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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239) 아산에 가면 명물 시누크가 있다. 그리고 장정희가 있다.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02/11/10 [12:24]
[클릭이사람] (239) 아산에 가면 명물 시누크가 있다. 그리고 장정희가 있다.

시누크(Chinook)는 미 보잉사에서 만든 군용 수송헬기다. 우연히 하늘을 나는 시누크를 보고 그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을 매달려 그 꿈을 이룬 사나이가 있다. 시누크를 만든 사람은 바로 장정희(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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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플코리아
아산에 가면 거대한 시누크가 있다. 완전무장하고 50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실제 기종보다 2배나 더 크게 만든 CH47 모형 시누크. 지상에 사뿐히 내려앉아 작전명령을 기다리다 임무를 부여받고 금방이라도 하늘높이 날아오를 것 같은 모습이다.

바람부는 늦가을 오후. 수십미터의 프로펠러가 허공을 가르며 빙글빙글 저절로 돌아가는 시누크를 보는 순간‘이 남자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트랩을 밟고 그가 만든 시누크에 올라타 기내에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색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활주로에 내려앉은 모습의 시누크가 있는 곳은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 276번지로 아산온천단지에서 불과 5분거리다.

무려 400여명의 미 공군 엔지니어와 조종사들이 이곳을 다녀갈 정도로 그가 만든 시누크는 이제 미 공군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미 공군이 뽑은 2002년 최고의 시누크로 이 모형기종이 선정되어 그 기념으로 그는 미 공군부대 깃발을 기증받는 영광도 안았다.

이일을 하기 전에 그는 음악을 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온양에 내려와 연습실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연습실이 생긴지 1년쯤 지났을 때 부도가 나서 그 땅이 넘어가는 바람에 보증금만 겨우 찾았다. 연습실이 없어진 그는 제대로 된 작업실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누크가 앉아있는 이 땅은 형수님에게서 얻은 것이다. 무언가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을 얻고 나서 어떤 형태의 작업실을 만들까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위로 시누크 한대가 지나갔다. 바로 그 순간 그걸 만들고 싶었다. 5년전 우연히 하늘을 나는 시누크를 보고 그때부터 혼자 만들었다.

시누크와 전혀 상관없이 음악과 연주생활을 하며 살아온 그가 어떻게 시누크를 만들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공대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도면을 받아보았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그가 생각하는 시누크가 안나올 것 같아서 자신이 직접 윤곽을 잡아나갔다. 건축이나 설계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문방구에서 조립식 시누크 장난감을 구입하여 조립해보고 그 모형을 확대해서 하나하나 만들어나갔다.

연주생활 할 때 3년간 용접학원에 다니면서 용접을 배워둔 것이 도움이 됐다. 그때 배운 용접 기술과 타고난 손재주로 시누크를 만들었다.

▲     ©피플코리아
시누크의 내부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라이브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시누크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악, 합주생활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전체적인 기둥은 기본베이스로 깔고 다음에 악기로 살을 붙이듯 내부를 꾸며나갔다.

남들은 완공됐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바퀴하고 프로펠러 모터 달아주는 것은 아직 진행 중이다. 건물로 따지면 12M로 4층높이다. 실내 바닥면적만 60평. 실제 시누크가 28평이니까 그보다도 2배가 넘게 확대 제작했다. 이 기종의 시누크 탑승인원은 완전무장하고 50명 정도.

몇 년째 계속 작업을 해온 그는 최근에서야 시누크 문화공간을 열었다. 그는 현재 시누크의 지상권 의장등록을 신청해 놓은 상태.

그 엄청난 일을 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눈이 많이 왔을 때 눈을 치우려고 시누크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두 번이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다행이 바닥에 눈이 많이 쌓여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그동안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미 공군 시누크가 실제로 상공을 날다가 이곳을 보고는 엔진고장으로 시누크가 지상에 비상 착륙한줄 알고 직접 찾아와 눈으로 확인하고 어찌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해프닝도 종종 일어난다.

그렇게 찾아온 미군들이 또 다른 미국인들을 데리고 오는 식으로 지금까지 400여명의 미 공군 가족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시누크를 만들면서 마음고생도 컸다. 온천주변에 이런 명물이 생기면 아산 온천 쪽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해 줄 법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후원은커녕 툭하면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와서 당장 작업을 때려치우라는 협박을 받았다. 단지에서 벗어난 곳에 이런 카페가 생기면 주변에 비슷한 것들이 또 생긴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피플코리아
“처음에는 아산온천 측으로부터 땅을 3천~5천평 줄 테니까 그곳에 문화공간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제안을 거절하고 계속 강행하자 그때부터 못 짓게 하더군요. 혼자 만들기도 힘들었는데 집요하게 협박하는 바람에 정신적인 피해가 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부딪히면서도 그는 계속 강행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가 꿈꿔왔던 거대한 시누크를 그 혼자 힘으로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시누크 문화공간은 그렇게 탄생한 명물이다. 시누크 자체가 거대한 건물로 외관은 물론 내부도 실제 시누크 기내와 비슷하다.

시누크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버스가 끊어져서 밤늦게 온양 연습실까지 걸어 다니기 일쑤였다. 버스가 끊기는 줄도 모르고 일하다가 8Km나 되는 밤길을 혼자서 수없이 걸어 다녔다. 그때 생각을 많이 했다. 잠을 자면서도 시누크 꿈을 꿨고 그 꿈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멀리 있어도 가까이 다가와 현실로 이어졌다.

그는 여기서 돈을 벌겠다기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문화공간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싶을 뿐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곳에서 작업 하고 싶은 분은 며칠씩이라도 묵어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진짜 시골집을 몇 채 얻을 셈이다. 시골집같이 편안한 문화공간이 되기 위해서….

“영화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음악하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이곳을 왔다갔다하면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문화 전반적인 사람들과 서로 대화도 하고 의기투합도 하면서 새로운 문화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후배들과 그림도 하고 음악도 하고 스터디도 하고 같이 작업도 하면서 가능하면 자연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가고 싶다는 장정희씨. 그러다 보면 이런 문화시스템이 자연스럽게 확산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바로 이곳 아산이 고향. 음악에 빠져 서울에서 30대초까지 음악활동을 했다. 그룹사운드로 6년하고 오브리(룸이나 요정에서 독주)생활을 4년 했다.

처음 그의 포지션은 베이스였지만 오브리 생활을 하면서 기타로 바꾸었다. 그 생활을 4년 하다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기껏 연습해서 술 취한 사람들 비위나 맞춰주는 것이 싫어서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와 형님소유의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소를 키웠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곡을 쓰려고 하다보니 형님과 생각이 너무 달라서 1년 6개월만에 그만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라이브 카페를 운영했다. 89년부터 8년간 카페를 운영하면서 연극, 그림, 음악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지금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시누크 문화공간에 걸고 있다. 시누크를 만들면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오는 분마다 자기 집에 초대해서 따뜻한 된장찌개라도 끓여주려는 훈훈한 마음의 정을 보여주었다. 아산의 명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한번은 한국 공군 연대장이 온천을 왔다가 이곳에 찾아와 밖에서 30분이나 시누크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안에서 커피한잔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바로 자기가  미국에서 CH47 시누크를 최초로 한국으로 몰고 온 주인공이라면서 그래서 이곳에 애착이 많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료를 많이 제공해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 분이 대대장을 보냈고 그 밑으로 소대장 휘하 소속 공군들을 이곳으로 계속 소개했다.  그런 식으로 소개를 받은 한국 공군들이 이곳을 줄줄이 다녀갔다.

“그 뒤로 연대장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부대에서 저를 초대해서 실제로 시누크를 타보고 조종석, 부조종석, 프로펠러, 바퀴 등 전체적인 분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은 것이 시누크의 마무리에 대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미군들이 사진자료, 특히 비디오 자료 등을 많이 제공해준다. 미 공군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와줄 용의가 있다는 제의도 받았지만 그는 정중하게 사양하고 물질적인 도움대신 사진자료나 보내달라고 대답했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작곡을 한다는 그는 자신이 너무 힘들고 어렵게 음악을 배웠기에 후배들에게만큼은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 열심히 하는 식구들을 넓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 곳을 찾는 미군들은 시누크가 지상에 만들어진 것은 여기서 처음 봤다면서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 아내는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시누크를 만들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에서 그림 그리고 음악하고 연극하고 영화 쪽에서 일하는 식구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해주고 용기를 잃지 말라면서 격려해주고 있다. 그런 후원자들이 200여명 된다. 그런 분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막차타고 서울 가서 후원금 받아가지고 새벽 첫차로 내려와 작업하기를 1년간 반복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어려운 식구들이 조금씩 작은 주머니 털어서 도와주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기업하시는 분은 대량생산해보자고 돈으로 제의를 하지만 그런 것은 별로 마음이 와 닿지 않아서 거절해 왔다.

시누크의 조종실은 음악공간이자 영화공간. 앞으로는 영화제도 모여서 해보고 싶다. 자신보다는 영화인들이 더 그쪽으로 해보자고 권한다.

시누크 1층의 메인 조종석은 음악시스템을 갖추어 놓았고, 조종석 2층은 그룹사운드 공연도 할 수 있는 무대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주차장 빼고 전체 면적이 약 1300평정도. 그는 시누크 실내뿐만 아니라 밖에도 오디오 시설을 갖추고 야외무대도 50여평 꾸밀 생각이다.

밖에서 이색공연을 할 수 있게 실제로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시동소리가 멈추면서 공연이 시작되는 그런 이벤트가 가능한 살아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며나가고 있다.

시누크는 물론이고 내부시설, 심지어 의자 테이블까지 모두 그가 직접 만들었다. 필요한 자재는 하나하나 전문가와 상의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구입해왔고, 그런 식으로 지금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다.

창문은 물론이고 트랩도 타고 내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실제 시누크 트랩과 똑같이 꾸며져 있고 프로펠러도 바람에 진짜로 돌아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그는 모방보다는 어떤 분야건 창작, 없는 것을 만들어나가는 그 자체가 예술인 것 같다면서 환하게 웃는다.

목사님들도 이곳을 자주 드나든다. 지금까지 200명이 넘는 목사가 이곳을 다녀갔다. 앞으로 그는 교회 성가대 음악 레슨을 지도해 줄 것이다.

그의 주선으로 서울의대에서 지역 어르신을 위한 의료봉사활동도 1년에 한두번씩 해주고 있다. 서울에서 10년 이상 알고 지내온 의료봉사팀으로 그와 상의해서 필요한 지역에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난 7월에도 60여명이 이곳에 내려와 1주일간 지역의료봉사활동을 하고 갔다.

앞으로는 이곳 시누크를 본거지로 봉사활동 영역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봉사활동이 끝나면 뒤풀이로 이곳 팀이 음악공연도 하고 같이 섞어서 봉사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음악, 그림, 연극 등이 함께 어우러져 이쪽에서 해봐가지고 시스템이 좋으면 계속 늘여나갈 것이다.

“목사님들, 동네 어르신들, 의료봉사팀들 모두 뭉쳐서 해나가는 그런 시스템으로 가고 싶습니다. 조각하는 분들은 봉사활동 때 작품도 남겨주고, 음악하는 분은 뒤풀이 공연도 해주고, 의료봉사팀은 의료봉사하고, 그런 식으로 움직이고 싶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외국에서도 안하는 우리 고유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하나 잘사는 것보다는 더불어 사는 행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실감합니다.”

무슨 일이던지 유심히 관찰을 하고 한번 결정을 내리면 흔들리지 않고 땀 흘리며 열심히 하는 성격.

하늘은 나는 시누크를 보고 그것을 만들겠다는 그 꿈은 누가 보더라도 무모하고 부질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어놓았다. 그가 아니면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꿈을 꾸면서 노력하고 그 꿈이 하나하나 현실로 바뀌는 자체가 아름답다. 때로는 엉뚱한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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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02년 11월10일 11시59분


취재 그후: 취재한지 2년이 지난 2005년 02월 01일 현재 장정희 씨의 꿈과 인생이 녹아있는 아산 시누크 현장은 피플코리아에 기사가 나간 이후 너무 많이 상황이 달려졌다.



 

 

 

 

 

 
 
시누크 수송기를 꼭 빼닮은 건물을 보고 찾아온 미 공군을 비롯한 미군과 군속, 가족들이 1천여명에 이르고 보잉사 아시아지역  담당이사장 ‘티모시 니콜스’도 이곳을 다녀갔다.

그런가 하면 미군들이 주고간 시누크  관련 각종 자료들과 사진만도 5천여장으로 건물 내부 사방 벽에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어 마치 시누크 세계 사진전을 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누크의 명성만큼이나 주인공인 장정희씨 또한 갈수록 유명세를 타고 있다.

현재 그는 미공군 사령관이 주고간 기념 훈장겸 미공군부대 출입증을 내보이며 이것만 보여주면 언제라도 미공군부대를 무상출입할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서울의대팀 주축으로 봉사활동도 해마다 해오고 있다.

그리고 국군의날 에어쇼의 주인공들로 국내 최고의 탑건인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팀도  방문하여 국내 제 1호 탑건 조종사복을 기념으로 주고 가기도 했다. 

블랙이글스 팀을 비롯한 미 공군들은 시간되는 대로 돌아가면서 한두명씩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고 비행중에도 시누크건물 상공을 지날때는 고도를 자상위로 바짝  낮춰서 비행하는 호의를 보이고 또한 시누크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항상 연락하면 최대한 협조를 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고 한다.   

사진은 국내 최고의 에어쇼 조종사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팀. 이종찬대장(중령), 김치혁팀장(소령), 이길춘소령, 윤종천소령, 김태일소령, 손동수대위, 박상현대위, 박양주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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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2월01일10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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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1/10 [12:24]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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