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클릭이사람] (566) 자원봉사 2만 시간 ‘사랑의 이발사’ 신현긍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4/11/05 [07:15]
[클릭이사람] (566) 자원봉사 2만 시간 ‘사랑의 이발사’ 신현긍  

서울 지하철 쌍문역 2번 출구에 인접한 창동시장 내 현대사우나 이용원. 그곳에 가면 50년 세월을 이발만 해오면서 자원봉사로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랑의 가위손 신현긍(66) 원장이 있다. 

궁핍했던 집안 사정으로 중학 진학은 엄두도 못 내고 14살 때 처음 이발 가위를 들었다.

17세에 이발소 주인 배려로 독립하여 이발소 사장이 되었다.

공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학교에서 성적순으로 매겨지는 공부만이 전부가 아니다.

학교 공부는 수많은 공부중의 한가지일 뿐이다.

박태환은 수영공부로,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 공부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박지성은 축구 공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가위손으로 머리를 손질하는 이발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도 있다. 반백년을 한 우물만 판 사랑의 가위손 신현긍 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발에 뼈를 묻고 평생을 살아왔지만 한 때 그만 두려고 했던 적이 있다. 43년을 정릉에서 일하다가 이 바닥을 완전히 떠날 결심으로 가게를 정리했다.

몇 십 년을 해오던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하고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가위를 잡았다.

2003년 4월 지금의 장소로 왔으니 벌써 12년째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직원 7명을 독립시켜 이발소를 차려줬다.

이발소를 하면서 33살 때 계몽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지사장직을 7년간 겸했다.

알바 포함 직원 500명까지 거느리고 시리즈물 전집을 팔다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지사장직을 그만 두고 이발만 전념하고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발소는 천직으로 지금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자원봉사도 군대 가기 전부터 계속 해오고 있다. 이발 봉사, 수지침 봉사, 건강클리닉 봉사가 그의 전공이다.

대한적십자사 소속으로 군부대, 창동 국군병원, 맹아학교, 원호병원을 찾아다니며 군인, 노인,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48년째 봉사를 해오고 있다.

공명심이나 개인의 이름을 앞세운 봉사가 아니라 모두 대한적집자사 봉사단 소속으로 봉사를 해왔다는 점에서 겸손함을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 일본 등 해외봉사까지 다녀왔다. 더불어 사는 나눔의 열정이 뜨겁다 못해 펄펄 끓는다.

“누구를 돕는다기보다 봉사를 통해 자신에게 힐링이 되고 봉사하면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요”

일주일에 많게는 2~3번씩 매주 봉사를 40년 넘게 해오고 있다. 한푼 두푼 모여서 목돈이 되듯이 꾸준히 해오다 보니 자원봉사 2만500시간(비공인)을 돌파했다.

“봉사를 안 하면 몸이 아파요. 해야 해요. 일 안해도 아파요. 해야 해요. 봉사도 일도 직업병이에요. 그래서 이발소도 일년 열두달 쉬는 날이 없어요”

한눈팔지 않고 평생을 열심히 일한만큼 남은 인생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6시 반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일한다.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어엿한 강사님’으로 초청 받아 틈나는 대로 수지침과 건강클리닉 강의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발소 일이 끝나면 수도권 내 영양사와 양호 선생님들 대상으로 이 학교 저 학교 초청강의 하랴 자원봉사 다니랴 항상 바쁘다.

봉사하기 위해서 바쁜 중에도 짬을 내 수지침과 건강클리닉 교육을 대한적십자사서 받았다.

적십자사서 교육받고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지금은 교육을 하는 ‘강사 선생님’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보나 변함없이 이발과 봉사를 계속 해오면서 느끼는 자부심과 보람도 컸다.

틈틈이 서예를 배워서 글쓰기를 하는 취미도 갖고 있다. 올해 직접 화선지를 구매해서 ‘친필휘지’한 ‘입춘대길’ 서예작품을 600여명의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의 가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멋진 가장인지 알 수 있다. 슬하에 5명의 자녀가 있다.

2명은 친자녀이고 3명은 가슴으로 키운 자녀다. 연고지가 다른 소년가장 3명을 집에서 함께 키워 분가시켰다.

직접 낳은 두 자녀와 입양한 3명을 어려서부터 함께 먹이고 똑같이 입히고 차별 없이 대해주었다. 결혼할 때도 소형평수 아파트를 모두 해줬다.

그가 함께 일했던 7명을 독립시켜 이발소를 차려준 사연도 가슴뭉클하다.

아버지 사업이 잘못되어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어린 소년 신현긍은 초등학교 졸업 후에 곧바로 산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첫 직장이 이발소였다.

3년 동안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 본 주인이 그를 이발소 대표로 독립시켜 주었다.

당시 종업원이 7명 있었고 그는 군대를 가야할 나이가 되어 입대를 했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이발소에 남은 종업원들은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는 종업원들이 꼬깃꼬깃 모은 돈 120만원을 제대를 한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1억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주인의 은혜로 독립한 그가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독립시켜 주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신현긍 원장을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그 멋진 만남을 매월 셋째주 월요일에 한다.

자기 머리는 누가 깎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신현긍 원장은 “내가 깎지요”라고 말하면서 빙그레 눈웃음을 짓는다.


그를 인터뷰 하면서 두 번 놀랐다. 이름(신현긍)이 너무 특이해서 한 번 놀랐고 충남 온양온천이 고향으로 온양온천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말에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자가 1978년 4월 24일 군대 입영영장을 받아들고 빡빡 머리로 집결한 장소가 바로 온양온천초등학교였으니 세상에 이런 인연이 다 있나 싶었다.

그는 군(軍)에 입대해서 교육계 사병으로 이발사의 ‘파워’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며 ‘스타’와 놀았던 군대 시절을 회고했다.

계급에 죽고 사는 서슬 퍼런 군대에서 상병 계급장 달고 겁도 없이 별이 반짝 거리는 사단장과 바둑을 두며 맞상대를 했다니 장교들도 신 상병에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질 만 하다.

군대서도 고위 영관장교들의 이발을 전담하는 특권으로 관사를 드나들며 가위손을 놓지 않았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인터뷰가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 영산포산 ‘홍어애’와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푸짐한 뒤풀이를 했다.

선한 얼굴 표정이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마음씨 넉넉하고 스마일 인상에 유난히 유머가 많은 그를 보면서 문뜩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 이 기사는 인물뉴스닷컴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인물뉴스닷컴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인물뉴스닷컴에 있습니다.

<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4년 11월 05일 07시15분.

인물뉴스닷컴 홈으로 바로가기 클릭이사람 명단 346번~  

인물 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인물뉴스닷컴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0-4707-4827 이메일 people365@paran.com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4/11/05 [07:15]  최종편집: ⓒ 인물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