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깨는 사람들] (61) 정근모… 한국이 낳은 세계적 과학자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10/30 [13:05]

[기록깨는 사람들] (61) 정근모한국이 낳은 세계적 과학자

 

정근모 박사는 삶 자체가 대한민국 과학을 이끌어온 역사이며 산증인이다. 한국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설립하여 초대부원장을 맡았으며 두 차례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냈다.

 

 

한국표준형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고, 한국인 최초 미 항공우주국 NASA 연구원, IAEA (세계원자력기구)의장을 역임한 원자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한국 국적을 가진 과학자로서는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스웨덴왕립공학한림원, 미국국립한림원의 정식회원으로 선출됐다.

정근모 박사는 전국 최고의 수재들만 모인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수석 입학을 시작으로 줄곧 1등 인생을 살아왔다. 경기고 1학년 1학기 때 검정고시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 그해 서울대 문리대(물리학과)에 차석으로 합격하였다. 1등 인생을 달려온 그의 유일한 2등이다.

정근모 박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를 잃었다. 생전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책읽기와 글짓기를 강조했다. 글쓰기와 독서는 습관으로 굳어졌고 그만큼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대학 2학년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과외교사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동생들의 학비까지 대주는 가장 역할을 했다.

1959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대학원을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물리학을 공부했다. 미시간 주립대에서 23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24살에 플로리다 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 학생들보다 어린 천재 꼬마교수의 등장은 현지에서도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로 화젯거리였다.

1964~ 1966년까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핵융합 연구를 했다. 이후 MIT 연구교수를 거쳐 뉴욕공대 교수로 있던 중 국가의 부름을 받고 귀국,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에 참여했다. 197132세 젊은 나이에 KAIST 초대 부원장 겸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 표준형 원자로 탄생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과기처 장관 임기 중에는 우수연구센터를 만들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설립했다. 대전 대덕에 국가핵융합연구소를 만들었다.

우리 자체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인공위성을 우리의 발사체로 우주 궤도에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역사에 남을 화려한 업적을 남긴 정근모 박사는 정작 자신이 가장 잘한 일로 꾸준히 열정을 쏟아온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을 꼽았다. 장관 재직중이던 1992년부터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 연합회(HABITAT) 이사장을 맡아 무주택자를 위한 집을 지으며 봉사와 나눔의 삶을 살아왔다.

정근모 박사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한국 과학계의 밀알이 되라고 강조한 김법린 박사를 꼽았다. 실제로 정근모 박사가 평생 한 일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다. 과학과 음악을 좋아했던 선생님으로부터 음악을 배우고 과학실험을 놀이처럼 즐겁게 했다. 그런 것들이 정근모 박사에게 죽은 교육이 아니라 산교육이 되었고 오늘의 토대가 됐다.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인이다. 정 박사는 신장이 약한 아들을 위해 자신의 한쪽 신장을 아들에게 내줬다. 병약했던 아들은 기적처럼 일어나 15년을 더 살았다정 박사는 아들의 질병을 통해 신앙을 얻었다. 굳건한 믿음생활이 그를 더욱 강한 능력자로 만드는 요인이 됐다.

스승은 아이들이 스스로 인성을 기르게 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월반을 하고 1등 인생을 걸어온 과학 천재 정근모 박사의 교육관이다.

과학기술이 밥이다. 정근모 박사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한마디로 강조한 말이다. 정근모 박사는 과학기술 분야도 한류바람을 일으킬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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