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깨는 사람들](43) 김수환 추기경 (1922~ 2009)…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 베풀고 떠난 '작은 바보’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10/23 [15:49]

[기록깨는 사람들](43) 김수환 추기경 (1922~ 2009)생의 마지막까지 사랑 베풀고 떠난 '작은 바보

 

서로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라는 짧은 유언을 남기고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작은 바보라 칭했다. 살아서는 평생 사랑을 베풀었고, 마지막 가는 길에 각막까지 내준 사랑 바보’.

 

 

 

김수환은 가톨릭 최초의 한국인 추기경이자 제11대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냈다. 권위가 높은 추기경으로서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폭력사태에는 굳건히 맞섰다. 사회적 현안에 목소리를 냈으며, 민주화 운동, 빈민 구제에 앞장서는 등 천주교의 사회 참여를 이끌었다.

김수환은 일본 유학 시절 조선인인 자신을 차별하지 않은 독일인 은사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에게 감명 받아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해서 1951년 경상북도 안동시 목성동성당 주임신부를 시작으로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대구대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1956년 독일 뮌스터 대학 유학을 거쳐 사제 수품 15년 만인 1966년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에 임명되었다.

1968년 대주교로 승품, 서울대교구장이 되었다. 1년이 지난 1969년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에 오른다. 한국 최초이자 당시로는 전 세계 최연소로 추기경이 되었다.

1970~80년대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가들의 임시보호소이자 피신처였다. 명동성당은 종교시설이라는 특성상 경찰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중심에 김수환이 있었다.

경찰들이 성당에 들어와서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맨 앞에 있는 나 김수환과, 다음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짓밟고 가십시오

6.10 민주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들을 성당에 투입하겠다고 협박하던 정부 관계자에게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회고록에서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김수환 추기경이 19711225일 밤 예수성탄 대축일 자정 미사 강론 중 박정희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이 발언은 고스란히 방송을 탔고 박정희는 격노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독재정권 비판은 5공화국 체제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을 직접 찾아가 병력을 투입해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라고 부탁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9216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했다. "많이 사랑 받아서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마지막 가는 길에 기증한 각막은 2명의 환자에게 이식했고, 그 영향으로 각막과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하는 사람들이 폭증했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을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둘이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 자작시 시() 우산의 일부 내용이다.

혼돈의 시대에 작은 바보같은 통합의 지도가가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김명수/인물뉴스닷컴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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