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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늘에서 본 장흥…영암…드론사진가 마동욱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8/07/02 [23:56]

[인터뷰] 하늘에서 본 장흥하늘에서 본 영암드론사진가 마동욱


전라남도 장흥 토박이 마동욱(61)씨는 하늘에 드론(drone)을 띄워 사라져가는 고향 주변 마을과 산야를 앵글에 담아온 드론사진가다.

 

 
2018년 7월2일. 고향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보낸 세월이 자그마치 30년이다. 항공촬영이 현실화 되면서 4년 전부터 드론사진을 찍고 있다.


그가 하늘에서 본 장흥에 이어 인접 지역 영암군의 마을 구석구석을 촬영해 마동욱 사진집 하늘에서 본 영암’(글 우송희)을 펴내고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 남대문로 벤로갤러리(역불카메라 4)에서 지난 621일 개막한 사진전은 75일까지 열린다.


드론사진을 찍으면서 그의 사진을 보는 고향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사진 속에서 자기 마을, 살던 집, 추억, 부모님, 일가친척 등의 흔적을 찾고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가 마을속 모든 집과 전경이 나오도록 드론 사진을 찍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 <사진제공자 마동욱>     ©

 
그와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는 16년 전 서울에서 전남 장흥까지 내려가 수몰지역을 앵글에 담는 마을사진가로 15년째 활동하던 마동욱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 석쇠위에 석화를 올려놓고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2002년 당시 45세이던 그는 15년째 좋아하는 마을사진을 찍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홈페이지 이름은 ! 물에 잠긴 내 고향유치마을 닷컴(www.uchimaul.com). 탐진댐이 들어서는 바람에 수몰대상 마을이 된 장흥군 유치면 이름을 딴 홈페이지다.


그의 전직은 의외로 공무원. 1979년부터 서울 구치소 교도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어려서 못한 공부가 하고 싶어 1982년에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나왔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1986년 소방관시험에 응시, 합격하여 다시 공무원이 되었다. 서울 중부소방서 소방관으로 있으면서 홍보사진을 찍었다. 그때만 해도 마을사진이 아닌 화재현장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러다가 장흥에 내려가 고향사진을 찍고 싶어서 자원하여 1988년 광주 소방서로 발령받았다. 그때부터 주말이면 장흥에 달려가 고향마을 사진을 찍었다. 마을사진가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역마살을 타고 났는지 잘 다니던 소방관직을 1990년에 돌연 그만두고 사진에만 전념했다.


사진학원에 등록하여 사진이론을 본격적으로 배운 후 학원에서 사진 강사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충무로에서 프리랜서로 결혼사진과 상업사진을 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 장흥까지 다니면서 마을 사진을 계속 찍었다.


19924월 장흥군 농촌마을을 찍었던 419개 마을사진을 중심으로 첫 사진전을 장흥문화원에서 2주일간 열었다.


그리고 그해 7월에 경기도 부천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사진에 완전히 빠졌다.


1993년 서울 양천구에서 친구와 함께 대형 스튜디오를 개업하여 운영하다가 1996년초 고향 장흥에 내려왔다.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용흥리 고구마밭<사진제공자 마동욱>     ©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꾸준히 전시회를 열었다. 장흥군 마을사진을 시작으로 유치면에 탐진댐 이야기가 나오고 1996년 댐이 본격화되면서 그는 마을사진 전문가로 더욱 바빠졌다.


수몰지역 마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댐이 들어서면 사라져 없어질 마을사진 촬영하고, 댐 건설 반대하고 시위하는 현장도 빼놓지 않고 찍었다. 그러면서 댐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199710! 물에 잠길 내 고향사진집을 냈다.


댐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현장을 담고 싶어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환경에도 눈을 떴다.


기자가 그를 첫 인터뷰 하던 200212월 탐진댐 공정은 90% 정도였다. 당시 수몰 대상 19개 마을 주민 2400여명중 2000명 정도는 이미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고, 나머지 400명은 유치면 상류 비 수몰지역으로 갔다.
 

▲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1구 원서창<사진제공자 마동욱>     ©


200410월 댐이 완공되고 물이 채워지면서 마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사진으로 고향을 담아놨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199710월 서울에서 사진집 출판기념회와 전시회를 연 그는 다음달인 11월에 미국 시카고로 날아가 시골 농촌마을, 우리문화 전통사진 등 한국을 알리는 사진 45점을 가지고 1주일씩 5개 지역을 돌면서 한 달간 초청 전시회를 했다.


그때 교포들의 호응은 물론 현지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다.


그는 수몰되는 고향마을을 두고 사진을 놓을 수가 없었다. 탐진댐이 완공되기 전에 그가 찍은 사진 중에서 90%가 유치면과 댐 주변지역 사진이다. 헬기, 경비행기 등을 타고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서 항공사진도 여러번 찍었다.

 

 

 

그는 이제 몰라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흥군에서 명물이 되었다. 그의 고향은 정확히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중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쳤다. 방송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영어과로 진로를 바꿨지만 강진 성화대 만화사진과에 다시 들어가 어렵게 졸업했다.


탐진댐으로 수몰된 유치마을을 생각하면 그는 마음이 아프다. 우리의 잃어버린 꿈과 추억을 살리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장흥출신 마을사진가 마동욱씨를 중심으로 TV 문학관 제작도 했다. KBS에서 방영한 신 TV 문학관 나는 집으로 간다의 주인공이 바로 마동욱이다. 또한 탐진댐이 TV 다큐프로로 나갈 때마다 그가 다리 역할을 했다. 탐진댐 이야기만 나오면 그가 단골로 등장했다.


앞으로도 그는 마을사진 작업을 멈출 생각이 없다. 수몰마을을 떠나서 각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을 찾아내 사진을 찍을 계획이다.

 

 


목포에서 런던까지 철길 여행도 그의 버킷리스트 목록에 들어있다. 사라지는 우리 것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그리고 경의선이 복원돼야 된다는 바람에서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철도 도보 종단을 이미 2000년에 국내 최초로 마쳤다.


2001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페테르부르크까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한달간 여행중에 불의의 사고로 유럽까지 못가고 도중하차,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그가 여는 마을사진 전시회에는 고향사람들 뿐만 아니라 실향민들도 많이 온다. 두고 온 고향생각 난다면서 전시회가 끝날 때까지 날마다 울면서 사진을 들여다보는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고 털어놓는다.


200212월 그를 처음 인터뷰한지 16년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다. 당시 45세이던 그의 나이는 올해로 61세가 되었다.


이번 전시회를 포함하여 그동안 굵직한 전시회만 16번째 열었다. 항공촬영이 현실화 되면서 4년 전부터 하늘로 쏘아 올린 드론으로 사라지는 마을을 담았다.


4년간 찍은 항공사진을 추려 하늘에서 본 장흥고향의 사계등 두 권의 사진집을 2016년에 출간했다.


2018년 연말에는 하늘에서 본 강진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이어서 하늘에서 보는 보성등 인접 지역으로 항공 촬영 영역을 넓혀 드론사진 전시회를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고향 마을사진을 찍으면서 보낸 세월이 자그마치 30여년. 남은 인생도 그는 고향에서 드론사긴가로 살 작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라고들 하지만 그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이었다. 마을사진가로 활동하는 그야말로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일깨워주는 진정한 고향 지킴이였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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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02 [23:56]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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