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686) 리틀 타이거 정신으로 일군 강소기업 대륙양행, 대륙기술 이봉후 회장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11/28 [10:49]

[클릭이사람] (686) 리틀 타이거 정신으로 일군 강소기업 대륙양행, 대륙기술 이봉후 회장

 

대륙양행, 대륙기술() 이봉후 회장은 제조 강국 독일 노트(Knot)사와의 특별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회사를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127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대륙양행, 대륙기술() 이봉후 회장을 인터뷰했다.

 

()대륙양행은 이봉후 회장이 1979년 설립한 무역회사로 42년 동안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유럽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독일 SUCO, KNOTT와 이탈리아 SAFIM의 한국 독점판매권을 가진 회사다.

 

대륙기술()1979년 설립한 ()대륙양행으로부터 2005년 분사하여 신규 설립 이후 LED 전광판으로 시작하여 LED 조명, 산업용 공구, 장비, 일반 소비재와 헬스케어 분야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LED 전광판 분야에서의 꾸준한 연구개발을 토대로 2007LED 조명시장에 첫발을 내딛었으며, 각종 LED 실내용 조명, LED 보안등 및 가로등 모듈, LED 터널 등의 양산화에 성공했다.

 

다수의 신기술 특허를 보유한 벤처기업으로 신규사업 분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최상의 솔루션을 공급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 향상, 공정 개선, 원가 절감 달성에 혁신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봉후 회장은 오대양 6대주의 의미를 압축해서 회사 이름을 대륙으로 했다. 이봉후 회장은 독일 노트(Knot)사 회장으로부터 리틀타이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사연이 흥미롭다.

 

 

이봉후 회장은 1984년 한국에서 앞으로 중장비를 조립 생산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했다. 그래서 중장비에 들어가는 독일부품 회사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독일 노트(Knot)사에 방문의사를 밝히는 텔렉스를 전송했다. 몇 번을 보내도 응답이 없어서 19859월 비행기를 타고 독일 뮌헨으로 갔다.

 

독일 노트사 회사를 무작정 찾아가 수위에게 회장을 만나겠다고 하자 약속이 없으면 만날 수 없으니 돌아가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날이 마침 한국 추석이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음날 그렇게 며칠을 계속 찾아갔다. 독일인들이 지나가면서 초라한 동양인을 보고 낄낄 거리며 비아냥거리는 수모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경찰이 두 번이나 출동하는 해프닝을 참아가며 5일째 되는 날 회장이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자리를 함께 했다. 하지만 희망은 실망으로 변했다.

 

회장과 만나서 커피 한잔 마신 것이 전부였다. 회장은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억울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상상도 못했던 기적이 50일 후 일어났다. 노트에서 두 회사의 한국 총판 계약서가 이봉후 회장의 앞으로 도착했다.

 

 

당시 노트는 대우중공업, 삼성, 현대 해외 법인과 치열하게 물밑 계약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봉후 회장이 갑자기 나타나 난데없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회장은 직원들의 결사 반대를 물리치고 이봉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대륙양행은 대우, 삼성, 현대 중공업이 조립하는 제품에 들어가는 노트 부품을 독점공급했다. 결과적으로 이봉후 회장은 이들 회사에 부품을 공급함으로써 한국 중공업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일조한 셈이 되었다.

 

 

반전을 또 한번 일어났다. 1986년 연말 이봉후 회장은 독일 노트사 회장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항공권에 특급호텔 숙박권까지 제공받는 파격적인 VIP 자격으로 뮌헨에 갔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에 노트회장이 다가오면서리틀타이거를 큰소리로 연호했다. 뮌헨 회장의 두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면서 북받치는 그동안의 서러움이 폭발하여 두 사람이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노트사 회장은 미스터리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봤다면서 직원들이 무례했던 행동을 정중하게 사과했다.

 

 

노트사 회장은 당신 때문에 대한민국을 알았다, 당신같은 사람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앞으로 수출도 늘어나고 크게 발전할 것이라면서 당신이 승리자다, 당신이 이겼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봉후 회장은 온갖 수모를 받고 빈손으로 귀국했던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방문에서 황제 부럽지 않은 초특급 VIP 대접을 받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대륙 양행은 노트사와의 그런 인연으로 37년째 국내에서 독일노트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봉후 회장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굴곡이 많았지만 남들이 못하는 걸 많이 해봤다면서 대한민국을 잘 모르는 상대국가에 대한민국을 알게 해줬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봉후 회장은 오픈 마인드가 몸에 배어있다. 큰 돈 빌려주고, 사람 잃고, 욕먹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 그러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남들한테 욕은 먹지 말아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봉후 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봉후 회장은 코로나 이후 품목 다양화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도전이 어렵지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봉후 회장의 가치관이자 경영철학이다.

 

이봉후 회장은 월남 참전 국가 유공자다. 1971년 백마부대(9사단)일원으로 월남(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이에 대한 공로로 2011년 국가 유공자로 선정되었다.

 

2021년 11월28일 10시49분.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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