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클릭이사람] (553) 8천미터 14좌 도전… 열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김명수기자 기사입력  2014/05/07 [08:50]
[클릭이사람] (553) 8천미터 14좌 도전… 열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  

인생의 전부를 산에 걸었다. 그에게 산은 꿈이다. 삶보다 꿈이 먼저다. 삶은 궁핍해도 좋지만 꿈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열손가락 없는 전문 산악인 김홍빈(51) 트랙스타 홍보이사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도전을 더 이상 도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8000m 14좌 정상을 밟더라도 온전한 몸과 열손가락 없는 장애인이 오르는 의미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김홍빈 대장은 산에서 입은 장애를 산을 통해 극복하고 상상하기 힘든 불가능에 도전하여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신저로 불린다.

열 손가락을 모두 잃은 불의의 사고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1997~2009년)에 이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이미 8개봉을 오르고 9개봉 째 등정을 앞두고 있다.

그의 삶은 산에서 시작해서 산으로 끝난다. 1983년부터 산을 탔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28살이던 1991년 북미 매킨리봉(6194m) 단독 등반 중 사고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산이 전부였던 그에게 닥친 현실은 끔찍하고 참담했다. 장애인 운전면허를 따고 이일저일 해봤지만 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뜩 남은 인생을 이렇게 살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의 발길을 산으로 되돌려 놓는 계기가 되었다.

구르고 넘어지고 뛰면서 국내 산행을 시작으로 잠시 접었던 꿈을 찾아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열손가락 없는 장애의 몸으로 불가능해 보이던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8000M 14개 봉우리 등정에 나섰다.

열 손가락을 산에 묻고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신념으로 산에서 다시 일어서고 지금까지 산을 오르고 있다.

그 손으로 직접 운전을 하고 산에 오를 때도 단독 산행이 주류를 이루며 더 힘들고 난도가 높은 익스트림 고산 등반을 즐긴다니 못 말리는 사람이다.

전남 고흥출생으로 광주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광주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고산등반을 꿈꿨고 산이 좋아 대학교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을 탔다.

1989년 첫 해외 원정등반으로 에베레스트(8858m)에 도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000년에 재도전했다가 또 실패하고 2007년에 만년설로 뒤덮인 세계최고봉의 정상을 밟았다.

2013년 봄에는히말라야 칸첸중가(8586m) 등정을 마치고 악전고투 끝에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

칸첸중가 ‘하산길’에 가장 가까이서 도움을 많이 줬던 박남수 산악대장을 잃고 자신만 돌아왔다는 자책감이 지금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다.


시련은 있어도 그의 인생 사전에 중단은 없다. 어떠한 장애도 산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한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날 쇄골이 부러진 상태로 물리치료를 받고 왔다는 그는 1년 365일 모든 삶의 포커스가 산에 맞춰져 있다.

건물이나 아파트를 드나들 때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 다닌다. 술․담배를 멀리하고 스키, 사이클,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겨 타는 이유도 원정등반에 대비한 몸만들기의 일환이다. 운동 신경은 천부적으로 타고 났나보다.

2013년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 3관왕,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도로사이클 개인도로 독주 24km 2위, 트랙경기 팀스프린트 1위 기록이 그의 실력을 증명한다.

장애를 입기 전에 암벽등반을 탔다는 그는 현재 대한장애인스키협회 이사, 광주시 장애인사이클연맹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열손가락 절단 장애를 안고 세계 고산을 잇따라 정복한 원정 산악인은 세계에서 그가 유일하다.

산에서 입은 장애를 산을 통해 극복하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신저로 불리는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다.

“젊은이들 많이 넘어져 봐야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도 힘든 알바 많이 해봤거든요. 실패를 두려워말고 젊어서 알바 등 힘든 일 많이 해봐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난관을 뚫고 나가려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산에 오르더라도 눈보라가 쳐야 재밌어요. 내 배낭 속에는 어떠한 악천후가 닥쳐도 살아나올 수 있는 장비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두려울 게 없지요”

산이라면 죽고 못 사는 그가 일반인이 알아두면 도움이 될 등산 팁 하나를 알려준다.

산에 갈 때는 배낭이 커야 한다. 언제 어느 때 일어날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산행 중에 뒤로 넘어지더라도 메고 있는 배낭이 크면 그 자체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


“해외 원정 등반 떠나기 두 달 전에 허리뼈에 금이 간 적이 있어요. 그래도 원정등반 갔어요. 가면서 다 나았어요. 2008년 마칼루 갈 때였어요. 신기하게도 그 때 가장 쉽게 등반하고 왔어요”

열손가락 다치기 전에는 암벽등반을 했다는 그는 오로지 산에 가기 위해서 운동하고 원정등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직장생활 하고 있다.

“나에게 산이 없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인생도 물론 없습니다”

해외 원정 고산 등반할 때 매서운 칼바람도 무섭지만 그가 꼽는 가장 큰 공포는 순식간에 몰려오는 짙은 구름과 눈보라가 치는 화이트아웃(white out)이다. ‘시야 상실’로 한치 앞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10대 때부터 만년설로 뒤덮인 산을 꿈꿨고 항상 갈망하며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산을 타고 있지만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정상 자체보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는 과정이 더욱 의미 있고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 이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주변의 편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고 도전을 실행에 옮겨 여기까지 왔다.

장애 산악인중 세계 최초로 엘브루즈(5642m.유럽)를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등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000m급 14좌 가운데 에베레스트(8848m), 칸첸중가(8586m) 등 8개봉에 오른데 이어 남은 6개 봉우리 정상을 향한 그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올 가을에는 마나슬루등정을 계획하고 있다.

그를 인터뷰 하면서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왜 그토록 산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지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산에 가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으니까요. 산에 가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져요. 오직 오를 생각만 합니다. 내게는 산이 전부입니다. 산이 꿈이고 삶보다 꿈이 먼저입니다"

삶은 궁핍해도 견딜 수 있지만 꿈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 열손가락 없는 산사나이 김홍빈 대장의 꿈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직 산이다.

사람들은 행복해지길 원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안정감을 선호한다. 꿈은 꾸지만 도전은 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다시 보인다. 열손가락을 모두 잃은 장애를 안고 멈출 줄 모르는 그의 위대한 도전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 이 기사는 인물뉴스닷컴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인물뉴스닷컴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인물뉴스닷컴에 있습니다.

<인물뉴스닷컴/ 김명수기자 people365@korea.com>

2014년 05월 07일 08시50분.

인물뉴스닷컴 홈으로 바로가기  클릭이사람 명단 346번~

인물 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인물뉴스닷컴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0-4707-4827 이메일 people365@paran.com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4/05/07 [08:50]  최종편집: ⓒ 인물뉴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