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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567) 넘치는 태극기 사랑…이름도 '연태극기'로 바꿨다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4/11/16 [13:53]
[클릭이사람] (567) 넘치는 태극기 사랑…이름도 '연태극기'로 바꿨다    

태극기 사랑에 빠져 태극기를 끼고 살며 자신의 이름도 바꿨다. 충청북도 충주에 사는 연태극기(70) 씨의 본명은 연종택이었다. 지난 2014년 9월 말에 개명했다.

태극기 문양의 독특한 옷차림에 태극기를 앞세운 자전거를 타고 충주 시내 곳곳을 누비는 ‘태극기 아저씨’로 유명하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늦가을 충주시 봉방동 340번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연태극기씨 자택으로 그를 찾아갔다.

집 밖에 내걸린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10여분쯤 기다리니 자전거를 타고 그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자전거 앞뒤에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4개나 걸려있다.

11시~12시30분 ‘공무수행’으로 충주 호암지서 열린 제 34회 자유수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참석했다가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한 ‘태극기 자전거’ 폐달을 힘차게 밟아 이제 막 돌아오는 길이다.

그의 열정 넘치는 태극기 사랑은 시민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이웃사촌 98세 할머니는 애국가 4절까지 ‘완창’하는 노익장을 과시해서 2012년 국가보훈처 주관 나라사랑 애국가 부르기 우수상을 수상했다. 연태극기씨의 영향이다.

앞집 중학생은 태극기 아저씨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학교를 쉬는 토요일에는 둘이 같이 다니면서 마을청소를 하고 태극기사랑 캠페인도 펼친다.

시민들로부터 ‘분신’같은 자전거를 기증 받기도 한다는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뒤엉킨 실타래 풀리듯 계속 나온다.

작은아버지가 쌍둥이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훤칠한 키에 미모가 뛰어났던 작은어머니에게 반한 일본인이 치근덕거렸다.

이를 본 두 작은아버지가 그 일본인을 흠씬 두들겨 패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만주로 피신하여 하얼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연태극기씨에게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하루 최소 24km를 탄다. 새벽 5시50분 기상하면 동네 청소를 한다. 집에 들어와서 아침 먹고 9시30분부터 2시간동안 충주시내 청소를 한다.

점심 먹고 14시부터 8개 단체에 태극기 홍보를 한다. 대한민국 나라사랑 태극기를 들고 충주 시내를 3바퀴 돌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내 건강관리는 충주 시민이 지켜 준다”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그의 태극기 홍보는 끝이 없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몰리는 축제에도 어김없이 찾아갔다. 매년 열리는 충주세계무술축제 현장을 찾아 관람객은 물론 외국인 참가자들에게도 태극기를 나눠주며 대한민국을 홍보했다.

"행사가 끝난 뒤 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다"는 그는 "대한민국 모든 집에 빠짐없이 태극기가 걸리는 모습을 보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 봉명동으로 삶의 둥지를 튼 지 벌써 42년째로 1972년부터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꿈에도 잊지 못할 제천시 한수면 영리 고향마을이 1972년 충주댐으로 수몰되면서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왔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의 집 거실 수족관에 수몰마을(미니어처)을 조성하고 부모님 사진도 액자로 만들어 넣어두었을까. 하루에 두 번씩 돌아가신 부모님께 식사를 차려드리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심정으로 수족관 물고기 먹이를 준다.

한전에서 1980~2002년까지 22년을 근무했다. 재직 시절 마음에 맞는 사우들끼리 의기투합하여 맺은 의형제가 각도에 한 명씩 있다.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흐르고 다니던 회사를 떠났어도 그때 맺은 의형제는 지금까지 끈끈하게 지내고 있다.

의형제중 충청도 대표인 그는 전라도 대표가 진도 홍주를 보내왔다면서 한잔 따라 맛보라고 기자에게 건네준다. 마셔보니 술맛이 괜찮다. 그의 인생사가 흥미롭다.


한전 퇴직하고 2005년 5월8일 어버이날 롯데마트에 대한민국 실버사원 1기로 입사했다. 고객안내 고객응대 업무를 맡아 8년8개월 근무하고 2014년 1월30일 정년퇴직하였다.

자전거를 타고 태극기 홍보를 12년째 해오면서 그동안 태극기 2800개를 보급하였다. 그가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태극기는 모두 대한민국 나라사랑 선양회(사무총장 최윤호)로부터 후원받고 있다.

1회용이 아니고 반영구적으로 눈비를 맞아도 훼손되지 않는다. 깃대와 무궁화깃봉까지 세트로 된 태극기다.

8남매 중 7번째. 그가 털어놓는 가족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짠하다. 맏형(봉택)과 둘째형(구택)이 625때 납북됐다.

살아 있으면 89, 82세로 큰 형이 먼저 행불됐고 둘째형은 충주농고 2학년 때 교문에서 납치당했다.

“갑자기 소식이 끊긴 둘째 형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아버님 저 거제 포로수용소 있어요. 잘 있습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쌍둥이 작은 아버지는 일제 때 일본인을 흠씬 두들겨 패고 만주로 피신하여 터를 잡았고 그 자손들 즉 연태극기씨의 4촌 형제들이 하얼빈에 살고 있다.


연태극기씨의 집안 내력이 참으로 기구하면서도 일제치하와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무겁다. 화제를 바꿔 연태극기로 이름을 바꾼 이유를 물었다.

“시민들이 개명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꾸 해요. 듣고 보니 그게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10월부터 이름을 바꿔 불렀어요. 연태극기로. 명함도 새 이름으로 바꾸고…”

그는 한때 남한과 북한을 대표하는 명견 진돗개와 풍산개를 키웠다. 2000년 6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 방북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 공교롭게도 연태극기씨가 키우던 진돗개와 풍산개 사이에 새끼 5마리가 태어났다.

온 국민이 간절히 염원하는 민족 통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개를 통해 남북통일 시켰다고 그는 말한다.

개 이름도 순우리말로 지었다. 우리 소원 남북 통일 봉구. 봉구는 625때 납북된 두형의 이름(봉택 구택) 첫 자를 땄다.

중국 하얼빈으로 피신하여 뿌리를 내린 쌍둥이 작은 아버지의 후손인 4촌 형제들과는 서로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며 살고 있다. 납북된 두 형님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도 중국에 건너간 작은아버지 자손들로부터 들었다. 지금은 두 작은 아버지마저 모두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다.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의 손에는 연태극기씨가 보급하는 나라사랑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목숨이 다하는 그날 까지 나라사랑 태극기 홍보를 계속 이어가겠노라고 다짐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귀경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연태극기씨다.

“김명수기자님! 다음에 언제라도 충주에 놀러오세요. 부부동반이면 더욱 좋고요. 충주에 오면 술과 숙박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태극기 사랑이 펄펄 끓어오르는 태극기 아저씨의 진심이 가득 담긴 마음만으로도 고맙고 정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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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4년 11월 16일 13시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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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1/16 [13:53]  최종편집: ⓒ 인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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