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709) ‘대한민국 명인’ 인증받은 서울 명동 미성양복점 대표 손병천

서울 역사박물관 기재 1호 양복점 … 3대째 명문 가업 계승

김명수기자 | 입력 : 2023/04/04 [23:13]

[클릭이사람] (709)  '대한민국 명인’ 인증받은 서울 명동 미성양복점 대표 손병천 

 

 

서울 역사박물관 기재 1호 양복점으로 3대째 명문 가업을 이어가는 양복 명인이 있다. ‘대한민국 명인’으로 인증받아 양복업계 최고 장인에 등극한 손병천 서울 명동 미성양복점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대한민국 명인인증패 수상한 손병천 미성양복점 대표.  ©

 

손병천 대표는 2023년 3월 9일 사단법인 도전한국인본부와 대한민국명품 명인인증위원회로부터 명인 인증서를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양복기술을 지키며 외길인생 수제 양복을 정성으로 바느질을 기워 맞춤 양복을 만든 것이 50년이 흘렀다.

 

손 대표는 부친 손의진씨가 해방 이후 1947년 서울 명동에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양복 기술을 배웠다. 부친의 양복 기술은 우리나라 패션의 대명사인 명동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 기재 1호 양복점으로 부친 손의진씨가 평생 들고다니던 검정색 양복전용 가방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되었다.

 

아버지의 기술은 아들에게 전수됐다. 부친은 항상 아들에게 ‘최고의 옷을 만들어라’, ‘바느질 하나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독려했다.

 

부친(손의진)에게 옆에서 배우며 물려받은 양복기술은 손병천 대표의 아들(손혁준)에게 계승됐다.

 

대한민국 패션의 1번지 서울 명동에서 손바느질의 맞춤 양복 명문 ‘미성’의 가업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지나온 세월이 너무 힘들어서 자녀에게만큼은 다른 일을 시키고자 했지만 전통과 가문의 명예를 이어가자는 가족들의 회의와 다짐으로 장인가문이 만들어졌다.

 

시련도 있었다. 1997년 IMF사태에 이어 최근 3년 지속된 코로나19로 결혼식이나 행사가 거의 없어 맞춤 양복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뜸했다. 극심한 경영난이었다.

 

가업을 접어야 하는 갈림길에서 손 대표는 돌아가신 부친을 생각하고, 주말이면 강원도 외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는 등 강한 정신력으로 가업을 유지했다.

 

 

▲  손병천 (왼쪽) 미성양복점 대표가  김명수 인물전문기자와 사진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맞춤은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숙련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며 여기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완벽한 옷이 만들어진다.

 

대한민국 양복 명인 손병천 대표의 말이다.  

 

손 대표는 “양복을 만든다는 표현보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장인 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맞춤 양복이 탄생한다”고 강조했다.

 

아들 혁준씨는 부친에게 6년을 배우고 독립하여 서울 강남에서 자신의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 대를 잇는 명문가업이 있다면 한국에는 패션 1번지 서울 명동에서  양복업계 명문 3대 가업을 계승해온  미성양복이 있다.

 

할아버지(손의진)에게 아버지(손병천)가 배웠던 양복 기술의 모든 노하우를 손주(손혁준)도 아버지에게 대물림받아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양복업계 명문 가업이 앞으로 4대, 5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23년 4월4일 23시13분.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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