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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84) 전문경영인에서 1인다역의 댄스스포츠 전도사로 변신한 강신영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5/07/15 [07:00]
[클릭이사람] (584) 전문경영인에서 1인다역의 댄스스포츠 전도사로 변신한 강신영

대통령 표창을 받은 전문 경영인이 날마다 춤을 추고 칼럼을 쓰는 댄스스포츠 전도사로 변신했다.

춤 하나로 인생을 바꾼 남자. 댄스 스포츠계에서 강신영(63)씨는 단연 독보적이다. 댄스의 본고장 영국에서 국제지도자자격증(IDTA) 취득이후 댄스 지도자이자 댄스 전문기자 겸 칼럼니스트로 잘 나가고 있다.

신체나이 46세, 정신나이 38세. 젊은 오빠를 자처하며 1인다역의 춤꾼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63세 강신영씨의 건강지수가 놀라울 뿐이다.

비결은 다름아닌 엔돌핀이 품어져 나오는 춤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봉사하는 기쁨을 만끽하며,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이리라.

기업 전문경영인에서 댄스스포츠 전도사로 변신하여 매일 춤추고 댄스칼럼을 쓰는 남자 강신영씨를 만나보았다.

“댄스스포츠는 남녀노소 모두 가능한 스포츠입니다. 스포츠(운동개념), 예술, 사교, 레크리에이션, 경기, 쇼의 기능을 모두 포함하고 있죠”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댄스스포츠계의 최고수로 ‘댄스느님’이라는 별칭이 그에게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댄스 관련 원서를 닥치는 대로 구입해서 번역하고 외국인을 직접 인터뷰할 정도로 해박한 통번역 지식에 뛰어난 춤 실력까지 갖췄으니 한마디로 능력자다.

“댄스스포츠가 저한테는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운동이자 친구인 셈이니 보약이나 다름없죠. 매일 면역강화제를 먹는 기분입니다”

댄스스포츠 중에서도 그는 모던댄스를 한다. 젊어서는 경쾌하고 정열적인 라틴댄스를 즐겼지만 나이 들어서는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모던댄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국문인협회 정회원으로 작가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각종 카페와 블로그 등에 올린 칼럼만도 5000여 편이 넘고 요즘도 매일 5편 정도의 칼럼을 쓴다는 그의 말에 입이 딱 벌어진다.

책도 5권이나 출간했다. 작년에 집필한 댄스칼럼집(캉캉의 댄스이야기)은 자그마치 3410페이지로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칼럼집이 방대하다고 해서 사진이나 그림으로 내용을 채운 책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년 춤꾼으로 내공을 다져온 저자의 관점에서 댄스가 지닌 문화, 심리학, 종합적 예술 등을 900여개의 주제로 정리해 집대성했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담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춤 공부는 워낙 관련 학문이 많고 방대해서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 그가 매일 밤늦게까지 관련서적을 읽고 블로그 등에 열심히 글을 올리는 이유다.

댄스하면 몸으로만 하는 춤으로 알지 웬만한 전문가라도 이론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강신영씨는 예외다. 그 어려운 댄스스포츠를 몸동작은 물론 글이나 말로 척척 표현해낸다.

그동안 춤을 지도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사람으로 그는 10년 전 첫 댄스 파트너를 떠올렸다.

“여성의 날 행사 오프닝 이벤트로 대통령 앞에서 제가 처음으로‘자이브’를 가르친 여성 시각장애인과 같이 춤을 췄어요”

그날 이후에도 또 한 번 장애인의 날 영부인이 참석한 자리에서 자이브를 췄다. 춤을 추고 나서 같이 사진을 찍자는 여성 시각장애인의 말에 그가 눈도 안 보이는데 웬 사진이냐고 물었다.


아들 보여주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그는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그 순간 모던댄스를 일반인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각장애인에게 가르쳐서 대회에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전국 장애인 댄스스포츠 선수권 대회가 생겼다.

작년에 그가 가르친 여성 시각장애인은 월등한 기량으로 일반인 경기대회까지 나가서 모던댄스(스탠다드 댄스) 5종목으로 우승했다.

2014년 7월19일 오전에 열린 전국 장애인 댄스스포츠대회 출전에 이어 같은 날 오후에는 여수시장배 아마추어 댄스선수권대회 장년부, 아마추어부, 일반부에 연달아 출전해서 모두 결승에 올라 일반부와 장년부는 우승하고 아마추어부에서 준우승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댄스스포츠에 왜 그토록 목숨을 걸고 줄기차게 칼럼을 쓰는 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아 댄스스포츠야말로 건전한 스포츠라는 사실을 전도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댄스스포츠를 하면 자세가 곧게 펴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자연스럽게 스트레칭 효과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댄스칼럼니스트로 소개할 정도로 그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의 글쓰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같다.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해뒀다가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쓰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고 털어놓는다. 취미도 다양하다.

“노래부르기를 워낙 좋아해서 머릿속에 1000곡이 입력돼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산에 가고 영화 관람도 습관적으로 합니다. 독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완전 잡식이고요”

2011년 그는 천하의 춤꾼으로 잘 놀았다고 액티브시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인생이 어떻게 이토록 변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춤을 만나기 이전에 그는 지금과 전혀 다른 분야의 길을 걸었다.

1999년 11월 11일 섬유의 날 행사에서 모범경영인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그의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정점은 거기까지였다.

중앙대 무역학과 71학번으로 영어 실력이 유창했던 그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 럭키개발에 입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현장 4년, 독일 지사 1년 근무 후 LG전자로 발령받아 1988년 수출과장을 끝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고 30대 중반에 국내 굴지의 스키장갑업체 공장장이 됐다.

1996년 환율이 곤두박질치며 국내 시장으로 눈을 돌려 영국 스포츠 브랜드 한국 총판 자회사를 따로 만들고 그가 대표를 맡았으나 1년 만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회사 문을 닫았다.

1999년 퇴직 당시 그의 나이 49세였다. 같은 처지의 경영인들이 외환위기 충격으로 건강을 잃고 세상을 뜨는 모습을 보고 그는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액티브 시니어리더로 잘나가는 그의 건강을 지켜주는 운동이자 친구가 되어준 댄스스포츠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4년 댄스스포츠 지도자 1, 2급 자격증을 획득하고 댄스스포츠의 본고장인 영국에 가서 국제댄스스포츠지도자(IDTA) 자격증을 따고 귀국 이후 댄스스포츠 전문기자로 기사도 쓰고 ‘댄스엔조이’동호회를 만들어 5년 동안 회장을 맡았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춤추는 동호회 활동 자체가 축제였다. 기자의 눈에 비친 그는 인생을 즐기는 자유인(自由人) 같았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장애인에게 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도 하고 댄스스포츠 대회에도 꾸준히 나간다.

1999년 부인과 합의이혼하고 싱글이라는 그는 자신과 남은 평생을 함께 할 댄스파트너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밝힌다.

자신과 꼭 맞는 파트너를 만나 함께 전 세계 순회공연도 하고 책도 쓰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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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5년 07월15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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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15 [07:00]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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