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인생 2막에서 더 잘나가는 액티브 시니어 신용선 박사

김명수기자 | 입력 : 2021/05/24 [08:38]

[인물탐험] 인생 2막에서 더 잘나가는 액티브 시니어 신용선 박사

 

1959년생 신용선 박사는 시니어가 되고부터 더 잘나가고 있다. 은퇴하고 뒷전으로 밀려날 나이에 현역시절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치 있고 보람찬 인생 2막을 살고 싶어하는 은퇴세대들의 대표 롤모델을 꼽으라면 단연 신용선 박사를 추천한다.

신용선 박사에게 2018년은 특별하고 의미 있는 반전의 해였다. 생애 첫 도전으로 60세에 책 두 권을 저술했다. 경영지도사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부지원사업으로 실시하는 글로벌강소기업 선정과 스타기업 육성사업의 기업선정 및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

2019년에는 더욱 승승장구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경영학 박사 취득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서비스회복과 고객용서, 회복만족, 고객신뢰 및 거래지속의도 간 영향 연구(귀인성향의 조절효과를 중심으로)’.

기업 등 서비스 제공자가 고객에게 서비스 제공에 실패한 경우 그 실패를 다시 만족으로 만회하여 고객과의 거래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회복과 거래지속의도에 관한 연구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논문을 완성하고 회갑을 맞은 날에 박사 에필로그(epilogue)를 쓰려니 고되었던 지난 시간들의 회상으로 만감(萬感)이 교차했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다.

그 뿐 아니다. 모교인 강원대학교 대학원 출강과 몽골대학원대학교 객원교수직까지 맡게 돼 국제 활동영역을 넓혔다.

그렇다고 신용선 박사가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 일색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다 스스로 회사를 차려 쓴맛 단맛 두루두루 경험했다.

듬직한 체구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몰린다. 유창한 영어실력에 더하여 글로벌 마인드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 넓은 인맥을 구축해오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에게는 고등학교 입학만 하고 등록금을 되찾아온 소년기 아픈 기억이 있다.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오고 50이 넘어 서울 집과 춘천을 오가며 대학원을 마쳤다.

그가 크게 실패했다가도 오뚝이처럼 디시 일어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환갑이 넘은 나이에 평생 못해본 대학 강단에 서고, 액티브 시니어로 잘나가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추진하였던 동력은 한마디로 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꿈을 포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꿈은 구름 같은 허상의 꿈이 아니라 죽을 만큼 힘들이고 노력하면 달성할 것이라는 꿈이었습니다. 한 순간도 꿈이 없었다면 큰 역경들을 넘어서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후배들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무서운 사람은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신용선 박사는 같은 세대인 시니어들이 처한 현실을 산()으로 비유했다. 시니어들은 3개의 산에서 내려와야 한다. 나이(年齡)의 산, 지위(地位)의 산, 은퇴(隱退)의 산이다.

이 나이에 내가 어떻게? 얼마 전 회사 임원이었는데은퇴하고 나니 할 게 없네3개의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면 아주 불행한 시니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로 입사하여 임원까지 해 본 경험을 밑천삼아 오랫동안 사업을 직접 하다가 60이 넘어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바쁘게 회사경영을 하며 만학(50대 후반)의 나이에 학업(석사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대학에서 강의를 해야겠다는 목표는 없었습니다. 가능성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중년이 지나면서 삶의 목표로 정한 2가지 중 하나가 60세 전까지 학위취득이었습니다.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해오다보니 제가 대학 강단에 서있더라고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니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말이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들린다.

마라톤을 시작할 때 42.195km를 뛰고 나면 내가 다음 뭘 하지(?)라고 생각하지 말도록 권합니다. 마라톤은 뛰는 것이 내 삶에 중요한 가치라고 한다면 그냥 뛰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완주한 이후에 변화는 출발선에서 짐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10대가 까마득한 미래인‘40, 50대 이후에 뭘 하지?’라며 청소년기를 산다면 그 10대의 삶은 허황될 가능성이 크다. 산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오르기 전에 정상에 선 기분을 상상하기 보다는 산을 오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상에 도착하면 그 정상에 오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신용선 박사는 사업을 하면서 처절한 실패도 경험했다. 그는 가장 친밀감을 보였던 사람으로부터 면전에서 배신행위를 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업자로부터 크게 배신을 당한 그 때 충격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한다.

지금도 사업 중에 만난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는 의식이 뇌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아무튼 그 모든 지난 일들을 덮어버리기 위해 나는 더 큰 꿈을 만들었고, 그 꿈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삶의 진로를 과감히 바꾸고 도전했습니다

신 박사는 과거로 돌아가 16세 때 기억을 회고했다. 당시 마을어른들이 그의 고향 집 담벼락을 시멘트로 바르고 시멘트가 굳기 전에 그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마음의 글을 벽면에 써보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꺾어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고 마음을 다지는 글을 쓴 후 글 아래 죽림(竹林)이란 자호(自號)를 새겼다. 그 글이 아직도 남아있다. 고향에 가면 늘 그 글을 대하고 젊은 날에 다졌던 초심으로 돌아간다.

저는 10대부터 이 옛말을 늘 제 삶의 중심에 놓으려고 노력했어요. 한시도 그냥 무위도식을 싫어합니다. 그래서인지 비생산적인 듯 보이는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지만) 화투, 바둑, 장기, 골프, 당구 이런 취미는 없고 또한 전혀 할 줄을 모릅니다

이미 시니어세대에 접어들었지만 10대에 세웠던 이 옛말을 마음에 새기고 시간을 한시도 낭비하지 않으며 살아야지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그의 강한 신념이 묻어있다.

지금은 경영컨설팅 그리고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늘 사회와 민족을 위하여 일을 할 것이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기회가 올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는 한동안 체육단체관련 사회활동도 했다. 권투인들 사이에 마당발로 통하고 사단법인 한국권투위원회 상임부회장과 경기도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까지 역임했다.

흔한 말로 성공하려면 한우물을 파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다르다.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기존 판을 떠나서 전력투구로 새로운 길을 뚫는다. 야심차게 시작한 숯 사업을 과감하게 접은 이유도 그런 이유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기존 판을 떠나서 전력투구로 새로운 길을 뚫는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는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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