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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607) 국립현충원 비석을 1년간 닦고 매주 참배하며 희망을 건진 강성관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6/06/22 [10:41]

[클릭이사람] (607) 국립현충원 비석을 1년간 닦고 매주 참배하며 희망을 건진 강성관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아주 특별한 기인을 만났다. 서울 국립 현충원을 매주 월요일마다 참배하는 강성관(44)씨다. 
 

  
죽은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에서 희망을 건져 올린 그를 처음 보는 순간 나라를 구하는 일(호국)과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자청해서 하고 있으니 문뜩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매주 월요일 아침 9시에 국립현충원을 찾아가 참배를 한다. 아무런 연고도 없으면서 매주 찾아가 영령들을 위로하고 ‘문안인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이 강하게 끌렸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귀한 삶을 희생하고 국가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분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시는 겨레의 성역 국립묘지다.


1년은 매일 물걸레로 묘비를 닦았다. 한국전쟁 전사자와 국가유공자들이 많이 묻혀있는 34구역을 중심으로 비석을 닦고 잡초도 많이 뽑았다.


본업은 따로 있다. 이화여대 근처에 안경테와 패션안경 선글라스 매장이 있다. 건국대학교 근처에는 안경테와 패션안경과 액세서리를 파는 ‘로드 숍’이 있다.


이화여대 매장은 직원이 있고 건대 로드 숍은 후배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 해오고 있는 일이다.


평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강성관씨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절한 실패도 경험했다.  

 

취업이 안 돼 고민하고 있을 때 쉽게 돈을 벌수 있는 길이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첫 발을 잘 못 디뎌 결국 몇 군데 전전하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어느새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을 떠나 지방의 막노동판에서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아 4년 만에 빚을 모두 갚았다.


눈앞이 캄캄한 절망의 상황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준 유일한 희망은 책이었다. 그가 읽고 감동을 받은 책은 직접 구입해서 주위 사람에게 선물했다.


특히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 찬 기쁨세상 이상헌 PD의 책을 읽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희망 콘서트,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 하루 5분 인생 수업 등은 그가 탐독한 이상헌 멘토의 책들이다.


기쁨세상 회원인 강성관씨는 비석을 닦고 참배하면서 결혼할 여자 친구도 생겼다. 매일 지극 정성으로 현충원을 참배하는 그의 선행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매일 같이 현충원 34구역 중심으로 1236위 비석을 1년간 봉사를 했다. 매일 현충원을 오르내리면서 비석을 닦고 잡초를 뽑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로 운동도 됐다. 애국도 하고 건강관리도 하는 1석2조다.


그가 참배하는 국립 현충원 34구역은 그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멘토 두 분과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두 명 있다.


책을 150여권 집필한 베스트셀러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 저자인 이상헌 기쁨세상 PD와 고 이상헌 상병. 그리고 또 한 분의 멘토인 세계적 전뇌학습원장 김용진 박사와 고 김용진 하사.


묘비를 닦다 보니까 두 분의 멘토와 동명이인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눈에 띄어서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더하여 그와 똑같은 이름의‘성관’묘비도 3명이 있다. 그래서 운명의 자석에 이끌리듯 34구역을 닦게 되었다.


“저는 그 분들을 위로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제가 더 잘 풀렸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정성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저금통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적립이 된다는 교훈을 새삼 체득했다.

 

 

“아무리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할지라도 현충원에 가면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위로 받고 오죠. 갔다 오고 나면 마음이 더 평온해져요”


서울로 이사 오기 이전에는 경기도 파주 적성에서 20년을 살았다. 지금도 파주에는 어머니가 있다.


그가 살던 파주 적성에는 답곡리라는 지역이 있다. 거기에는 북한군과 중공군 묘가 있다. 그곳에 갈 때마다 그는 빼놓지 않고 참배를 한다.


살아서는 이념이 다를지라도 세상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다 똑같은 영혼으로 생각한다. 그가 음료수라도 사가지고 가서 영령들을 위로하고 참배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게 된 계기도 드라마틱하다. 서울 신림동에서 생활할 때 대학로에 직장이 있었다.


신림동에서 대학로까지 출퇴근길에 현충원을 지나갈 때마다 여건이 되면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영령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빚을 다 갚고 나서 그는 멘토를 찾아가 길을 물었다. 이상헌 선생은 10년을 허송세월한 그에게 의외의 조언을 했다


“고생한 10년은 수련기간이다. 마무리로 현충원 1년 봉사를 해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의 명복을 빌어줘라. 공짜는 없다. 정성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선행은 선행대로 악행은 악행대로 저금통장처럼 쌓여 고스란히 자신에게 몇 배로 돌아온다”


이상헌 멘토의 말을 가슴에 새긴 강성관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현충원과 가까운 흑석동으로 이사를 왔다. 현충원에 가서 매일 비석을 닦는 일을 그때부터 시작했다.


새벽마다 물통과 걸레를 들고 현충원으로 달려가 비석을 닦으며 나라와 민족을 지킨 호국영령을 위로했다.


사업아이템으로 꿈꿔왔던 안경점도 차렸다. 매일 비석을 닦는 그의 특별한 의식은 꼬박 1년이나 지속되었다. 그 이후로는 매주 월요일마다 현충원 묘역을 찾아가 참배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작년 1월부터는 고은희 방송작가도 현충원 참배에 합류했다.


낮에는 생업으로 선글라스와 안경테 가게를 운영하면서 짬을 내어 마술도 배우고 있다. 그동안 익힌 마술로 안경 가게와 기쁨세상 모임에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있다.


강성관씨와의 인터뷰는 장소를 3번씩이나 바꿔가면서 이뤄졌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염창동 우미정 식당으로 옮겨 간장게장 식사후 고은희 방송작가 집으로 이동하여 다른 행성에서 지구별로 날아든 운석을 ‘즐감’하고 두 손으로 만져보는 행운도 누렸다.


호국 보훈의달 6월에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이승과 저승을 하나의 끈으로 이어주고 외계인과 소통하는 우주인의 기운이 느껴졌다.


매주 월요일마다 호국 영령들을 참배하고 위로하는 그의 정성이 하늘을 움직였는지 그는 하는 일도 잘 풀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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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naver.com>

2016년 06월 22일 10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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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22 [10:41]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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