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151)국제환경기구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선원 김연식

▲ 지하철에서 영업하던 김연식 그린피스 선원이 되다   © 조영관 기자

한때 지하철에서 지구본을 팔던 청년. 당시 그가 승객들에게 팔았던 건 3천 원짜리 지구본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그의 꿈이었다. 젊은 날의 소중한 경험은 수줍음 많던 청년을 국제환경기구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선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다. 그는 그린피스의 선박 3척 중 <에스페란사>라는 배에서 항해하고 있다. 멕시코를 지나 칠레에 머물고 있을 그의 항해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차근차근 정해진 길을 걸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 지역 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때는 꿈을 이루었다는 즐거움에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자라는 직함이 내성적인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야 그는 깨달았다. 이제까지 꿈꿔오던 꿈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은 해양경찰청을 출입하다가 만난 선원 출신 경찰관의 무용담이었다.

"배를 타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 동경했던 삶이 기자가 아닌 바다였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막상 기자가 되니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옷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긴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전 세계를 구경하고 싶다는 꿈에 도전하긴 했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우연히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의 ‘외항상선 해기사 단기양성과정 연수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되었다. 해양대학을 나오지 않은 그에겐 걱정이 앞섰지만, 바다를 향한 열망이 그를 움직였다.

“당시 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초임 항해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배를 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면접에서도 선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항해사는 당직 시간에 선장을 대신해 배를 운항하는 만큼 내가 선장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승선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해서인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상선에서 근무중인 김연식 항해사    © 조영관 기자

새로운 꿈, 그리고 도전
해기사 양성과정에 합격한 그는 6개월의 교육을 마치고 실무를 쌓기 위해 1년을 최하급직 선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다른 동기들과 달리 비전공자인 그에게 취업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부정기 벌크선 3척을 운영하는 작은 해운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5년 동안 36개국 48개 항구를 다녔고, 이등 항해사로 진급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부모님께 서울 외곽의 작은 아파트도 사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꿈꿨다. 그에게는 그린피스에서 운항하는 환경 감시선을 타보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누비는 고래나 해양 동물을 보면서 미래에도 사람들이 이런 바다의 멋진 장면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린피스에 지원해 보기로 했죠. 숙고에 숙고를 거쳐 자기소개서를 썼고,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며 연애편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메일을 보내고 난 후, 그는 스토커처럼 꾸준히 ‘수신확인’을 눌러댔다. 하지만 그가 보낸 이메일은 좀처럼 ‘읽음’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린피스 본부가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알겠다는 형식적인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그렇게 연락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네덜란드 그리피스 지부에서 합격하여 지금은 에스페란사에서 항해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누가 그랬죠. 인생은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교통사고처럼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 그 전화 한 통으로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날아갔습니다. 지구 반 바퀴를 아무렇지 않게 가는 나를 보며 문득문득 진짜 내가 아닌 것 같아 의아한 때가 많았습니다.”

▲ 전 세계 15개국에서 모인 에스페란사호 선원들( 앞줄 오른쪽 세번째 주인공)    © 조영관 기자

에스페란사, 희망을 항해하다
그린피스는 3척의 환경 감시선을 운영하며 전 세계에서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그 중 멕시코에서 환경보호 활동을 하는 ‘에스페란사호’(2,000t급)의 항해사로 전 세계를 누빈다. 이 환경 감시선은 2013년 북극해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평화시위를 주도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칠레에는 2만3천㎢에 달하는 빙하가 분포해 있는데, 이는 남미 대륙 전체 빙하의 80%에 달한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와 산업화로 빙하가 심각하게 파손되거나 녹고 있다. 빙하는 지금도 꾸준히 녹아내리고 있으며, 이는 칠레 수질 오염으로 이어진다.

칠레의 빙하 문제는 전 세계 환경문제와 직결된다. 그린피스 칠레 사무소는 전체 빙하의 8%에 해당하는 3천420㎢가 녹거나 파괴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모두 지구온난화의 결과이며, 이는 다시 해수면 상승과 남미 대륙의 사막화 등 연쇄적인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에스페란사호는 칠레 항구에서 오픈 보트행사를 열어 배를 찾아온 시민들에게 이런 실정을 알리고 있다.

그린피스는 인종과 국적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그린피스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린피스와 함께 행동하고, 나아가 그린피스의 옷을 입고 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는 지금 칠레 일대를 항해 중입니다. 승선한 지 얼마 안 된 만큼 새 생활과 영어, 그리고 낯선 음식과 분투하고 있습니다. 저는 배울 게 많은 단계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적응하고 단련해야겠지요. 항로 밖에도 길이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꺼리는 길, 편견이 있는 길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도전하세요. 일단 해봅시다. 인생의 항로 밖에도 길은 있습니다."
그는 계속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 한국과 가장 반대쪽인 그곳에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도전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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