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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99) 죽은 자와의 대화 …‘사거리 신호수로’ 살다 구름이 된 친구 소운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6/02/20 [19:46]

 [클릭이사람] (599) 죽은 자와의 대화 사거리 신호수로살다 구름이 된  친구 소운

 

내 친구 소운은 사거리 신호수로 일했다. 그가 머물렀던 사거리는 갈등, 대립, 오만, 편견, 희로애락까지 다양한 삶의 형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벌써 5년이 흘렀다. 소운이 201143일 하늘나라로 갔다.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왜 그리 먹먹한지 명치끝이 아리고 허망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비보를 듣기 며칠 전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너무 기운이 없어서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아니야라면서 친구는 되레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되물었다.

 

힘내고 건강관리 잘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소운은 각박한 인간관계, 혼돈스러운 세상이 절망스럽게 느껴지는 세태를 희망으로 밝히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 그가 생전에 기자에게 보낸 글을 읽으면서 친구를 떠올려 본다.

 

소운은 어느날 갑자기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충청도 시골 마을로 귀촌을 했다. 한적한 농촌에 들어가 휴경지를 갈아 텃밭을 일구며 한해를 보냈다. 농촌의 수확기가 끝나갈 무렵 소운의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별 계획 없으면 나한테 내려오지

 

무슨 일인데요?”

 

토목공사 현장인데 별로 어렵지 않아

 

현장체험이라 여기고 동절기를 보낼 심산으로 무작정 지인이 있는 공사현장으로 달려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현장에서 소개받은 일은 이름도 생소한 관로공(管路工)이었다.

 

하수관이나 오수관을 묻는 일이었다. 적응을 해나갈 즈음 뜻하지 않게 팀이 현장을 철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외지에 내려와 숙소까지 잡아놓은 상황에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받은 제안이 사거리 신호수였다. 다리와 허리쯤이야 아프겠지만 어차피 그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에 권유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신호봉을 잡았다.

 

인생은 사거리다. 세상 역시 사거리다. 그곳에 절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 막히면 절망이고 뚫리면 희망이다.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면서 내가 성장하고 세상이 변한다.

 

사거리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소통의 지혜가 사거리에 숨어있다. 갈등과 대립은 경쟁과 욕심에서 비롯된다.

 

때로 경쟁과 욕심은 개인과 세상을 발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러니 갈등과 대립이 무조건 부정적일 수는 없다. 문제는 지나친 우월의식이 따른 이기주의와 배타주의다.

 

사거리는 경쟁과 욕심을 조절하고 자제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을 순화시키고 조화시킨다. 물론 공정한 신호수가 있을 때 가능하다.

 

▲ 소운이 귀촌하여 시골 생활하면서 직접 담갔다는 산삼주. 소운이 세상을 떠나기 4개월전 이메일로 보내온 사진이다.     © 인물뉴스닷컴

내 인생의 사거리에서는 스스로가 신호수지만 세상의 사거리에는 공유하는 구성원들이 필요에 의해 선택받은 자가 신호봉을 손에 쥔다.

 

세상의 사거리 신호수는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안전하고 평화롭게 유지되고 막힘없는 소통이 가능해진다.

 

()의 대소(大小), 직업의 귀천, 권력의 유무, 연고(緣故)의 피아(彼我)에 따라 지위를 정한 채, 계급화 혹은 서열화 기준에 따라 사거리가 운영된다면 소통은 없다.

 

인간관계의 소통은 사랑이다. 가족, 친구, 이웃의 소통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의 소통은 이해하고 협력하고 배려함으로써 가능하다.

 

갈등은 하되 반목하지 말라. 대립은 하되 등을 돌리지는 말라. 경쟁은 하되 짓밟지는 말라. 욕심은 갖되 넘치지는 말라. 이것이 소통이다.

작고 초라한 충청도 시골 마을에 자취방을 얻었다. 허름하지만 씻고 잠을 자는 용도로만 사용하니 혼자 지내기에는 비교적 넉넉한 공간이다.

 

새벽 540. 종종걸음으로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습관처럼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를 중얼거렸다.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토목공사현장. 한때 산과 강이 어우러진 배산임수형의 비옥한 농지였지만 흙과 돌무더기가 층층이 쌓여가는 황량한 공사현장으로 변해버렸다. 마을을 통과하는 좁은 도로에는 하루 종일 공단과 택지조성 공사차량으로 북적거린다.

 

공사현장 사거리 신호수 임무는 간단하다. 공사차량들로 인해 발생하는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하지만 원론적 이야기와 현장은 차이가 크다. 신호수로 배치 받으면서 작업반장에게 물었다.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간단해. 보낼 차 보내고 세울 차 세우면 돼

 

그게 다였다. 황당하지만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해왔다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토목공사 현장. 아무런 권리도 없는 신호수이지만 강요당하는 책임과 의무는 많다.

 

누구나 우여곡절이 있다지만 소운은 롤러코스터처럼 유독 심했다. 1993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는 자신마저 건강이 안 좋아 몸 담아온 국회비서관직을 그만뒀다.

 

하필 그 무렵 5살짜리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다. 급성임파구성 백혈병이었다. 경제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가장으로서의 무력감이 그를 짓눌렀다.

 

가난에 찌들려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 정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지만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운동을 포함한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다가 부정부패추방시민운동연합 상임 이사 등 다양한 NGO 활동을 해왔다. 한반도평화통일 연구원 대표로도 열심히 뛰었다.

 

어린 아들의 병마는 돈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해온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최악의 현실에 빠질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아들의 완쾌를 간절히 소망한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병원에서도 3년 생존율 90%라고 판정할 정도로 절망적이었으나 재발방지요법을 포함하여 투병생활을 해온 끝에 완치가 되었고 이제는 안심해도 좋다는 병원 측 소견을 받았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걸어서 국토를 종단하는 일이었다.

 

부자는 엄동설한에 눈바람을 맞으며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9시간씩 꼬박 걸었다. 나라가 온통 월드컵 분위기로 들뜬 2002년 새해 첫날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해 20일 만에 560km를 걸어 임진각에 도착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전국의 수많은 소아암 환우들이 낫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땅끝마을 해남 토말에서 임진각까지 한겨울 혹한 국토 대장정을 감행했다.

 

당시 기자는 이들 부자의 국토 종단 대장정 소식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한겨울 추위를 훈훈하게 녹여준 이들 부자의 2002년 새해 도보 국토종단 대장정은 인터넷 현장통화를 통해 출발에서 마칠 때까지의 전 과정을 생생하고 빠르게 중계해 화제를 모았다.

 

아버지는 국토종단을 한 지 1년만에 전남 해남에 내려가 땅끝마을 토말비옆에 다시 섰다. 기자와 동행한 소운은 1년전 눈보라가 휘날리는 혹한 속에 아들과 함께 대장정을 강행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출발지였던 토말비 옆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소운은 아들과 함께한 국토종단 체험과 아들의 투병기를 책으로 엮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는 국토를 종단하면서 길고도 힘들었던 순간마다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두들겨 주면서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혈연 지연 학연 아무런 인연도 없는 소운을 기자는 40대 초반에 취재원으로 만나 절친한 친구로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다.

 

가족과 함께 강원도 영월 동강 래프팅을 하기도 했고 제주도, 전라남도 해남, 강진, 장흥, 광주, 강원 등 취재길에 소운은 자청해서 직접 차를 몰아 길안내를 해줬다.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법개선원에 찾아가 기자가 취재한 남산스님(일명 파스스님)을 만나 일박을 하고 백두산 산삼주 1병씩 선물로 받아오기도 했다.

 

기자는 아침 일찍 용산역을 출발하여 저녁 늦게 파주 봉일천 도착까지 그의 국토종단 하루코스를 함께 걸으면서 동행취재를 하기도 했다.

 

그가 감기 몸살로 끙끙 앓아 누워있을 때 기자는 아내에게 미음을 써달라고 해서 보온병에 담아가지고 달려가 건네주었다.

 

기자가 건네준 미음을 맛있게 먹고 몸살이 나았다면서 해맑게 웃음 짓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 친구 소운이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인 20101217일 그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영민이네. 날이 무지 추워졌다. 감기걸리지 않게 단디 챙겨입고 다녀. 사진 보낼게. 사진은 태안기름유출사건때 봉사가서 찍은겨. 3년전거니깐 꽤 젊어보일거구. 잘 되면 한턱 크게 쏜다. From 소운.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메일 속에 자신보다도 친구 건강을 챙기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 묻어난다. 그런 친구가 세상을 등지고 우리 곁을 떠났다.

 

온갖 편견과 불통으로 꽉 막힌 세상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내 친구 소운. 이승에서 공사판 사거리 신호수로 일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살아있으면 올해 환갑을 맞을 내 친구 소운 생각이 오늘 따라 더욱 간절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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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6년 02월 20일 19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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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20 [19:46]  최종편집: ⓒ 인물뉴스
 
봉봉 16/03/29 [09:20] 수정 삭제  
  소운 이영민 선배님 새삼 생각나게 되네요~! 같이 낚시 다니면서,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얘기 하며 지내던 생각이 납니다.. 아마도 작은 구름이 되어 온세상을 여행하고 계실것이라 생각됩니다..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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