군들이 여객선을 용선해서 우리를 태워간 이 배는 바다에 떠있는 호텔 같았어요. 커피만 나오면 삽시간에 없어지더라구요. 아무리 많이 갔다놓아도 눈깜짝할새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 그런지 알았지요. 너나 없이 커피를 탄 종이컵에 설탕을 절반씩 채워서 마셨습니다"

커피가 귀한 시절에 있었던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그뿐 아니었다. 화장실에 화장지만 갔다놓으면 통째로 없어졌다. 월남에 가서 보니까 화장지를 몽땅 다블백에 집어 넣어가지고 왔던 것이다. 얼마나 못살던 시절이면 그랬을까…. 초급장교 시절에 겪었던 일화다.

그러다가 중령이 되면서부터 봉급으로 살수 있다고 느꼈다. 장군이 되었을때 가장 기뻤다.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별하나 달 때가 두개 달 때보다도 더욱 좋았다.

결혼을 빨리 했다. 중매반 연애반.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임관하면서 결혼하고 신혼생활때 월남에 갔다. 안동에 있는 형집에서 고등학교 다닐때 옆집에서 살던 지금의 아내(배화자·58)를 알게 된후 대학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만났다. 방학만 되면 안동에 내려가서 둘이 만났다. 윤회장은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린다.

"소령때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돌아다녔습니다. 저를 제외한 가족들은 서울에 살도록 해놓고 아이들 양육과 교육문제를 전적으로 집사람에게 맡겼지요. 아내에게 자식들 문제와 집안살림은 모두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입니다. 군인남편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면 아이들 교육이 마음에 걸려서요. 나하나 편하자고 식구들을 고생시킬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 모두 반듯하게 잘 자라 주었습니다. 집사람 덕이지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 간직하고 있습니다"

1남2녀 모두 결혼해서 잘살고 있다. 큰아들(경진·36·아이오와 주립대교수)과 둘째딸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전국을 떠돌수 밖에 없는 직업군인으로 지냈으면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점이 돋보인다.

ROTC 1기 동기중에 주례를 서면 그가 1번이었다. 군대 장성출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범가정이라는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례를 거의 맡지 않는다. 그를 보고 친구들이 "너는 왜 안되는 일이 없이 잘되는 일만 있느냐"라며 농담을 건넨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정치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쩔수 없이 타의에 의해 총선에 출마는 했지만 지금도 정치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제 성격 자체가 정치할 인물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뱃속에 들어있는 모든것을 다 드러내는 성격이라는 것을 제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의에 의해서 어쩌다가 출마 했지만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습니다. 집사람이 농담을 하더군요. 자식들이 문제없이 잘하니까 어른인 당신이 문제 일으키고 다닌다구요. 송충이가 솔잎을 먹는 것처럼 정치는 제게 어울리지 않는 옷입니다"

이쪽 저쪽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 양다리 인생이라는 의식을 받기 싫어서라도 그는 마사회 업무에만 전념할 각오가 되어있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 경상북도 지부장이라는 직함으로 볼때 다음 총선때가 되면 정당에서 그를 그냥 놔두지 않을듯 싶다.

윤회장은 자신을 촌놈이라고 설명한다. 고등학교때 기차를 처음 보았다니 알만하다. 아직도 촌티를 벗지 못해서 그런지 그의 얼굴색까지 유난히 검어보인다. 다시 마사회 문제로 돌아가 보자.

"기업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가지를 친다는 말은 사람을 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정비라고 생각합니다. 인력감축만은 최소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제 경영철학입니다. 구조조정으로 당장 손쉬운방법은 인력감축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력감축이야 말로 구조조정에서 가장 악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흑자나는 조직에서 인력감축 문제는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입니다"

그는 인력감축을 하는 구조조정이 가장 나쁜 방법이라고 몇번씩 강조한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취사선택을 해서 경영자가 잘 해야 구조조정에 성공할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윤회장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그런 개혁은 안하겠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서로 다른 의식을 가진 사원들이 상하위 직위를 가릴것 없이 서로 호흡을 맞추고 공감대를 형성해서 자율적으로 마사회에 맞는 개혁의 옷을 만들어 입는 그런 개혁을 하겠단다.

부정 경마라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도 그의 숙제. 그도 마사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마사회를 도박으로 보았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회장에 취임하여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경마 시스템 자체는 완벽합니다. 부정경마라는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습니다. 단지 말의 자원이 부족하니까 박진감 넘치는 경마를 못보여주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요"

그는 경마개선을 위해서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경마공원에 와서 즐겨보고 경마가 도박이 아니라 건전한 레저스포츠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온가족이 경마공원에 놀러와서 2만∼3만원으로 즐기는 경마가 되어야 한다. 따도 좋고 잃어도 좋은 그런 경마분위기를 만들고 싶어한다.

돈을 따러오는 경마장이 아니라 즐기러 오는 경마장을 만들고 싶다. 돈을 따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돈을 쓰는 것을 자랑하는 그런 경마장이 되어야 한다. 가족들과 함께 점심도시락을 싸가지고 놀러오는 그런 경마공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예정된 한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그는 정당한 비판은 얼마든지 달게 받겠다며 한가지 당부한다. 언론이 경마를 의혹의 대상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진실만을 보도해 주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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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0/12/27 10: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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