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206) 북파공작원 출신 조철수 시니어

김명수기자 | 입력 : 2019/11/07 [15:10]

[오늘의 인물] (206) 북파공작원 출신 조철수 시니어

 

북파 공작원 복무 3. 명예회복까지 40년이 걸렸다. 1944년생 조철수 시니어가 그 주인공이다. 젊은 시절 그는 동두천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25살 청년 조철수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앙정보부 직원을 만났다. 이른바 '물색조' 요원이었다.

 

 

특수부대 들어가면 잘 먹고 제대할 때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에 자원하여 청량리에서 열차를 탔다. 강릉역에서 군용 트럭으로 갈아타고 깊은 산속에 도착했다. 강원도 속초 인근 지역이었다. 호의호식할 거라는 약속과 달리 꽁보리밥과 된장국이 식사의 전부였다.

인간병기가 되는 지옥훈련을 꼬박 3년 받았다. 살인 교육과 유격훈련이 중심이었다. 말이 특수군이지 중앙정보부가 관할하는 부대로 군번도 없었다. 혼자되었을 때 생존학, 침투, 폭파, 위장은 물론 북한 사투리를 익히는 교육까지 받았다. 훈련을 못견뎌 자살하는 동료도 있었다.

1972년 남북 7·4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국내외 정세가 화해무드로 바뀌면서 북파공작원의 임무도 끝나게 되었다.

우리는 정식 대한민국 국군으로 복무한 적이 없음에도 제대할 때 군번을 받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북파공작원들은 기밀 엄수 교육을 받았다. 민간인이 되고 나서도 정보부 요원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사회생활은커녕 청춘은 파멸되었다. 취직도 결혼도 물 건너갔다.

제대한지 20년이 넘어서 몇몇 동지들이 명예회복과 국가배상을 요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 서광이 비쳤다.

명예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2001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간절함을 호소했지만 쉽지 않았다. 청춘을 국가에 헌납한 보상은커녕 취직도 못하고 30년을 숨죽여 살아온 우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집단행동은 필수였다.

결국 특별법이 제정되고 비로소 명예회복을 하게 되었다. 1972년 이후 40년 만이었다. 세상을 떠난 동지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동지들이 걱정된다.

아아, 돌아올 수 없는 나의 청춘이여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9년 서울 중구청과 협력하여 지역 어르신 10명을 모시고 자서전 쓰기를 지원했다. 이 사업은 언론진흥재단 직원들의 사회공헌활동의 하나로 진행되었다. 위 내용은 서울시 중구에 거주하는 조철수 어르신의 자서전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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