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섭칼럼] 잊지 못할 6.25, 잊지 말아야 할 “필리피노”

김천섭 | 입력 : 2024/06/02 [07:37]

[김천섭칼럼] 잊지 못할 6.25, 잊지 말아야 할 필리피노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던 625(74주년)이 다가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UN16개국 우방국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수 많은 영웅들의 희생정신을 우리는 지금 너무 쉽게 잊지나 않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울러 명복을 빕니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끝난 현장에서 한 미군 장교가 수많은 사상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러자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필리핀의 기관총 사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Those are dead reds, sir.
(전부 중공군의 잔해입니다)"

이 전투는 바로 1951422, 필리핀 참전군과 중공군이 경기도 연천군 율동에서 격전을 벌였던 '율동 전투'였습니다.
필리핀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그늘이 드리웠던 6.25 전쟁 당시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먼저 우리나라를 도왔습니다.

필리핀은 6.25 전쟁 발발 이전, 과거 여러 강국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6년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필리핀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필리핀의 정치적 상황은 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이었지만, 민주주의 정신을 수호하기 위한 일념으로 약 7,500명이 6.25전쟁 참전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큰 전투인 율동 전투가 벌어졌습니다율동은 철원에서 서울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 3번 국도 인근으로 당시 재탈환한 서울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중공군은 중공 34단 전 병력을 동원해 핵심 지역인 율동을 향하여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율동을 사수하고 있었던 것은 필리핀 제10대대 전투단이었는데 벌 떼처럼 밀고 들어오는 4만 명의 중공군에게 맞서야  필리핀 군은 1,400여 명이 전부였습니다.

필리핀 군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행정병, 운전병, 취사병들도 전투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설상가상으로 필리핀 대대는 중공군의 포격으로 상위 지휘 본부와 통신까지도 두절되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퇴로 차단의 위기에서 방어전을 펼치던 중대장 '콘라도 디 얍' 대위는 대대장으로부터 즉각 철수할 것을 지시받았습니다하지만 그는 생존자를 구출하고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한 후 철수하겠다고 보고한 뒤 역습을 감행했습니다.
그렇게 과감하게 적진을 돌파하며 고지 탈환에 성공했지만얍 대위는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율동 전투에서 죽기 살기로 싸운 필리핀군은 12명 전사, 38명 부상, 6명 실종인 반면에중공군은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엄청난 대승을 거뒀습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이 땅의 자유를 지켜 주신 6.25 전쟁 참전 영웅들의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들은 늘 행복해진 순간마다 잊는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을 쉽게 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우리를 도와 준 UN 16개국 우방국의 영웅들에 대한 고맙고 감사의 마음을 절대 쉽게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 서대전여자고등학교 배움터지킴이 여준 김천섭 ]

 

 

 

            (서대전여자고등학교 여준 김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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