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깨는 사람들](41)정약용 (1762~1836)… 600여권의 책을 저술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10/22 [10:49]

[기록깨는 사람들](41)정약용 (1762~1836)600여권의 책을 저술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개혁과 개방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유학자, 실학자, 개혁사상가였다.  

 

 

학자이면서도 거중기(擧重機)를 고안해내는 공학도의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의학서 마과회통’(麻科會通), 지리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외국어 관련서 아언각비’(雅言覺非)도 집필하는 등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다산은 단군 이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산이 쓴 책을 모두 합치면 600여 권에 이른다. 다산의 저서 대부분은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다. 정약용은 18년간 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다산이 저술한 책의 분량도 방대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다산의 안목이 얼마나 탁월한지 내용을 보면 더욱 놀랍다. 정약용은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 집필을 통해 사회 개혁의 방향을 깨우쳐줬다.

경세유표에서 6조의 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목민심서는 고을 수령(목민관)이 꼭 지켜야 할 바른 행정 지침서로 오늘날 공무원 행동강령과 비슷하다. ‘흠흠신서는 형법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특히 목민심서는 백성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고, 죽어서도 백성의 돈을 받지 말아야 하며, 청탁 금지, 약자 배려, 재해 대비 등 현대에도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들로 공무원들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다산은 단순히 제안으로 끝나지 않고 해법까지 내놓는다. 국가개혁과 관리의 기강확립을 위해 온몸을 부딪쳐 당대의 행정을 비판하고 현대의 필독서가 된 사상을 남긴 그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다산은 서양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으며 엄청난 독서광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즐겼다. 책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를 활용하여 연구하고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유배생활중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다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는 일화가 있다.

다산은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생애를 바쳤다.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한 다산의 공()과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그 대표적 사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이 있다. 수원 화성 축조에서 정약용이 발명한 거중기가 건축비의 절감과 건축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 시켜 1100 이상의 큰 몫을 했다.

다산은 시인으로도 거장이다. 개혁가, 사상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다. 백성을 쥐어짜고 부패가 극심했던 사회 실상을 시()를 써서 고발하기도 했다.

애절양’(哀絶陽)은 지주의 횡포와 환곡을 통한 고리대금이 판을 치고, 죽은 사람과 갓난아기까지 과세할 정도로 가혹한 현실을 꼬집는 다산의 사회비판시().

삼정의 문란이 극심하던 당시 빈곤과 착취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찢어지는 마음으로 시를 써내려갔을 다산을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정약용은 동양인 제1호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이다. 2012년 유네스코는 목민관으로 지속발전의 가치를 추구했으며 애민정신으로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평생을 바친 다산의 삶과 업적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기준 6가지를 모두 충족하여 정약용을 동양인 최초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했다.

정약용의 출생지인 경기도 남양주에 다산 유적지와 실학박물관, 다산 생태공원이 있다. 매년 열리는 다산문화제는 남양주의 대표축제로 자리 잡았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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