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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야간 궁지기와 삼행시 경연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8/05/28 [12:16]

창경궁 야간 궁지기와 삼행시 경연 


자연과 역사가 함께하는 서울의 고궁 창경궁이 요즘 야간 특별개장 시즌을 맞아 야간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어둠이 살짝 내려앉아 은은한 조명과 어울어진 창경궁의 밤은 낮과는 또 다른 환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야간 관람의 하이라이트로 통명전 월대 앞에서 펼쳐지는 고궁음악회는 빈자리(야외 객석)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주인공이 있다면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대 뒤에서 묵묵히 그림자처럼 일하는 숨은 주역이 있다. 창경궁도 마찬가지다.
야간 개장한 고궁(古宮) 창경궁에는 노란 조끼의 근무복장에 번쩍거리는 불방망이(야광봉)를 오른손에 들고 매의 눈으로 서 있는 야간 궁지기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본부장(정기철)을 비롯한 두 명의 경비지도사들의 지휘하에 야간 관람객들을 안전하게 안내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시설물이 훼손되지 않도록 경비하는 단기 근로자들이다.

 


창경궁에서 근무하는 50여명의 궁지기들의 이력을 보니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전직이 언론인, 경찰 간부,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기업 CEO, 교장선생님 등 하나같이 화려하고 한 가닥 했던 사람들이다.
대원들의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끈끈한 연대의식으로 일한다는 자체가 보람이고 즐거운 창경궁 야간 궁지기들에게 때아닌 3행시 바람이 불어닥쳤다.
지난 522일 수요일 부처님 오신날 밤이었다. 창경궁 궁지기들이 출근하여 저마다 자신의 구역에서 근무하던 중 단체카톡에 본부장 발신으로 공지사항이 떴다.

 


궁지기들의 근무처인 창경궁의 머리글자를 딴 삼행시를 준비해서 단체카톡에 올리면 장원을 선발하여 본부장이 시상을 하고 한턱 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궁지기들의 정보와 친목을 공유하는 단체 카톡에 불이 났다. 춘당지, 명정전, 통명전, 너구리, 경춘전 등 단어를 동원하여 작성한 삼행시가 줄줄이 올라왔다.
천상천하 유아지존으로 왕명이 지엄하던 조선조 궁궐에서 과거 시험을 보던 사람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서 궁지기들이 머리를 쥐어짜내 삼행시 경연을 벌이고 있다.
궁지기 대원들의 뜨거운 호응에 본부장이 장원을 3명으로 늘리겠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삼행시는 계속 쏟아져 들어왔고 마침내 5월27일 일요일 저녁 출근하여 궁지기들이 모두 집합한 장소에서 심사위원장(김명수)이 창경궁 머리글자 삼행시 짓기 경시대회 결과를 발표했다.
현대판 궁지기 과거시험에서 장원의 영광을 차지한 수상자 3명의 명단과 삼행시는 아래와 같다. 이름은 가나다순이다.


창으로 무장한 포졸들은 옛 궁궐을 지키고 / 경광등에 야광조끼로 치장한 난 오늘의 궁궐을 지킨다 / 궁궐을 아끼는 마음이야 모두 한결 같으리! 세월이 변할지라도(이규복)


창경궁 야간개방 뉴스 보고 내사랑 님에게 만남 청하였네 / 경관과 풍류 어우러진 통명전에서 손잡고 좋은마음 주고 받았네 / 궁궐안 춘당지 벤치에 앉아 마주보며 서로 사랑 속삭였네(주성민)


창경궁의 늦봄 야경은 곱기도 한데/ 경연하는 임금 신하는 오간데 없고 / 궁궐안 노송만이 옛 영화를 말하는구려(최승주)
 
간단한 심사평과 함께 당선자들이 대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앞에 나와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이어서 본부장이 말했다.
창경궁 삼행시 경연에서 장원한 수상자 뒤풀이 모임을 갖기로 하고 본부장이 한턱 화끈하게 쏜다고 약속했다.
야간 개장한 창경궁에는 은은한 달과 별 그리고 조명이 어우러져 한결 아름다운 궁을 지키는 야간 궁지기가 있다. 5월 끝자락 무더위를 시원하게 식혀주는 솔바람이 있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삼행시 바람이 불고 있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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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8 [12:16]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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