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인터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터뷰] 꿈을 가꾸는 62세 소녀 할머니 박찬열…그리고 17년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8/03/24 [21:54]

[인터뷰] 꿈을 가꾸는 62세 소녀 할머니 박찬열그리고 17 


79세 박찬열 할머니를 처음 인터뷰한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당시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20013. 당시 62세 박찬열 할머니는 소녀의 감수성을 잃지 않고 시와 글을 쓰면서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활기찬 인생을 살았다.
 


▲ 2001년 62세때 박찬열 할머니. ©

여중시절에 쓴 일기와 글 그리고 수놓은 손수건과 앞치마를 소중히 간직하고 30년 전 입던 옷을 손바느질로 고쳐서 입고 다녔다.
강남 구민회관에서 기자를 만나던 날도 빨간색 코트를 입고 나왔다. 결혼하기 전에 입던 더블 코트를 고쳐서 입고 나온 것이다. 30년도 더 지난 옷이지만 현대 감각에 맞게 뜯어 고쳐 입으니 새 옷 못지않게 깨끗하고 디자인이 깔끔했다.
대학 1학년 때 연합서클에서 지금의 남편(조석영)을 만나 10년 열애 끝에 결혼하기까지의 사연이 감동적이다. 남편은 그를 만나던 첫날부터 줄곧 일기를 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면서 그동안 써온 일기를 그에게 몽땅 건네주었다. 결혼하고 할머니가 된 지금도 그때의 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잉크로 꼭꼭 눌러쓴 편지와 일기장은 수십년 세월에 누렇게 변했지만 젊은 청춘의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담은 깨알같은 펜글씨는 아직도 선명하고 뚜렷하다.
성우를 꿈꾸던 시절. MBC 아나운서로 있던 동갑내기 남편이 그에게 성우를 하던가 아니면 결혼을 하던가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고민 끝에 성우의 꿈을 접고 29살에 남편을 택했다. MBC에서 32년을 근무한 남편은 99년 정년퇴직했다.
두 아들 모두 결혼해서 따로 살고 손녀를 둔 할머니지만 열정은 아직도 젊은 엄마다.
사진촬영, 비디오촬영, 노래교실, 옷만들기 등 꾸준히 자기 개발을 해오고 있다. 2001215일에도 강남구민회관 대강당에서 '닐 사이먼의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연극을 했다. 그는 건강하고 힘찬 38세 어머니 케이트 역을 맡아 열연했다.
박찬열. 이름이 특이하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중국 열하성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중국에서 큰 광산을 운영했다. 이름의 끝자는 그가 태어난 열하성의 첫 자를 땄다.
못 이룬 성우의 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다 키우고 56세가 되었을 때 성우학원을 찾아갔다. 성우는 연령제한이 없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성우학원 8. 그가 최고령이었음은 물론이다.
20대 성우지망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때 자신감을 얻었다.
유인촌씨가 연극교실을 열어 무료교양강좌를 하는 것을 알고 들어가 연극이론과 실기를 공부했다. 연극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 남편과 함께 포즈를 취한 79세 박찬열 할머니의 최근 모습. ©



부부가 함께 양재동 성당에서 성가대로 있다. '예미루 성가대'. 함께 살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이들 부부가 그렇다. 지금도 시간을 내어 공연, 뮤지컬, 영화등을 같이 보러 다닌다.
유인촌 연극교실을 통해서 만난 주부들이 '강남 모자이크 주부극단'이라는 연극모임을 만들어 1년에 3차례 정기공연을 해왔다. 공연을 할 때마다 남편이 비디오, 스냅사진을 촬영했다.
에피소드도 많다. 한번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녀가 할머니 옷을 입고 나간 것이다.
"오래된 옷을 잘 보관해서 입다 보니까 결혼 전에 할미가 입던 옷을 손녀가 입고 나갔어요. 유행이 지난 옷을 며느리가 물려입고 손녀까지 입겠다고 우기는 것을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결혼 전에 입던 옷과 구두, 신발까지 버리지 않고 아직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옷이 몸에 안 맞으면 몇 번이고 뜯어 고쳐서 입는다.
중학교 음악책과 일기장도 간직하고 있다. 중학교 졸업식에서 3년 개근상의 부상으로 받은 놋그릇도 신주단지 모시듯 보관하고 있다.
늦게 배운 연극은 그에게 엔돌핀이고 활력소다. 991월 강남 구민회관에서 공연한 환타스틱스 뮤지컬 '철부지'에서는 엘가로역을 맡았다. 극중에 참여도 하고 해설에 노래까지 하는 남자역을 할머니인 그가 훌륭하게 해냈다.
극중에서 입은 턱시도는 마침 그가 간직하고 있던 옷이었다. 해방전 광산업을 하던 아버지가 모임 때 입던 턱시도를 물려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그 옷을 입고나와 공연을 했다.
모자이크 주부극단 회장을 하다가 한발 물러나 맏언니로 활동했다. 할머니보다는 젊은 주부들로부터 모두가 기대고 싶어하는 왕언니로 불리기를 더 좋아했다.
연극을 하면서 비록 극중이지만 서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전업주부들이 모여 연극을 통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한 작품을 열심히 하고 나면 성취감을 느낀다. 세월을 잊고 사는 신데렐라 할머니. 뭔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꼭 하게 되더라며 활짝 웃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박찬열 할머니는 날마다 꿈을 가꾸면서 그렇게 세상을 젊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17년 세월이 흘렀다. 2001362세이던 박찬열 여사는 2018379세 왕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에서는 부부가 함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찬열 할머니는 뮤지컬 러브’(윤호진 연출)에도 출연했다.
10년 넘게 주부 단원들이 기대고 싶어하는 왕언니로 공연의 즐거움을 안겨줬던 강남모자이크극단은 나의라임오렌지나무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2005년 영국에서 초연한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지구촌 순회공연을 계속해오고 있는 꿈의 뮤지컬 빌리 엘리에트(Billy Elliot)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로 사랑받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의 서울 초연(2010) 당시 주인공 빌리의 할머니 역을 뽑는 바늘구멍 오디션에 그가 최종 합격 선발되는 영광도 안았다.
공교롭게도 빌리 엘리어트324일 현재 서울에서 공연중이다. 박찬열 할머니와 함께 다음 주말에 빌리 공연도 보고 점심도 먹으며 나이를 초월한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79세 박찬열 할머니는 지금도 그렇게 소녀의 꿈을 가꿔 나가고 있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 이기사는 챌린지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8/03/24 [21:54]  최종편집: ⓒ 인물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