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가만난도전인] (8) 종이비행기에 꿈을 실어 날리는 도전 청년 이정욱

- 물수제비 달인,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국가대표

최경주 기자 | 입력 : 2015/08/07 [06:00]
▲ 종이비행기 오래날리기 1인자 (가운데 이정욱)    © 최경주 기자
상승 순간속도 100㎞…종이비행기 날리기 국가대표의 비법

올해 나이 28세 나이의 청년 이정욱이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두 가지 타이틀이 바로 물수제비 달인,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국가대표이다. 이런 특이한 장기를 가지게 된 것은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골마을에서 할 수 있는 놀이들은 주로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 뿐 이었다. 물수제비를 잘 뜨고 종이비행기를 오래 날리기 위해 물리학 이론, 공기역학을 공부하고 논문도 찾아보면서 수 만 번의 연습을 거듭한 끝에, 지금은 기네스북에도 도전을 준비할 만큼 달인이 되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언가에 하나 꽂히면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시골청년이 서울에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매 방학마다 친척 형님이 운영하는 경기도에 있는 공장에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 15시간씩 일을 했다. 겨울방학 두 달, 여름방학 한 달, 평일은 아침 9시에서 밤 12시까지, 토요일은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보태기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육성회비 미납 독촉장등 그렇게도 가난은 그를 초라하게 만드는 굴레였다.

전에 일을 하던 공장의 사장님인 친척 형님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학교를 다녀도 좋으니, 고등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아버지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하여 친척 형님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농사와 공장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이어나가던 고2 여름방학, 그에게 천금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지금까지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며 일을 하던 성실함이라면 한 번 믿어볼 만하다.’면서 공장의 사장님이던 친척 형님이 남은 고등학교 1년 동안은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였다. 물론 조건이 걸려있었다. 남은 고등학교 1년 동안 고등학교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해 주는 대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면 첫 학기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주고, 만약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지 못 할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즉시 친척 형 함께 공장에서 일을 하는 조건이다.

친척 형의 약속은 있었으나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 2004년 11월 고등학교 2학년에 아버지께 편지 한통을 남겨두고 고등학교 기숙사로 가출을 하였다. 지금도 기억에 나는 편지 내용 중 한 부분은 ‘한 달 한 달의 월급보다, 짧게는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 길게는 앞으로 길을 제 자신을 위해서 투자를 해보고 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시간을 돈과 바꾸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호랑이 같던 아버지의 뜻에 반기를 든 출사표였다. 과외 한 번, 학원 한 번 다니지 못 하는 학업 조건에서도 선배들이 수능을 치르고 난 뒤 버린 EBS 문제집과 교사용 참고서를 받아서 하루에 4시간씩 자며 이를 악물고 1년을 흔들림 없이 공부하였다. 절박한 마음과 그에 따른 노력이 빛을 보게 되어 드디어 서울에 있는 홍익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휴학은 엄두도 못 내고 8학기를 연속으로 다니며 졸업을 하게 되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외적으로는 굉장히 바쁜 시기를 보냈지만, 오히려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지낸 만큼 진로와 미래에 대한 내적인 고민에는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내달려온 대학생활이었기에 남들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으나 마음 속 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학업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가 없었다.
▲세계기네스 기록보유자들과 함께     © 최경주 기자
고민 끝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글귀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는 진학하고 싶어 하던 신문방송학과의 전공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도서관에 가서 커뮤니케이션학에 관한 전공서적을 공부하던 중, 도저히 독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론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전공 서적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의 윤석민 교수님을 찾아뵙고 직접 청강을 허락받게 되었다. 성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즐거움,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조사하는 설렘을 만나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빨리 사회생활에 뛰어들기보다 못 다한 학업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50대 1을 넘는 경쟁률의 편입 시험을 아르바이트와 병행해야하는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합격하기만 하면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한국장학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3년 2월, 27살이 되는 해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의 합격증을 받아들게 되었다. 2013년에는 서강대와 일본 소피아 대학교의 정기교류전인 SOFEX(Sogang-Sophia Festival of Exchange)의 축구 선수 선발전에서 주전 골키퍼로 발탁되어 7개월 간의 훈련을 소화하고, 일본 소피아 대학교를 방문하여 서강대학교의 대표로서 축구 경기를 뛰고 돌아왔다. 또한 신문방송학과 영상제작단 MEGS(Media Experts Group of Sogang)의 부국장으로서 서강영화제 촬영, 학교 홍보영상 제작 등의 업무를 맡았으며 스튜디오의 조교로 학내 근로도 하였다. 대외 활동 영역에서는 기획, 촬영, 연출을 함께 한 다큐멘터리‘맑게 갠 하늘처럼, 해밀학교’가 KBS1 TV 열린채널에 서강대학교 영상제작단 MEGS의 이름으로 공중파를 타게 되는 값진 경험을 하였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서강인의 한 명으로 그렇게도 하고 싶던 신문방송학 전공에 진입하여 앞날을 위해 차곡차곡 꿈을 쌓아갔다.

그는 ‘어려운 환경을 탓하며, 그것을 모자람을 가리는 방패막이로 삼지 말자’라는 생각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어려운 형편과의 싸움은 진행형이고, 8년 간의 서울 생활에서 주말에 쉬어 본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쉬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은 힘이 들지만, 무언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뜻을 굽히지 않고, 물수제비와 종이비행기처럼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의 든든 학자금 대출과 국가장학금 제도가 없었다면, 꿈을 향한 도전의 끝에 이렇게 행복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한 채, 어려운 환경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20대를 돌아보며 평생 가슴 아파했을 거라고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제도와 국가장학금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부모님과 같은 존재이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과 한국장학재단 분들의 노고에 부끄럽지 않도록 전심전력을 다 해 살아갈 것이라고. 훗날 본인이 받은 이러한 도움들을 후배들과 사회에 돌려줄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 세계대회에서 출전하는 모습     © 최경주 기자
도전 청년 이정욱의 최근 활동이다.
제 5회 코리아컵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 오래 날리기 부문 금상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제 4회 레드불 페이퍼윙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4.19초로 우승, 레드불 페이퍼윙스 세계 대회 결승전에서 10.29초의 기록으로 13위 기록

청년 이정욱을 후원하는 레드불에는 본 기자와 친분이 있는 주성균 매니저가 있었고 그는 이정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하였다.

그리고 향후 계획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다보면 ‘종이비행기에 왜 그렇게 힘을 쏟냐, 종이비행기를 가지고 뭘 할 수 있겠냐’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러면 ‘종이비행기 오래 날리기 챔피언은 나의 꿈이고, 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꿈이 밥 먹여주냐?”
그래서 제가 반대로 물어봤어요.
“그러면 꿈을 포기하고 밥을 위해 살다보니까, 밥이 꿈을 먹여주더냐?”

‘언젠가 물질적인 것이 해결됐을 때, 마음에서 오는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종이비행기를 하다보니까 이제 전국에서 ‘종이비행기로 쉽게 과학 원리를 알려주는 강연회를 열어 달라’고 연락이 와요. 그리고 종이비행기 국가대표로서 세계 대회를 다녀오면서 종이비행기가 단순이 놀이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하나의 스포츠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종이비행기, 물수제비와 같은 이색 스포츠 대회를 열면서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의 장을 여는 스포츠 마케터가 되려고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5년 전, 인터넷도 케이블도 들어오지 않던 외딴 시골 마을의 한 아이가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던 오래 날리기 기네스 기록 보유자 켄 블랙번(Ken blackburn)처럼 언젠가 기네스 기록을 갱신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필자의 학창시절에 어려웠던 때를 청년 이정욱을 통하여 스캔해 보는 시간을 통해 그의 도전과 바라는 꿈이 종이 비행기에 실려 반드시 이루이질 것을 힘차게 응원한다.
<인물뉴스닷컴/ 최경주기자 sinsa8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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