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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95) 67년째 치과 진료 해오고 있는 최고령 치과원장 90세 유양석 박사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6/01/04 [19:45]

[클릭이사람] (595) 67년째 치과 진료 해오고 있는 최고령 치과원장 90세 유양석 박사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유양석 원장. 그 흔한 간판도 없다. 그런데도 환자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예약이 아니면 진료를 받을 수가 없다

 

 

1927년생으로 2016년 새해를 맞아 한국 나이 90줄에 들어섰다. 현재 치과의사 면허가 3만번을 넘어섰다.

 

3만명이 넘는 치과의사 가운데 유양석 원장은 1949년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초창기 면허인 38호를 취득했다. 군의관 17(1952~1968)을 포함하여 2016년 현재 67년째 치과 진료를 해오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부상자가 속출한다는 소식에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19537월 전쟁이 끝나고 휴전 후 우연한 기회에 한국 치과 군의관 최초로 미국에 단기 유학을 갔다. 당시 장교가 미국에 다녀오려면 의무복무 기한을 5년 연장해야 했다.

 

1954년 미육군군의학교에서 3개월 치과교육을 받은 이후로도 훠트오드(Fort Ord)육군병원(1955)과 월타리드(Walter Reed)육군병원(1960)에서 구강외과와 치과고등교육반을 이수했다.

  

미국의 선진치과 의료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6개월 이내 단기 유학을 세 번 다녀오는 대신 군 생활이 17년으로 늘어났으니 학구열도 대단하지만 배짱 또한 두둑하다.

 

1966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67년 치과기재학회를 창립해 3~5대 회장을 역임했고 같은 해 창립한 구강보건협회에도 임원진으로 활동해 왔으며 현재 고문으로 있다. 1976년 대한치과임프란트학회 창립 초대회장에 이어 제2대회장까지 연임했다.

 

지금은 임플란트가 치과의 블루오션으로 자리를 잡고 임플란트 관련 학회도 우후죽순 난립했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공이 컸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고령인데도 치아가 충치하나 없이 깨끗하다. 젊은이도 저토록 건강한 치아를 갖기 힘들다. 비결은 자연(천연)칫솔라고 한다. 입안 구석구석 24시간 청소가 가능한 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서울 잠실 집에서 종로구 통의동까지 혼자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봉사활동도 틈틈이 해온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치과진료를 계속할 작정이다

 

욕심내지 마라. 건강유지도 물질도 욕심을 버려야 지킬 수 있다. 새해를 맞아 화두처럼 던지는 그의 뼈있는 덕담이 세속에 찌들어가는 사람들의 양심에 일침을 가하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은 일과 운동 그리고 공부를 해야 한다. 인간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지만 치과 치료로 치아에 씌운 금은 죽어서도 무덤까지 몸에 지니고 간다 

 

그래서 치과 진료를 할 때 추호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지위고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는 하늘에서 아주 특별한 인연이 이루어졌다.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으로 박정희 대통령 주치의를 10년 했다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군의관으로 있던 그가 미국으로 고등군사교육을 받으러 갈 때 같은 비행기에 영관 두 명이 탔다. 한 사람은 우락부락하고 장신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말수가 전혀 없고 키가 작았다.

 

교육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부산육군병원 부장으로 가서 보니 사령관이 4년 전 비행기 안에서 만난 키 작고 말수 적던 바로 그 영관이었다. 박정희 장군과의 기적 같은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 장군의 얼굴을 알아본 그가 “4년 전 미국 갈 때 모시고 갔던 군의관 유양석입니다. 기억나십니까?”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 그래?” 하며 반가워했다.

 

 

그 이후로 사령관 가족들 치료도 해주면서 대통령 주치의까지 했으니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현재 유원장이 운영하는 치과는 건물 3층에 있다. 뚝심 있고 우직한 성격으로 지금 있는 한자리에서 35년째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90의 나이로 컴퓨터도 하고 인터넷도 한다. 이메일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카톡도 한다. 직접 자가용 운전도 한다.

 

계단으로 3층을 거뜬하게 걸어서 오르내릴 정도로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다. 오늘은 건강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건강은 장담을 못한다.

 

나이티를 내지 않고 젊은이와 어울려 기체조로 건강관리를 하면서 생각도 말도 행동도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유원장의 말을 듣고 보니 그가 더욱 멋있어 보인다 

 

유원장의 잣대로 보는 세상은 돈이 다가 아니다. 간판이 다가 아니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그에게는 똑같은 환자이자 고객일 뿐이다.

 

환자 한 명에 2~3시간씩 매달리다보니 헛된 발걸음 막기 위해서라도 100% 예약제로 진료와 시술이 이루어진다. 67년째 진료를 해오고 있으니 사연이 오죽 많을까?

 

군대있을 때 비행기타고 왕진도 했다. 19521월 중위로 임관해서 1968년 대령예편하기 까지 군의관으로 근무한 17년을 포함하여 67년째 치과 진료를 해오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국내 치과계에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의 인솔로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며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소주 한 병으로는 부족한 듯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리 같다

 

 

식당을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타러갔다. 유 원장은 경복궁역 승강장 오금행 7-1번 위치에서 멈춰 선다. 교대역에서 잠실 가는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가장 가까운 환승 위치다.

 

그를 인터뷰 섭외할 때 스마트폰 카카오톡과 인터넷을 이용했다. 그와 직접 메시지를 주고받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100세 장수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보여주는 인생 롤모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건강관리를 잘하고 노력여하에 따라 자기 전문분야에서 90세까지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를 인터뷰한 기분이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헤어질 때 시선을 맞추며 두 손을 흔드는 모습이 집에 오는 내내 아름다운 추억으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받는 진료는 그냥 치료가 아니다. 군의관 17년에 미국 유학 3번에 대통령 주치의까지 거친 최고달인의 67년 노하우에 인성을 듬뿍 넣고 사랑과 정성으로 버무려 환자의 얼어붙은 마음까지 훈훈하게 녹여주는 힐링의 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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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6년 01월 04일 19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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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박종운기자     © 인물뉴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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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1/04 [19:45]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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